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머지포인트' 운영사 머지플러스 본사 모습. 황진환 기자'먹튀' 논란을 빚고 있는 '머지포인트 사태' 관련 운영사 머지플러스의 전·현직 대표 등이 형사 입건된 가운데, 이중 전직 대표였던 권강현(64)씨가 "나도 피해자"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권 전 대표는 교수 시절 젊은 사업가 남매의 권유로 전체 지분의 약 3% 미만을 투자했을 뿐, 의사 결정 등에 관여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24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권 전 대표는 2017년 머지홀딩스(머지플러스의 전신)가 창업할 때 공동창업자로 이름을 올리며 100만원을 투자했다. 총 자본금 1억 450만원 중 0.96%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머지홀딩스의 창업자인 권보군씨가 보유했다는 것.
권 전 대표가 머지홀딩스에 투자하게 된 계기는 권남희·권보군 남매가 자신을 찾아오면서다. 권 전 대표는 1980년대 삼성전자(MSC)에 공채로 입사해서 2013년까지 전무로 근무한 바 있다. 이후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서강대 지식융합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이들 남매는 2017년 돌연 학교로 찾아와 권 전 대표에게 "1억짜리 회사를 만들건데 1%인 백만원만 투자를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지분은 1%에 불과하지만 '공동창업자'로 이름을 올려달라는 것이다. 권 전 대표는 남매가 사업을 위해 본인의 업적·이름을 필요로 했다고 봤다.
스마트이미지 제공권 전 대표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제가 옛날에 <삼성처럼 리셋하라>라는 책을 하나 썼는데, 그 책을 이들이 서점에서 읽었다고 한다"며 "그걸 보고 찾아온 것 같다. 삼성 임원치고 벤처나 게임, 콘텐츠 등에 관심 있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본인을) 창업하기 위한 '레버리지'(지렛대)로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권 전 대표의 저서는 2016년경 출간됐다.
이어 "(남매에게) 너네는 무슨 돈으로 사업을 하냐고 물었더니 해독주스로 돈을 벌었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나에게) 돈은 필요없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권 전 대표의 증언에 따르면 두 남매가 제 발로 찾아와 회사 참여를 권유하기까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는 얘기다. 머지포인트 관련 의혹이 증폭되는 과정에서 세 명의 전·현직 대표가 성씨가 같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족기업' 의혹이 제기됐었다.
실제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권 전 대표와 권씨 남매는 친·인척 관계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권씨 남매는 권 전 대표의 업적과 이름을 활용한 것으로도 보인다. 남매는 추후 머지플러스로 바뀐 뒤 금융감독원의 승인을 받는데 도움이 된다며 권 전 대표가 과거 받았던 대통령상이나 학위증 등의 사본을 요구하거나, 등기이사로 들어올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젊은 사업가들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한다는 생각으로 흔쾌히 허락했다는 것이 권 전 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자신의 회사에서의 역할에 대해 "남매가 내 경력을 쓰겠구나 하는 느낌은 들었지만 나쁜 일에만 쓰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며 "내 입장은 '마중물'이었다. 젊은이들은 새로 일어나기도 어렵고 하니까 마중물로서 조금 도와주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소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한테는 등록금을 내주거나 100~200만원씩 장학금을 주기도 했다"며 "내 이력서를 보면 5~6군데에 공동창업자로 올라가 있다. 학생들에게 50~100만원씩 창업자금으로 쓴 것으로, 대부분 받지도 못했고 받을 생각도 없이 해왔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의 창업 열기를 장려하기 위한 의도의 경영 참여였다는 말이다.
다만 권 전 대표는 참여 결정 이후 머지홀딩스에 조금 더 많은 돈을 투자했다. 당시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머지홀딩스는 증자를 진행했고, 권 전 대표도 참여했다. 이때 권 전 대표의 지분은 0.96%에서 19.86%(약 2천만원)까지 늘어났다. 머지홀딩스는 '머지플러스'에 흡수됐는데, 권 전 대표는 머지홀딩스 폐업 직전 최대 주주인 권보군씨에게 지분을 매각해 원금을 회수했다.
