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이귀영 씨 (통가 현지 교민) (취재 : 김광일 기자)
지금부터는 통가 현지를 연결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다 아시겠지만 통가에서 역대급 화산 폭발이 있었죠. 이게 어느 정도였냐면 히로시마 원폭 500배에 달하는 위력이었고요. 21세기 들어서 가장 큰 화산폭발로 기록이 될 정도의 대규모 폭발이였습니다. 오죽하면 우주에 떠 있는 위성에서 이 폭발 현장이 생생하게 잡힐 정도였습니다.
그 여파로 화산 폭발 직후에 모든 통신이 두절이 된 상황이었는데 통신선이 점차 복구가 되면서 지금 통가 지역의 상황들이 속속 전해지고 있습니다. 통가에 우리 교민들이 몇 명 있는가, 처음에 2명이다, 4명이다 얘기가 있었는데 총 20여 명 정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이렇게 파악이 되고 있어요. 그 중에 한 분과 정말 어렵게 연락이 닿았습니다. 저희가 어제 연락을 취하고 나서 '오늘 새벽에 그럼 연락드릴게요'라고 했는데 그 후로도 한 50번 전화를 해서 여기가 연결이 된 거거든요. 저희 CBS 김광일 기자가 이 분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들어보시죠.
◇ 김광일> 선생님 들리시나요?
◆ 이귀영> 네, 잘 들립니다.
화산 폭발 이후 통가 모습 - 현지 교민 제공◇ 김광일> 선생님께서 통가에 계속 남아 계신 거죠?
◆ 이귀영> 현재 교민들 하고 저희들 하고 다 거주하고 있습니다.
◇ 김광일> 그 교민분이 열여덟분 정도 남아 있다고 지금 국내에는 보도가 되고 있어요. 연락은 서로 되고 계신 건가요?
◆ 이귀영> 네. 서로 연락하고 지금 2~3일 지나고 다들 얼굴 봤습니다.
◇ 김광일> 교민분들 중에서의 큰 피해가 있으신 분이 있으실까요?
◆ 이귀영> 없습니다. 현재는 별로 없습니다.
◇ 김광일> 일단 우리 교민 분들 사이에서 피해가 없다는 건 그나마 다행으로 들리고요.
◆ 이귀영> 그렇지요.
◇ 김광일> 이귀영 선생님은 통가에서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신 거예요?
◆ 이귀영> 제가 여기에서 한국 식당을 하고 있어요. 한 12년 째.
◇ 김광일> 12년째 식당을 하고 계세요.
◆ 이귀영> 네.
◇ 김광일> 화산 폭발이 지난 15일에 있었잖아요. 그때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마 잊으실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그때 딱 그 사고가 터졌을 당시에 선생님께서 어떤 상황에 있으셨을까요.
◆ 이귀영> 그날이 토요일인데 오후 5시 조금 넘었어요. 그 시간이. 그래서 그 시간대에 처음에 폭발 굉음이 들려서 한번 터지고 그다음에 3~4분 간격으로 계속해서 4번이 터졌어요. 저희 집이 바닷가와 가까워요. 한 200m거리. 바닷가 200m 거리인데 소리를 듣고 저희가 다 놀라서 방송을 들어보니까 경찰하고 동네 사람들이 다 피신하라고. 사람들이 밖으로 다 나갔어요.
트위터 캡처◇ 김광일> 제일 먼저 폭발 소리를 들으신 거군요.
◆ 이귀영> 그렇죠. 그 폭발음이 제 귀가 멍할 정도로. 섬하고 폭발한 위치하고는 한 70km 떨어졌어요. 거리가. 그래서 70km 떨어졌는데 70km 지점에서 폭발한 굉음이 저희들한테 귀가 멍할 정도의 소리가 울렸어요.
◇ 김광일> 댁 안에 계셨는데 귀가 멍할 정도로 소리가 컸어요?
◆ 이귀영> 그렇죠, 그렇죠. 그렇게 시작이 되면서 저희가 피신을 준비하려고 저희들이 여권하고 중요한 것을 다 차에 챙겨서 밖으로 나왔죠.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4번이 들리는 거예요.
◇ 김광일> 한 번 울린 게 아니라 그다음에 3번이 더, 총 4번의 소리가 꽝꽝꽝 들렸던 거군요.
◆ 이귀영> 네. 그러고 나서 다섯 번째 가서 대폭발이 일어난 거예요.
◇ 김광일> 그러면 다섯 번째 폭발은 귀에 오는 충격이 더 컸겠군요.
