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재명 - 윤석열 - 심상정 - 안철수 후보. 연합뉴스역대 대선 D-60 시점의 판세는 실제 개표 결과와 얼마나 일치했을까.
22대 대통령 선거일을 59일 남겨둔 9일, 과거 양강
·3자·다자 등 다양한 구도 속에서 치러진 역대 대선의 결과와 D-60 시점을 비교해봤다. 대체로 선두주자가 대권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단일화 등 변수로 뒤집히는 일도 있었다.
YS·DJ 단일화 불발로 노태우 당선…단일화 이뤘지만 2002년은 승리, 2012년은 패배
CBS가 의뢰해 여론조사 전문업체 서던포스트가 지난 7~8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34.1%를 기록,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26.4%,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12.8%에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7.7%p이며 자세한 내용은 서던포스트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 후보가 당 내홍과 배우자 관련 논란 등으로 인해 지지율이 주춤하는 사이 이 후보가 1위를 차지했고, 범보수 야권 주자 중 한 명으로 윤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안 후보의 지지율 또한 크게 올랐다.
이같은 후보 대결구도와 지지율 추이는 대선을 앞두고 주요 후보 간 단일화 여부가 주목받았던 1987년, 2002년, 2012년 대선과 닮아있다.
대선이 직선제로 다시 바뀐 후 처음 치러진 1987년 13대 대선은 민주정의당 노태우, 통일민주당 김영삼,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의 3파전으로 치러졌다.
D-59인 한국갤럽의 1987년 10월 18일 대선 사전여론조사에 따르면 당시 판세는 노태우 38.8%, 김영삼 20.9%, 김대중 23.7%였다.
전두환 정부의 종료 이후 민주정부 수립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던 만큼 민주진영 단일후보 출마만 이뤄진다면 군부 독재를 종식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 양김 간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결국 힘을 합치지 못하면서 또 한 차례 군 출신이자 여당의 노 후보가 정권을 거머쥐게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왼쪽)과 노태우 전 대통령. 연합뉴스최종 득표율은 노태우 36.6%, 김영삼 28.0%, 김대중 27.1%였다.
2002년 16대 대선도 D-60 시점에 여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의 3파전이 진행됐다.
한국갤럽의 D-61(2002년 10월 19일) 조사에 따르면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던 이 후보가 33.4%를 얻어 1위였고, 노 후보 17.1%, 정 후보 27.0%로 나타났다.
일찌감치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음에도 당 안팎의 갈등으로 인해 좀처럼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하던 노 후보는 정 후보와의 단일화에서 승리하며 그 여세를 몰아 대선에서도 48.9%의 득표율로 46.6%에 그친 이 후보를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2012년 18대 대선도 2002년과 유사하게 여당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무소속 안철수 후보 간 3파전으로 전개됐다.
D-61인 2012년 10월 19일 한국갤럽 조사 결과 박 후보 36%, 안 후보 27%, 문 후보 20% 순으로 지지를 얻었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박 후보 42.5%, 안 후보 28.5%, 문 후보 22.0% 순으로 나타났다.
2002년과 같이 야권 주자들인 문 후보와 안 후보가 단일화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단일화도 성사돼 최종적으로는 일대일 구도로 선거가 치러졌지만 이번에는 박 후보가 51.6%의 득표율로 48.0%에 그친 문 후보를 제쳤다.
2002년 단일화가 막판 정 후보의 지지철회 등 논란을 빚었음에도 단일화 과정이 여론조사를 통해 공개적으로 진행된 반면, 2012년은 안 후보가 협상 도중 일방적으로 중도하차를 선언하는 등 감정적 앙금이 다 해소되지 않아 지지층 결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중론이다.
'한 지붕 두 후보'도 1997년 이회창은 고배, 2007년 이명박은 대승 엇갈려
15, 16대 대선에 나온 이회창 후보. 연합뉴스2, 3위 후보 간 단일화 여부가 주목받지 않았던 나머지 대선에서는 D-60 시점에서 지지율 선두를 기록한 후보가 모두 승리했다.
다만 한 진영에서 다수의 후보가 나온 경우는 상황에 따라 해당 정당의 희비가 엇갈렸다.
이인제 후보가 여당인 한나라당을 박차고 나와 한나라당 이회창-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국민신당 이인제 3파전으로 치러진 1997년 15대 대선은 단일 세력의 분할이 패배의 원인이 됐다.
D-54인 1997년 10월 25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김대중 후보가 34.3%로 1위를 기록했고, 이인제 후보 26.8%, 이회창 후보 16.1% 순으로 뒤를 이었다.
한때 30% 중후반대의 지지율로 단독 1위를 구가했던 이회창 후보는 이인제 후보 탈당 후 단 한 차례도 지지율 역전을 이뤄내지 못하며 대권을 김 후보에게 내줬다.
반면 한나라당 후보가 이명박 후보로 이미 결정된 상황임에도 이회창 후보의 정계은퇴 번복으로 보수 진영 후보가 2명이 된 2007년 17대 대선은 이명박 후보의 대세론에 끝까지 유지된 선거였다.
2007년 10월 16일(D-64)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후보는 55.5%를 기록해 16.2%인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여유 있게 제쳤다. 리얼미터의 같은 해 10월 17일 조사(D-63)에서도 이 후보는 50.3%의 과반 지지율로 17.2%인 정 후보에 앞섰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그로부터 20여일 후 이회창 후보가 대선에 참전했지만 이명박 후보는 꾸준히 40%대 지지율을 유지하며 압도적인 모습으로 선거를 승리했다.
이러한 엇갈린 성적표로 인해 국민의힘 윤석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간 단일화 여부와 그 파급효과에 대한 전망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다만 선거까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윤 후보가 1달 전까지 유지하던 우위를 손쉽게 놓친 데 이어 안 후보의 상승세가 상당한 만큼 윤·안 두 후보 간 단일화를 상수로 봐야한다는 데는 정치권 내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이 후보가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상승세가 아닌 박스권에 갇혀있고, 대선 승리를 위해 서로를 보완해 줄 부분을 지녔다는 점에서 윤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는 상수에 가깝다"며 "단일화를 이루더라도 과정이 길어질 경우 효과가 떨어지고, 구정 명절이 3주 앞으로 다가왔다는 점에서 어떤 단일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