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A 기관단총을 든 특전사 대원. 군 당국은 이 총을 바꾸기 위해 2010년대 중반부터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사업을 시작했지만 아직도 대체할 총기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우리 군 특수부대에서 쓰일 5.56mm 기관단총과 함께 신형 기관총, 저격총과 관련된 군사기밀을 총기업체에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육군 중령과 해당 업체 대표 등이 잇따라 유죄를 선고받았다.
업계에서 신생으로 분류되는 해당 업체는 2020년 6월 경쟁 업체를 제치고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체계개발 사업 우선협상 대상으로 선정돼 화제가 됐었다. 하지만 사건 여파로 사업도 잠정 중단됐는데, 1심 판결이 나온 뒤에도 정상 궤도를 찾아가려면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총기 개발 사업 우선협상 선정했는데…기밀유출 혐의로 전격 수사
지난해 6월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1형(체계개발) 사업에 우선협상 대상으로 선정됐던 A사 총기. 자료사진특수작전용 기관단총 사업은 1980년대 초반 도입된 구형 K-1A 기관단총을 대체하기 위해 시작됐다. 이 총은 시간이 흐르면서 발전하는 현대 작전요구성능(ROC)에 맞지 않아 교체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사업은 다시 1형(체계개발)과 2형(구매)으로 나뉘는데, 2형 사업으로 도입되는 총기는 전시에 중요한 임무를 맡는 특전사 13특수임무여단 등에 지급되며 1천여정이라는 비교적 적은 양이다. 1형 사업을 통해 도입되는 총기는 1만 5천여정으로, 특전사 모든 부대에서 쓰이던 K-1A 기관단총을 대체할 예정이다.
방위사업청은 2020년 6월 방산업체 A사를 체계개발 사업 우선협상 대상으로 선정했고, 그해 10월 개발을 위한 계약까지 맺었다. 그런데 2020년 7월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A사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해 불법 유출된 군사기밀들을 찾아냈다.
안보지원사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국방부 검찰단과 전주지검은 올해 봄 A사 이사로 일했던 전직 육군 중령 송모씨, 대표 김모씨 등 5명에게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재판 결과는 기밀유출 관련자들 모두 '유죄'
이한형 기자전주지법은 지난 11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대표 김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임원 전모씨와 김모씨에게도 집행유예를 선고했으며, 이모씨에게는 징역 6개월 선고를 유예했다.
이들은 2018년까지 현역 군인 신분으로 총기 사업 관련 업무를 했던 송씨에게 5.56mm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5.56mm 차기 경기관총(K-15), 신형 7.62mm 기관총(구 K-12, 현 K-16), 12.7mm 저격소총 사업 등과 관련된 군사기밀을 넘겨받은 혐의를 받는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해당 군사기밀은 합동참모본부가 진행하는 합참회의 결과, 사업추진 기본전략(안), 전력소요서 등 군 내부 문서들이다. 군에서 어떤 성능을 가진 총기를 요구하는지 적혀 있는 작전요구성능(ROC) 등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총기는 많은 나라에서 민간에도 판매되기 때문에 그 성능 자체만으로는 중요한 비밀이라고 하기 힘들다. 하지만 군에서 무기체계를 도입할 때는 단순히 성능만을 따지지 않고 어떤 성능을 가진 무기가 왜 필요한지 부대 편성과 작전·전술적 의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 때문에 이 문서들은 모두 군사기밀로 취급된다.
송씨는 향후 방위사업청이 발주하겠다고 예상되는 총기 개발 사업을 A사가 따낼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했고, 대가로 김씨 등에게 금품을 받아 챙기고 A사에 취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주지법 재판부는 수사기록 등을 근거로, 대표 김씨는 총기 관련 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송씨로부터 군사기밀 제공을 포함한 관련 정보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고 판단했다. 또한 송씨가 A사에 입사지원서를 제출하기도 전에 새로 마련된 임원 자리로 채용이 확정된 이유가 군사기밀 제공 때문이며 그 외 다른 이유는 찾기 힘들다고 판시했다. 기밀 유출 혐의와 취업 사이에 연관성을 인정한 셈이다.
이를 토대로 재판부는 "입찰 과정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하기 위한 목적에서 당시 군인이었던 송씨로부터 군사기밀을 탐지했는데, 비난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제안서 작성 등 목적을 위해서만 활용됐고, 외국인이나 다른 기업들에게 누설돼 국가안보에 현실적 위험이 발생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지난달 6일 국방부 보통군사법원도 송씨에게 유죄를 인정해 징역 4년형을 선고했다.
군사법원 재판부는 송씨가 건넨 정보가 A사 측이 2016년 방위산업체로 지정되기 전부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는 점, 수첩에 취업을 암시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어 군사기밀 유출 행위에 대가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송씨 측은 혐의는 모두 인정했지만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해,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서 2심 재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사건 여파로 개발 중단, 오래된 총기 대체는 계속 늦어져
정부과천청사 방위사업청. 방사청 제공방위사업청은 이들이 기소된 직후인 지난 6월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개발 사업을 잠정 중단시켰다. A사가 계약을 맺은대로 총기를 개발하기가 힘들겠다고 판단해서다.
이와 함께 당국은 A사에 부정당업자 제재를 의결해, 올해 10월부터 1년 동안 입찰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A사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와 서울행정법원에 이를 취소해 달라고 청구했다. 현재는 청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제재 효력이 정지된 상태다.
방사청은 법원 판결 결과를 고려해서 개발 사업을 어떻게 할지도 조만간 결정할 예정이다. 계약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A사가 해당 총기를 계속 개발하게 되고, 계약을 취소한다면 재입찰공고를 내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5조 2항에 따르면 입찰자 또는 계약상대자는 금품·향응 등을 주거나 받지 말아야 하고, 이를 어길 경우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는 청렴계약을 맺어야 한다. 같은 법 3항에는 "청렴계약을 지키지 아니한 경우 해당 입찰·낙찰을 취소하거나 계약을 해제·해지하여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사건 관련자들이 1심에서 모두 유죄 선고를 받은 점을 생각해 보면 A사가 해당 사업을 계속 진행할 수 있겠다고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결국 기밀유출 혐의로 수사와 재판 그리고 행정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40년 된 K-1A를 대체할 총기 전력화만 하염없이 늦어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