◆ 이귀영> 그렇죠, 그렇죠. 처음 폭발이 있었을 때 섬 주변에 박쥐들이 많아요. 그 박쥐들이 낮에는 활동을 안 하고 나무에 매달려 있는데 처음 폭발할 때 그 소리를 듣고 박쥐들이 하늘에 전부 다 시커멓게 다 날라다녔어요.
◇ 김광일> 박쥐들이 놀라서 하늘 위로 날아갔다는 말씀이세요?
◆ 이귀영> 그렇죠. 하늘에 전부 시커멓게 박쥐가 다 날아다녀서 난리가 났어요. 그러고 나서 저희 시야에 들어온 것이 마지막 폭발 때 하늘이 갑자기 시커맸어요.
◇ 김광일> 하늘이요? 그건 화산재가 날렸던 건가요?
◆ 이귀영> 그렇죠. 이 화산재가 폭발이 되면서 전체 하늘을 다 덮어버린 거죠. 그러고 나서 그 화산재가 덮고 나서 한 몇 분 있다가 돌멩이들이 손가락, 엄지 손톱만한 돌멩이들이, 화산 돌들이 하늘에서 우박 떨어지듯이 막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 김광일> 그러면 그게 차에 계신 상황이었을 텐데. 그렇죠?
◆ 이귀영> 그렇죠. 저희가 복귀를 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요.
◇ 김광일> 그러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돌들을 직접 누가 맞으시거나 가족 분들 중에 그거로 피해를 입거나 그러지는 않으셨을까요?
◆ 이귀영> 네, 그리고 저희는 차량으로 이동 중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요. 차에 유리가 막 돌멩이가 떨어지고 난리 났어요. 그래서 와이퍼로 유리를 닦으려고 해도 굉장히 닦기가 힘들었어요.
◇ 김광일> 와이퍼로 워셔액을 뿌려도 차 유리가 잘 시야가 보이지 않던가요?
◆ 이귀영> 그렇죠. 저희가 그다음에 그러한 돌들이 떨어지고 나서 그뒤에 바로 계속해서 고운 화산재 먼지가 계속 떨어졌어요, 그 당시에요.
◇ 김광일> 바닷가가 댁이라고 하셨는데 그때 그러면 파도나 쓰나미가 덮쳐오거나 그러지는 않았나요?
화산 폭발 이후 통가 모습 - 현지 교민 제공◆ 이귀영> 처음에 폭발할 때 빼고 두 번? 한 세 번째 폭발 그 시점부터 작은 파도들이 밀려왔어요.
◇ 김광일> 파도가 밀려왔어요.
◆ 이귀영> 밀려오고 저희 지인들이 바닷가에서 그걸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마지막 폭발이 있고 나서 한 몇 분 뒤에 큰 파도가 밀려오는데 자기네들이 볼 때는 파도 높이가 근 50~60m 됐다고 해요.
◇ 김광일> 파도가 50~60m요? 영화 속에서나 봤을 법한 그런 파도일 텐데요.
◆ 이귀영> 앞에 작은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하면서 뒤에 큰 파도가 밀려오는 광경을 봤대요, 그분들은.
◇ 김광일> 50~60m, 파도가 덮친 곳은 상황이 어떻다고 하던가요?
◆ 이귀영> 그 파도가 밀려오고 나서부터는 파도에 근접한 바닷가에 있는 리조트라든지 이런 동네들은요. 거의 다 날라갔어요. 파도에 쓸려서.
◇ 김광일> 동네에 가옥이 침수되거나 차량이 유실되고 뭐 그런 상황이에요?
◆ 이귀영> 한 마을은 다 쓸어버리고. 바닷가 주변에 리조트들이 한 4~5개 있어요. 그런데 그 리조트들도 다 쓸어버렸어요.
◇ 김광일> 리조트들이 쓸려버렸다는 건 그 자리에 그 리조트가 아예 남아 있지 않다는 말씀이신가요?
◆ 이귀영> 네, 흔적이 없어요.
◇ 김광일> 리조트의 흔적이 없어졌어요? 끔찍하네요.
◆ 이귀영> 네. 건물이 주로 여기는 목조로 사용을 해서 목조 건물을 많이 쓰기 때문에 바닷가에 콘크리트 옹벽하고 바닷가에 있는 큰 돌들이나 해안가 방파제가 다 밀려 나왔으니까요. 그러니까 목조건물이고 뭐고 콘크리트 옹벽까지 다 쓸어버렸으니까요.
