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미국이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미국은 20년 전에는 '협상하자'는 탈레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탈레반에게 '협상하자'며 매달리는 형국이다.
8월 31일로 시한을 정한 미군의 아프간 철군과 관련한 협상 말이다.
아프간을 재탈환한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은 미국이 약속한 그날까지 모든 미군 병력을 아프간에서 빼지 않으면 강경 대응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그날까지 자국민과 서방국가 국민들은 물론 탈출을 원하는 아프간 국민들을 안전하게 아프간 밖으로 피신시켜야 한다.
아프간 카불공항 인근 사람들. 연합뉴스그러나 상황이 녹록지 않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철군 시한 변경은 없다며 대국민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철수) 임무의 성공이 탈레반의 협조에 달려 있다. 미군 지도부에게는 만약 필요하다면 (철수) 시간표를 조정할 수 있는 비상사태 옵션을 준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철수 임무 완수는 탈레반의 손에 달려있고, 탈레반이 도와주지 않으면 철수 시한을 부득불 연장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아프간 사태 이후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40%대로 곤두박질쳤다.
미국 일각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의 미래가 탈레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2일 '적군이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다'거나 '바이든의 아프간 정책의 성패는 지난 2주간이 아니라 다음 2주에 달려있다'는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이 처한 딱한 처지는 정확히 20년 전과 완벽히 대비된다.
23일 뉴욕타임스는 2001년 미국과 탈레반의 협상 과정을 자세히 실었다.
당시는 9.11 사태로 절치부심하던 미국이 9.11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 공격을 명분으로 탈레반이 장악 중이던 아프간을 쑥대밭으로 만들던 시절이다.
탈레반은 그해 11월 미국 측의 무자비한 폭격에 결국 백기 투항하기로 하고 미국에 협상을 제의한다.
탈레반이 아프간 정치무대에서 고사 직전으로 내몰린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탈레반의 협상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 참에 아프간에서 탈레반의 씨를 말리겠다는 속셈이었다.
미국의 협상 거절에 탈레반은 인접국가인 파키스탄 등으로 피신해 아편 밀수입에서 나온 자금을 밑천 삼아 20년간 대미 항전을 끌어왔다.
그 20년간 미국은 우리 돈 2650조 원을 들여 아프간 재건에 나섰지만 '밑 빠진 독'이라는 결론에 이르자 철군 감행에 나섰다.
카불 공항서 미 공군 수송기 탑승하는 아프간인들. 연합뉴스그러나 철군 완료 직전 탈레반의 들불과 같은 역공세에 이제는 쫓기는 신세로 전락했다.
탈레반과의 20년 전쟁서 희생당한 미군만 2500명, 동맹군까지 합하면 35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체결하고 바이든 대통령이 실행에 옮긴 탈레반과의 종전협정은 '패전협정'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아프간 참전용사들은 나아가 '배신협정'이라고까지 한다.
미국은 탈레반과 체결한 종전협정에서도 오사마 빈 라덴이 조직한 테러단체인 '알 카에다'를 테러리스트라고 기술하지도 못했다.
탈레반이 동의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카불서 아프간 전 정부 인사들과 회동하는 탈레반 간부. 연합뉴스오바마와 트럼프 대통령 시절 합참의장을 지낸 조셉 던포드 장군의 군사고문을 지낸 카터 말카시안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20년 전 탈레반의 백기투항 협상을 거절했던 미국 정부의 결정에 대해 "실수"였다고 말했다.
그는 "2001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과신했고 탈레반이 소멸돼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또한 복수를 원했다. 그래서 우리는 하지 말았어야 할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