오픈카 사고 현장 모습. 고상현 기자
"(안전벨트 미착용 경고음)안전벨트 안 했네?"
곧바로 오픈카의 과속 굉음이 울린 뒤 충격과 함께 비명소리가 들린다. 지난 2019년 11월 10일 새벽 1시쯤 제주시 한림읍의 한 펜션 인근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 담긴 상황이다. 이날 A(34)씨는 연인인 B(28‧여)씨와 함께 제주 여행을 왔다가 음주 교통사고를 냈다. 여행 온 다음날 발생한 사고였다.
사고 당시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던 B씨는 조수석에서 튕겨져 나가며 중상을 입었다. 이듬해 8월 결국 숨졌다. 검찰은 A씨가 고의로 사고를 내 B씨를 숨지게 했다며 '살인'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반면 A씨 측은 "단순 음주 사고일 뿐"이라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은 왜 살인죄 적용했을까
지난 6월 17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검찰은 "A씨는 B씨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 사고 발생 시 차량 밖으로 튕겨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급가속한 상태로 충돌 사고를 일으켰다"며 살해의 고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사고 구간은 제한속도가 시속 50㎞의 편도 2차로로 2차로에는 지역 주민들의 차량이 주차돼 있었고, 굽은 구간이 있는 곳이다. A씨는 무리하게 급가속할 경우 주차된 차량이나 인도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점을 예상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사고 현장 모습. 빨간 원 부분이 사고가 난 지점이다. 고상현 기자결국 A씨는 당시 오픈카인 머스탱 컨버터블을 최고 시속 114.8㎞까지 급가속 운전하다가 전방에 좌로 굽은 구간이 나타났는데도 그대로 도로 우측 인도 쪽으로 돌진했다. 이후 연석과 돌담, 경운기를 차례대로 충격하며 B씨가 차량에서 튕겨나갔다.
검찰은 A씨가 평소 B씨에게 여러 차례 헤어지자고 했으나 B씨가 이를 계속해서 거부하자 범행을 계획했다고 판단했다. 사건 직전까지도 A씨와 B씨가 같은 문제로 말다툼을 벌였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변호인 "검찰 무리하게 살인 혐의 적용"
반면 A씨 측 변호인은 음주 교통사고를 검찰이 무리하게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9일 열린 두 번째 공판에서, A씨 측 변호인은 "A씨와 B씨는 결혼을 약속했고 서로 여보라고 부르는 사이였다. 사건 당일에도 다정하게 술을 마시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소한 다툼으로 연인을 살해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변호인은 또 검찰이 공소장에 적은 범행 동기와 관련해 재판부로 하여금 예단을 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아직 조사되지 않은 증거인 카카오톡 문자메시지 내용 등을 여러 차례 인용하면서 'A씨가 B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단정했다는 것이다.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 고상현 기자
특히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변호인은 "사고 차량 기록(EDR‧Event Data Recorder)에는 A씨가 사고 직전 사고를 피하기 위해 제동을 하고 핸들을 움직인 흔적이 발견됐다"며 A씨가 고의로 사고를 낸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이날 증인으로 참석한 도로교통공단 제주지부 감정관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관 등을 상대로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이들은 EDR을 감정한 사람들이다.
변호인이 "사고 직전 제동을 한 것은 사고를 회피하려고 한 것으로 볼 수 있는가"라고 물었으나, 도로교통공단 감정관은 "사람 심리 상태까지 파악할 수는 없다"고 답변했다. 오히려 국과수 감정관은 "EDR과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A씨가 B씨의 안전벨트 미착용을 인지하고 무리하게 과속을 하다가 사고를 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검찰과 피고인 측 간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재판부의 판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3차 공판은 오는 9월 13일 오후 4시 30분부터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 진행된다. 이날 B씨의 어머니와 언니가 증인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