화산 폭발 이후 통가 모습 - 현지 교민 제공◇ 김광일> 선생님은 바닷가에 계신 댁에서 대피를 어느 곳으로 하셨을까요?
◆ 이귀영> 여기가 평소에 차량으로 한 10분 정도 거리에 고지대가 있습니다. 약간 높은 고지대가. 제가 볼 때는 해발 한 100m 정도 되는 고지대가 있거든요.
◇ 김광일> 해발 100m쯤 되는 고지대요.
◆ 이귀영> 네. 그 사람들이 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지금 현재 한 군데뿐이에요, 고지대는. 그렇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그쪽으로 다 몰려서 가버리니까 저희가 평소에 거기까지는 차량으로 한 10분 정도뿐이 안 걸려요. 그런데 그날 저희가 피신할 때는 두 시간 반 걸렸어요.
◇ 김광일> 10분 정도 거리가 2시간 반이 걸렸어요?
◆ 이귀영> 네.
◇ 김광일> 그러니까 딱 우리 재난영화 보면 대피하는 피난객들로 차량이 꽉 막혀서 오도가도 못하는 그런 상황들 영화 속에서나 봤을 그림들이 있는데, 그 상황에 딱 처하셨던 거군요.
◆ 이귀영> 네. 그런데 그동안에 저희가 살면서 지진, 8.6 지진도 겪어보고 그다음에 풍속 250km 사이클론 그런 것도 겪어봐서 이번 상황은 전혀 달라요. 여기가 저희가 견딜 수 있는 상황이 사람으로서의 어떤 표현할 수가 없어요. 너무 놀란 상황이라서. 그동안 겪었던 재난을 겪어봐도 이번만큼 겪은 것은 저희가 처음이지만 진짜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상황이더라고요.
◇ 김광일>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상황. 그때 대피하신 다음에 지금은 댁으로 돌아오신 건가요?
◆ 이귀영> 그렇죠. 그날 저녁에 밤늦게 저희가 한 밤 10시 정도 돼서 이 시내로 들어와봤어요. 저희가. 들어왔는데 이미 시내가 많은 사람들이 이동을 해서 사람 인적이 없고, 인적이 없고 전기가 다 정전이 돼서 완전 암흑이었어요. 온 도로에 화산재가 한 3cm에서 5cm 정도 눈 쌓인 것처럼 다 쌓여있었으니까요.
◇ 김광일> 사망자가 3명이 있다 이렇게까지 알려지고 있는데 현지에서는 그게 파악이 되고 계실까요?
◆ 이귀영> 지금 제가 보는 판단으로서는 사망자가 3명, 4명으로 나와 있는데 여기에 이 본섬에만 지금 그런 상황이지. 다른 섬에 사람 사는 섬이 다른 데가 몇 군에 있거든요. 그쪽에는 피해 상황을 저희가 지금 예측을 못해요.
◇ 김광일>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선생님. 현장 복구하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 도움이 필요한 건 뭐가 있을까요.
◆ 이귀영> 지금 현재 여기가 식수가, 지금 수도는 공급은 되고 있는데 수질이 별로 좋지가 않아요.
◇ 김광일> 수질이 좋지 않아요.
◆ 이귀영> 그 전에는 주로 현지인 분이 여기가 청정지역이라서 빗물을 받아서 탱크에 받아서 빗물을 식수로 많이 활용을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화산재가 다 쏟아지는 바람에 빗물을 먹으면 안 돼요. 먹을 수가 없고. 그러니까 마실 수 있는 이 식수를 갖다가 지금 뉴질랜드나 호주에서 수급이 되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도 지금 한 3일 전부터 뉴질랜드에 있는 한국대사관이 이쪽 지역 관할이거든요. 그래서 그 대사관에서 저희들하고 통화를 몇 번 해서 대사관에서 구호품이랑 물하고 마스크하고 긴급 의약품하고 해서 저희들한테 공급해 주기로 지금 약속이 돼 있어요.
◇ 김광일> 그러면 통가가 정말 화산폭발 이전에 일상생활을 계속하던 수준으로 돌아가려면 얼마나 걸릴 거라고 보세요?
◆ 이귀영> 지금 그걸 어떻게 제 판단으로서는 지금 얼마라고 단정을 지을 수는 없는데 제 생각에는 한 1, 2년 이상 걸릴 것 같아요.
◇ 김광일> 1, 2년이요. 어려운 증언 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 이귀영>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