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중앙에 있는 부산 사상~하단선 공사장에 자재들이 쌓여 있다. 박진홍 기자부산도시철도 사상~하단선 1공구 공사가 지난 2017년에 이어 또다시 중단됐다.
자금난으로 기업회생에 들어간 하도급업체는 그동안 원청으로부터 '갑질'을 당해 왔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원청업체는 '사실무근'이라며 맞서고 있다.
부산도시철도 2호선 사상역에서 새벽시장을 잇는 새벽로는 수년째 복공판으로 덮여 있다. 이곳을 지나는 차량이 도로 중앙 공사장을 피해 좁고 울퉁불퉁한 도로를 힘겹게 지나는 모습은 어느새 익숙한 풍경이 됐다.
주민과 상인들은 하루빨리 공사가 마무리돼 불편을 해소하길 바라지만, 사상~하단선 1공구는 지난달 초 또다시 공사 진행을 멈췄다. 시공사 SK에코플랜트와 하도급 계약을 맺은 지역 건설업체 네오그린이 자금난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한 이후부터다.
네오그린은 해당 구간 공사를 맡은 이후로 회사 자금 사정이 급격히 나빠졌다며, 원청인 SK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게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설계와 달라 추가 비용 발생…"자재 구매 떠안았다" 주장도
네오그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018년부터 해당 구간 공사를 맡아왔다. 그전에는 다른 지역 업체가 공사를 맡았으나, 추가 공사비 지급을 요구하며 공사를 멈추는 등 원청과의 갈등 끝에 1년 만에 공사를 포기했다. 이에 네오그린은 기존 금액보다 높은 금액을 제시하며 하도급 계약 협상에 들어갔는데, "추가 공사비는 향후 보전해주겠다"는 SK 관계자의 말을 믿고 기존 업체의 조건과 같이 계약했다고 주장했다.
부산 사상~하단선 공사 현장에 있는 크레인이 작동을 멈췄다. 박진홍 기자하지만 현장 여건은 기존 설계와 크게 달랐다. 가장 큰 문제는 진흙이었다. 일반 흙과 달리 진흙은 물을 많이 머금고 있어 외부로 반출하기 까다롭고, 때에 따라 폐기물 처리를 해야 할 수도 있다. 네오그린이 원청에 처리 방법을 문의하니 "성분상 폐기물이 아니며, 말려서 흙으로 반출하면 된다"며 시험성적서를 내밀었다. 이에 네오그린은 퍼 올린 진흙을 복공판에 두고 일일이 말려 외부로 반출했는데, 이 과정에 들어간 추가 비용만 15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SK 측으로부터 받은 추가 운반비용은 3억 7000만원이 전부였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게다가 네오그린은 SK가 지급해야 하는 공사 자재의 제작까지 떠안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제작했다고 주장했다. 흙막이 자재인 '강관 버팀보 연결구'는 현장설명서에 지급 자재로 기재돼 있었으나, SK 측이 구매 자재라고 주장해 어쩔 수 없이 특허 자재를 제작해 SK에 임대하는 형식을 취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들어간 금액도 10억원에 달하는데, SK로부터 받은 금액은 임대료 명목으로 약 4억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네오그린은 공사를 이어갔지만, 현장 여건이 나빠 공정은 더디게 진행됐고 준공 시기도 3년이나 연기됐다. 월 8000만원에 달하는 간접비용 등은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 때문에 지난해 연말 네오그린의 적자는 60억원에 다다랐다.
버티다 못한 네오그린은 SK와 수개월 간 협상을 벌여 지난해 3월 공사비 67억원을 증액하기로 합의서를 체결했다. 하지만 이 금액에서도 네오그린은 SK 측이 선급금(미리 지급한 돈)과 관계없이 보전해줘야 할 25억원 중 6억 5000만원을 잘못 공제했다며, 추가 지급을 주장하고 있다.
기업회생 들어가자 일방적 계약해지…"공사 계속하게 해달라"
자금 사정이 급격히 나빠진 네오그린은 결국 지난해 11월 29일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그러자 SK 측은 지난달 3일 계약이행 최고장을 보낸 데 이어, 같은 달 10일 하도급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기업회생으로 공사가 중지돼 정상적인 공사 수행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면서 11월 공사대금 2억 3000여만원도 지급하지 않고 선급금에서 공제하겠다고 통보했다.
네오그린은 SK로부터 받아야 할 금액만 받으면 지하철 공사를 이어나갈 수 있다며 지급을 호소했지만, 계약 해지 통보 외에는 별다른 답을 듣지 못한 상태다.
길 한복판에 있는 부산 사상~하단선 공사장 앞에 차량이 주차된 모습과, 그 옆으로 난 좁은 통행로. 박진홍 기자네오그린 관계자는 "받을 돈이 없으면 할 말이 없겠지만, 아직 지급하지 않은 선급금 6억 5000만원과 SK 대신 제작한 공사 자재에 대한 차액분 4억원만 줘도 장비·자재업체들에 체불금을 지급하고 공사를 이어갈 수 있다"며 "이 현장을 살려보려고 회사 자산도 매각하는 등 노력을 해왔는데, 회생신청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이어 "계약해지 이후 SK는 계약보증 등 각종 보증금액을 보증사로부터 받아 갈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보증사는 우리에게 구상권 행사를 하게 돼 결국 그 금액도 고스란히 우리가 물어야 한다"며 "이미 발생한 수십억원의 적자에 보증금까지 고려하면 우리는 한 현장에서 100억원 적자를 봐야 한다는 건데, 과연 이게 이치에 맞는 이야기인가"라고 덧붙였다.
반복된 공사중단이 해지 사유…"추가 지급 비용 없다" 반박
이에 대해 원청인 SK에코플랜트 측은 기업회생이 아닌 네오그린의 거듭된 공사 중지가 계약 해지 사유이며, 네오그린에 추가로 지급해야 할 금액은 없다고 반박했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 2020년 11월에도 장비비 체불금 누적으로 공사가 3개월가량 중단됐고, 지난달 초에도 채권자들의 작업 거부로 공사가 중단되는 등 네오그린이 하도급 계약상 중요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계약 해지를 통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산 사상~하단선 공사장 옆 좁은 도로로 차량이 지나고 있다. 박진홍 기자이어 "선급금 6억 5000만원을 잘못 공제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SK는 지난 2020년 5월 선급금 25억원을 지급한 데 더해, 지난해 초 합의서 체결 이후 추가공사비 67억원 중 지난해 11월까지 32억원을 지급했다"면서, "이 공사비를 지급하면서 공제한 선급금 6억 5천만원은 표준하도급계약서 및 합의서에 따른 선급금 지급률(24%)대로 공제한 것이며, 결과적으로 SK는 선급금 25억원 중 10억원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라고 밝혔다.
또 "보증금 역시 남은 공사 비용이 보증한도액을 넘으면 그 금액만큼 SK의 손실이 되며, 현재 네오그린에 실제 공사한 것보다 더 많이 지급한 금액(과기성금)도 24억원이나 되지만 이 역시 회수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항변했다.
공사 자재 제작을 떠안겼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강관 버팀보 연결구와 연결재는 지난 2018년 네오그린이 구매·제작해 비용을 지급하는 것으로 변경 계약했으며, 네오그린 요청대로 계약금액 3억 9000만원 증액에 대해 협조했다"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