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당이 연루된 정황이 드러나 수세에 몰렸던 국민의힘이 핵심 의혹은 제쳐둔 채 '박지원 게이트'로 맞받아치는 등 국면 전환을 시도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가 지난 12일 국회에서 공수처의 김웅 의원실 압수수색 관련 절차상 문제점과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인 조성은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과 박지원 국정원장과의 만남 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최강욱 고발장' 초안을 전달한 정점식 의원이 고발장 출처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힘은 당내 진상 규명보다 게이트 의혹 띄우기에 집중하고 나서 '물타기' 비판도 나온다. '최강욱 고발장' 출처 모르쇠 정점식…국민의힘은 "사실 확인 중"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 윤창원 기자
검찰이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에 여당 인사 등에 대한 고발을 사주했다는 의혹은 조성은 전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 자신이 제보자라고 스스로 밝히면서 또 다른 국면으로 돌입했다.
조 전 부위원장은 12일 메신저 공격이 거세지자 페이스북에서 "저 개인을 뭉개도 회피할 수 없다"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 캠프를 향해 경고했고, 윤 전 총장 캠프는 조 전 부위원장이 지난달 11일 박지원 국정원장과 만난 사실을 지적하며 '박지원 게이트'로 규정, 수사를 촉구했다.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핵심 의혹은 '최강욱 고발장' 초안의 출처와 지난해 8월 고발장 제출 당 지도부 결재 과정 등 크게 2가지다. 지난 9일
CBS노컷뉴스의 단독보도(관련기사: 국민의힘, '최강욱 당 고발장' 정점식 통해 전달)로 해당 고발장 초안은 지난해 8월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정점식 의원의 손을 거쳐 당무감사실을 통해 조상규 변호사에게 전달된 사실이 확인됐다. 고발장 초안은 윤 전 총장의 측근인 손준성 전 수사정보정책관이 지난해 4월 김웅 의원에게 전달한 초안과 매우 흡사해 논란이 됐다.
당이 직접 연루된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국민의힘은 소극적인 모습이다. 고발장 초안을 당무감사실장에게 전달했다는 정 의원은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당시 초안을 보좌진이 갖고 와서 나는 보고를 받았고, 보좌진이 파일로 받았다고 하는데 그런 걸 전달하고 나면 SNS 방을 폭파했다고 한다"며 "어디선 왔는진 나도 모른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9일 이준석 대표는 '공명선거추진단'을 구성해 고발 사주 의혹 관련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공명선거추진단장을 맡은
김재원 최고위원은 이날 문자 연락에서 정 의원에 대한 조사 과정 등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다. 저희도 별도의 방법으로 확인하고 있다"고만 했다. 당 연루설을 직
접 조사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와 대검찰청 등 수사 기관에 진상규명 작업을 맡기고 최대한 거리를 두는 것 이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의혹은 당 차원의 고발장 제출 과정에서 지도부가 이를 보고 받고 결재까지 했는 지 여부다
. 당 법률자문단 소속 관계자들에 따르면 통상 정당 명의로 제출되는 고발장은 당 대표에게 직속으로 보고되는 사안이다. 이준석 대표도 지난 10일 CBS 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해 "
책임 소재를 당의 이름으로 고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당의 이름을 빌려 고발하면서 대표에게 통보를 하지 않았다든지 아니면 책임자에게 승인을 받지 않았다고 그러면 큰 사건"이라며 "그만큼 정당은 무거운 곳이고 정당의 이름으로 고발한다는 것은 그걸 받는 검찰 입장에서도 가볍게 볼 수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총선 참패 이후 국민의힘은 지난 6월 전당대회까지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유지했다. 김종인 비대위 당시 주요 보직을 맡았던
당 핵심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당시 김 전 위원장에게 최강욱 고발장 등 이런 보고가 들어갔는지 모르겠다"며 "이 정도 알려진 사안이면 사실 당 법률지원단장 전결 사항으로 처리가 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시 원내 핵심 관계자도 "고발 사안은 당내 율사들을 중심으로 결정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의 결재 없이 법률지원단 차원에서 고발이 진행될 수 있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조성은‧박지원 회동에 '게이트' 논란…당내 일각 "고발장과 별개 사안, 윤석열 결자해지"
지난 2018년 1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 전체회의에 당시 박지원 의원과 조성은 전 국민의당 비대위원이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이런 가운데 고발 사주 의혹의 제보자인 조 전 부위원장이 지난달 11일 박 원장을 만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야권 내에선 또 다른 공방이 벌어졌다. 윤 전 총장 캠프 소속 장제원 종합상황실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박 원장이 야당의 유력 주자를 제거하기 위해 대선에 개입한 의혹이 불거졌다"며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 의사를 밝혔다. 윤 전 총장도 이날 오후 청년콘서트 후 기자들과 만나 "
국정원장이라는 직분을 고려할 때 평소 아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잘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김기현 원내대표도 힘을 실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간담회에서
"박 원장과 제보자 조씨의 커넥션이 핵심"이라며 "조 씨가 왜 제보, 언론 보도 후에 박 원장을 만났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점식 의원이 고발장 초안을 받은 출처 등에 대해선 "그건 전혀 의혹도, 문제도 될 일이 아니다"라고만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조 전 부위원장과 박 원장의 회동과 고발장 초안에 대한 야당 연루 의혹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손 전 정책관에서 김웅 의원, 조 전 부위원장으로 이어지는
고발장 초안 전달 의혹은 이미 1년 전에 발생한 사실인 반면 조 전 부위원장과 박 원장의 회동은 불과 한 달 전인 지난달 8월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조 전 부위원장과 박 원장의 만남이 부적절하다는 비판 및 의혹 제기는 할 수 있지만, 고발장 초안의 전달 의혹 사건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내 법률 담당 관계자도 통화에서 "정점식 의원도 당시 일반적으로 오픈된 사안이라 크게 신경을 안 썼을 것"이라며 "지금 정 의원 단계에서 막혔는데 그냥 있는 그대로 설명을 해줘야 뭔가 진척이 된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윤 전 총장을 둘러싼 당내 주자들 간 이합집산도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당내 경쟁후보인
홍준표 의원은 이날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방문 후 기자들과 만나 "
제 문제도 아니고 당 문제도 아니며 후보 개인의 문제"라며 "민주당은 우리 당을 공범으로 엮기 위해 프레임을 짜고 있는데 거기에 넘어가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윤 전 총장의 결자해지를 촉구했다. 김대중 정부 국정상황실장 출신인
장성민 전 의원도 지난 11일 페이스북에서
"국정원장 이슈는 일심협력해서 대응해야 하지만 이제 당도 윤석열과 김웅도 서로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전략적 거리두기에 나서는 상생의 지혜를 발휘할 때"라고 거들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정치 공작 의혹에 대처하기 위한 명분으로 이날 저녁 윤 전 총장과 회동했다. 최 전 원장은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공수처가 야당 후보를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한 것은 묵과할 수 없는 대선 개입 행위로서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리는 폭거"라며 "정보기관의 수장의 수상한 만남도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고 윤 전 총장 방어 전선에 무게를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