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미제로 남은 골프장 강간 살인사건의 범인이 22년 만에 법정에 섰지만 처벌을 피하게 됐다. 살인 혐의 입증에 실패하면서 공소시효 문턱에 걸린 탓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김창형 부장판사)는 17일 성폭력처벌법상 강간 등 살인 혐의로 기소된 A(51)씨에게 면소와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강간 신고를 못하게 할 목적으로 피해자를 때렸다는 것을 넘어서 살해할 고의를 가졌다거나 (살해) 공모를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살인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A씨는 1999년 7월 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골프연습장에서 피해자를 성폭행하고 심하게 때린 후 달아난 혐의를 받는다. 당시 피해자는 목격자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나흘 만에 끝내 숨졌다.
그러나 목격자는 범인의 인상착의 등을 확인하지 못했고 당시 CCTV 등도 보편화되지 않아 장기미제사건으로 남았다. A씨를 다시 법정에 세울 수 있게 된 것은 그로부터 17년이 지나 피해자의 신체에서 채취한 범인의 DNA가 별개의 연쇄 강도살인 범행으로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A씨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부터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공소시효가 발목을 잡았다. 재판부는 '합의한 성관계였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며 "강간하고 살인한 것으로 강하게 의심된다"고 하면서도, 강간죄나 강간치상죄로 처벌할 수는 없었다.
사건 당시 성폭력처벌법상 강간치사죄가 적용되더라도 공소시효는 10년으로 2009년에 이미 도과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강간 혐의 등에 대해 면소를 선고했다.
다만 몇 차례 법 개정을 거치며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된 만큼, 살인의 고의가 인정된다면 처벌이 가능했지만 재판부는 검사가 해당 혐의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날 하늘색 수의를 입고 백발이 성성한 머리로 법정에 나온 A씨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법정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