황진환 기자머지플러스는 자본금 3억원으로 출발했다. 권보군씨가 초대 대표를 맡았다가 지난해 12월 권 전 대표가 2대 대표를 맡게 됐다. 그런데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때 자본금이 30억 3천만원으로 크게 늘어나게 된다.
이때 권 전 대표는 권보군씨로부터 최초 주식 5천만원 어치를 구매했고, 증자를 진행해 추가로 3천만원을 더 투자하게 됐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권 전 대표가 현재까지 머지플러스에 투자한 금액은 총 8천만원으로 전체 자본금(30억 3천만원)의 2.64%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결정 권한도 없었다고 했다. 권한이 없었다는 주장은 최근 한창 의혹에 휩싸인 논란과 의혹의 책임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권 전 대표는 지난 6월 돌연 사임했고, 남매 중 누나인 권남희 대표가 최고경영자(CEO)자리에 올랐다. 다만 실제 지분은 대부분 동생인 권보군씨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생 권씨는 회사의 최고운영책임자(CSO)로 이번 사태의 대응 책임도 맡고 있다.
권 전 대표는 '멘토링 역할'에 불과했던 머지홀딩스와는 달리 머지플러스에서는 직접 대표도 맡았기 때문에 이번 사태에서 본인의 책임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운영은 권남희·권보운 남매가 도맡아 해왔다는 입장은 고수했다.
그는 "저는 이니시스나 핀테크쪽은 잘 모른다. 창업자인 권보군씨가 이니시스하고 토스 출신 부사장을 데리고 왔다"며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표는 제가 맡았지만 사인이나 결재는 전혀 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서 티타임을 하는 정도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권 전 대표가 소개한 인맥도 있다. CTO를 맡아 이사로 등재돼 있는 서현철씨는 과거 권 전 대표의 삼성 재직 당시 부하 직원이다.
권 전 대표는 "제가 (처음부터) 나섰으면 이렇게까지 (머지포인트 사태가) 커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조마조마했지만 지켜보자는 입장이었다"면서도 "(이번 사태에서) 완전 백프로 자유롭지는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불법'은 없었다고 강변했다. 그는 "범법은 없었다. (언론 등에서) 범법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2월에 전문가 컨설팅을 받아서 금융감독원에 이메일로 의뢰했다. 혼선이 좀 있었지만 3월 초 (전자금융업 등록 신청서) 완본을 만들기도 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등록서) 완본을 갖고 인터넷으로 신고를 해야하는데 시간을 끌면서 부채가 늘어나니까 마지막 순간에 부채 비율이 (기준을) 넘어버렸다"며 "그러던 차에 내부적으로 이 일에 참여했던 임원과 직원 사이에 갈등이 생겨서 이 사단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제가 월급을 받기도 했지만 들어간 돈에 비해 10분의 1도 못 받았다. 개인 투자금도 있는 데다가 저도 포인트를 사고 쓰지 못한 것도 있다"며 "저도 피해자"라고 호소했다.
권 전 대표의 주장을 종합하면 자신이 경영 전반에서 주도권을 쥐었다면 금감원 등록 등 적법하게 회사 운영이 가능했었지만, 오히려 권씨 남매 위주로 공격적인 경영이 빠르게 진행된 결과 현재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보는 셈이다.
지난 13일 '머지포인트' 본사에서 환불을 요구하는 가입자들과 직원 통행로를 확보 중인 경찰이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 연합뉴스머지포인트는 편의점·대형마트 등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자유롭게 결제할 수 있는 쇼핑·외식 할인 플랫폼을 표방해왔다. 특히 포인트 선불 구매시 약 20%의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고 광고해 이용자들을 대거 끌어 모아왔다. 누적 회원 수만 약 100만명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등록 업체임이 알려지자 대부분의 가맹점이 거래 중단을 선언하면서 '먹튀' 논란이 일었고, 대규모 환불 사태로 이어졌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최근 권 전 대표와 권남희·권보군 남매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