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24일 서울 강동구 대명초등학교 인근 사거리에서 4개차로에 걸친 '대형 싱크홀(땅꺼짐)' 이 발생한 모습. 박종민 기자서울시 강동구에서 발생한 대형 싱크홀(땅 꺼짐) 사고로 30대 남성이 숨진 가운데 서울시가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지하철 공사 과정에서 '수직 그라우팅' 작업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2014년 지하철 9호선 연장공사로 석촌동 지하차도에서 대규모 싱크홀이 발생했을 당시, 서울시는 조사위원회까지 꾸려 "수평 그라우팅 외에 수직 그라우팅도 했어야 했다"고 조사결과까지 내놓은 바 있지만 이번에도 수직 그라우팅 공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조사위원장을 맡았던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도 이번 사고 현장에서도 지반이 약했던 만큼 수직 그라우팅이 필요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결국 서울시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인명사고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1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싱크홀 사망 사고가 발생한 도로 아래에서 진행 중이었던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 사업 1공구' 터널 공사 과정에선 수직 그라우팅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수직 그라우팅은 지하수 등 물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도로 위에 구멍을 뚫고 관을 수직으로 박아 시멘트 등 화학물질을 주입해 지반을 단단하게 다지는 작업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공사 현장에선 주로 '차수(遮水) 그라우팅'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수직 그라우팅이 도로 위에서 이뤄지려면 차량과 보행자의 출입을 제한하는 등 도로 통제가 필수다.
앞서 서울시에 1공구 종점 터널이 붕괴될 우려가 있다며 두 차례 민원을 제기했던 공사 관계자는 "수직 그라우팅을 위한 도로 통제나 도로 공사가 보이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는데, 실제로 이번 공사에서 수직 그라우팅은 진행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도 "수직 그라우팅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단독]지하철공사 관계자, 서울시에 '싱크홀 우려' 민원 2번이나 냈다)
전문가들은 이번 공사에서 "수직 그라우팅으로 지반을 보강하는 작업이 필수였다"고 입을 모은다. 공사 지점이 단단한 암석이 아닌 흙으로 이뤄진 데다 주변 산으로 인해 지하수가 유입될 가능성도 높았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시는 이미 11년 전, 지하철 9호선 연장공사 여파로 석촌지하차도 인근에서 다수의 싱크홀이 발생했을 당시 수직 그라우팅의 필요성을 담은 조사 보고서까지 만들었던 것으로 드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4년 8월, 서울시 송파구 석촌지하차도 인근에서 싱크홀 여러 개가 발견되자 서울시는 지반, 터널, 상하수도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로 이뤄진 조사위를 꾸려 사고 원인을 조사했다.
그 결과 조사위는 '석촌지하차도 동공 발생원인 조사보고서'를 통해 "쉴드터널 공사(지하철 9호선 터널 굴척 공사)의 공사관리, 품질관리 잘못을 주원인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석촌지하차도 동공발생 원인 조사 보고서'에 담긴 석촌 지하차도 부근 도로함몰 및 동공 발견 현황 이미지. 해당 보고서 캡처구체적인 조사결과를 보면 조사위는 "석촌 지하차도 구간은 상부 지층두께가 7~8m로 타 구간 12~20m에 비해 현저히 얇아 지반보강이 필수적"이라고 짚었다. 이어 수평 그라우팅은 미흡하게 이뤄졌고 수직 그라우팅은 아예 시행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쉴드공법 최초 설계시 수평 지반보강 천공개수를 42공으로 계획하였으나, 실제 수평 지반보강은 8공만 시공하고, 수직 보강그라우팅은 시행하지 않아 지반 보강효과가 미흡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시했다.
당시 조사위원장이었던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공사 현장에선 통상적으로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수직 그라우팅을 누락한다"며 "석촌지하차도 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수직 그라우팅을 하지 않은 것이 이번 사고의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석촌 지하차도 동공 발생 원인 조사 보고서'에서 수직 그라우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서술한 부분. 해당 보고서 캡처결국 두 사고는 △지반이 약한 지하철 터널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점 △지반 보강을 위한 '수직 그라우팅' 작업이 누락된 점에서 닮아 있다. 서울시의 안일한 대처로 11년 전 사고가 반복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의 지적에 대해 서울시는 과거 석촌지하차도 싱크홀 사고 때와 달리 이번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 사업 1공구' 공사에선 수직 그라우팅이 필요 없었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공사는 (터널 굴착 공사에서) 나틈(NATM) 공법으로 진행됐다. 이에 따라 수직 그라우팅은 필요없다고 판단했다"며 "교통 통제 등의 문제가 있어 수직 그라우팅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어 "석촌지하차도 굴착 공사 당시엔 나틈 공법이 아닌 실드 공법을 사용하는 등 굴착 방식이 달랐다"고 했다.
또한 공사 현장 일대엔 지하수 수위가 낮아 수직 그라우팅이 필요 없다는 판단이 나왔다고도 부연했다. 아울러 이번 싱크홀이 발생한 지점에서부턴 지반 변화가 보여 갱내 차수 그라우팅은 실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의견은 달랐다. 국민권익위 감사담당관을 지낸 하홍순 한국건설사회환경학회 상임이사는 "암반(돌)이 잘 발달돼 지반이 단단한 지역이 아니라면 대부분 차수 그라우팅(수직 그라우팅)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결국 터널 붕괴로 사망 사고까지 발생하면서 서울시의 판단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선 정밀 조사와 경찰 수사를 통해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