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공무원 채용 필기시험에서 응시생들이 시험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험을 3년 준비했는데 괜히 부작용 같은 것으로 손해를 보고 싶지 않다. 시험 다 치르고 나서 맞을 계획이다." 경찰공무원 수험생 이모(33)씨
"우선 백신 예약을 해놓았지만, 시험 전형에 백신이 영향을 끼친다면 접종을 포기할 생각이다." 언론사 입사시험 수험생 이모(28)씨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인 가운데 '백신 접종 미루기'에 나선 구직 청년들이 늘고 있다. 경찰공무원·공인중개사·언론사 입사시험 등 당장 눈앞에 취업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은 혹시나 있을 백신 부작용이 시험에 영향을 끼칠까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지난 21일 전국에서 4만6천명이 넘는 인원이 응시한 2021년 제2차 경찰공무원 채용 필기시험이 치러졌다. 경찰청은 코로나19 4차 유행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감염 우려를 덜기 위해 전국 시험장의 교실 내 응시자 간 거리 간격을 1.5m로 유지하고, 냉방기 사용 시 2시간에 1회 이상 환기하도록 하는 등 방역 대책을 세웠다. 서울경찰청은 전국 최초로 모바일 전자문진표 작성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시험을 치르는 경찰공무원 수험생(경시생)들 중에서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기피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백신 접종을 미룬 경시생들은 대부분 혹시 모를 백신 부작용이 당장 시험에 영향을 끼칠까봐 걱정된다고 했다.
지난 19일 오후 1시쯤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3번출구. 공무원학원이 늘어선 이곳은 수업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러 나온 수험생들로 북적였다. 한 학원 입구는 방금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입구에 몰려있었다. 몇몇 식당 앞에서는 다닥다닥 줄을 선 수험생들도 포착됐다.
한 경찰공무원 학원 인근에서 만난 20대 경시생 A씨는 백신을 예약하지 않았다. A씨는 "백신을 맞으면 몸살 기운이 있을 수도 있는 등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아무래도 당장은 꺼리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부작용이 미미하다는 말도 있는데,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경시생 최모(31)씨도 "백신을 맞게 되면 며칠은 아플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시험을 앞두고 컨디션 조절이 어려울 것 같다"며 백신 접종을 미룬 이유를 밝혔다. 이어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서 다 마치고 접종할 생각이다"고 설명했다.
접종센터에서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황진환 기자'백신 접종 미루기' 행태는 경시생들 전반에 퍼져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씨는 "지금 다니고 있는 학원에서는 (수험생들이) 거의 다 백신을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특히 체력시험까지 준비해야 하는 경시생들은 당장 백신 맞기가 더욱 망설여진다는 입장이다. 경찰공무원 채용에는 필기시험 이후 약 한 달 뒤 체력시험 과정이 있다. A씨는 "한 달 뒤 체력시험까지 있으니까 백신을 서둘러 맞기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이들은 코로나19 감염이 우려되기는 하지만 당장 눈앞의 시험이 더 걱정이다. 실제로 지난달 29일 한 대형 경찰공무원 입시 학원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 해당 반 수험생이 전부 PCR 검사를 받기도 했다. 학원은 하루 동안 폐쇄됐다.
이 학원에 다니는 경시생 김모(25)씨는 "최근 필기시험 학원에서 확진자가 나와 수업이 미뤄지기도 했다"며 "우려되는 점도 있지만, 마스크를 잘 쓰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2년째 시험을 치르고 있는 김씨는 "작년에 체력시험에서 떨어진 만큼 이번에는 더 절박하다"며 "혹시 모를 작은 부작용도 피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백신을 접종할 생각이 있는 경시생들도 약 한 달 뒤 체력시험 이후에 맞겠다는 계획이다. 한 경찰공무원 학원 흡연장에서 담배를 피우며 '시험에 꼭 나오는 영단어'를 보고 있던 이모(33)씨는 "필기시험이 끝나고 백신 예약하면 대략 1개월은 걸릴 것"이라며 "체력시험 끝나고 맞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보다 당장 내일 모레 시험이 걱정이다"며 "작은 중소기업 다니다가 그만두고 3년째 경찰시험을 보고 있다. 이번에 안되면 정말 답 없다. 코로나가 문제가 아니라 내 앞길이 문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백신 접종을 미루는 구직 청년들은 경시생뿐이 아니다. 당장 취업 시험을 앞둔 구직 청년들 사이에서는 "눈앞의 시험이 코로나보다 무섭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백신에 맞지 않아 코로나에 걸리는 것보다 시험에 떨어지는 것이 더 두렵다는 뜻이다. 이들은 시험을 앞두고 최고의 컨디션을 조절하기 위해 백신 접종도 미루거나 취소할 생각도 한다고 한다.
오는 10월 30일 시험을 앞둔 공인중개사 수험생 우모(30)씨 역시 백신 접종을 미뤘다. 우씨는 "지금 신청하면 9월 말에서 거의 10월 가까이 될 것"이라며 "시험 막바지라 괜히 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동은 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우씨는 "들리는 바로는 백신 맞고 하루이틀은 쉬라고 한다"며 "시험이란 게 계획대로 꾸준히 해야한다고 생각해서 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감염이 우려되지는 않느냐는 기자의 물음에는 "대형 학원에 다니지 않고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하니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며 "우려라면 시험 걱정이 더 크다"고 답했다.
백신 접종과 입사 시험이 겹치면 접종을 포기하겠다는 수험생도 있었다. 언론사 입사시험 수험생인 이모(28)씨는 일단 백신 접종을 신청한 상태다. 이씨는 "당장 진행 중인 전형이 없어서 맞아두자는 생각으로 신청했다"면서도 "혹시나 지원한 곳 이후 전형에 백신이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접종을 포기할 생각도 있다"고 밝혔다.
이씨는 "주변 지인들에 따르면 백신 맞고 1~2일은 땀을 뻘뻘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며 "그런 상태에서 시험을 치를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한숨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