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모습. 고상현 기자"내가 너희들 대학 다 떨어지게 물 떠놓고 빈다." "XX년 쟤네들 대학 못 가." "고유정(전남편 살해범)도 아니고." "멍청아, 그러니깐 공부를 못하지." "자는 애들은 나중에 술집에서 일한다."
올해 졸업한 제주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3년간 일부 교사들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학생들은 교사들의 폭언뿐만 아니라 성희롱, 물리적 체벌, 학습권 침해 등을 호소했다. 지난해 1월 제주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된 지 1년이 넘었지만, 해당 학교에서 벌어진 학생 인권침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다리 쓰다듬거나 "X발" "전문대면서 왜" 폭언
제주학생인권조례TF팀과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은 15일 도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제주여자고등학교 학생 인권침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피해 학생의 문제제기로 시작됐다. 조사는 지난 1월 27일부터 30일까지 올해 졸업생 8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형태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생 57.5%(50명)가 교사로부터 욕설, 협박, 비방 등 폭언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인권침해 사례를 보면 한 학생은 대학 진학 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교사로부터 "그냥 남자를 잘 만나" "왜 이제야 상담 받아 X발" "전문대면서 왜" 등의 폭언을 들어야 했다.
교사로부터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한 학생도 10.3%(9명)나 있었다. 한 교사는 교무실에서 상담할 때 갑자기 학생의 어깨와 다리를 쓰다듬거나 바지 지퍼를 열고 다니며 속옷을 노출했다. 주먹으로 팔뚝을 때리거나 목을 조르는 등 물리적 체벌이나 폭행을 당했다는 학생들(8%)도 있다.
학습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학생도 29.9%(26명)로 조사됐다. 주요 사례를 보면 교사가 무단으로 수업에 들어오지 않거나 수업 시간 내내 수업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진도를 나가지 않았다. 또 일부 학생들이 집중을 안 한다며 수업 도중 출석부를 던지고 나가버리는 교사도 있었다.
이밖에 교사가 대면 수업 중에 마스크를 쓰지 않는 등 방역수칙을 어기거나(79.3%) 카카오톡 단체방에 학생 성적을 올리고 수능 점수를 공개하는 등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사례(23%)도 있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신강협 상임활동가는 "교사가 가진 생활기록부 작성 권한 등의 이유로 피해 학생들은 제대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어렵게 문제 제기를 하더라도 학교 측은 무마한다거나 불이익을 주는 등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 측 "극소수 일부 교사의 문제…조사 내용 편향돼"
인권침해 논란이 불거지자 학교 측에서는 "극소수 일부 교사"의 문제라고 축소했다.
제주여자고등학교는 이날 '제주여고 학생인권침해 보고서에 대한 학교 입장문'을 통해 "학생을 진정으로 아끼는 대다수 선생님들이 이번 일로 한꺼번에 매도되고 있다. 극소수 일부 선생님들 때문에 상처 받은 학생도 피해자이지만, 아무 잘못 없이 열심히 살아온 선생님들도 피해자"라고 밝혔다.
또 "이 문제를 먼저 학교에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민주적인 절차다. 한 번도 공식적으로 거론된 적이 없이 한 학생이 졸업 후 학우들에게 개인적인 상처에 대한 하소연과 설문조사를 병행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인권 교육보다 민주시민 교육을 잘못했다고 자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사 내용의 편향성도 지적했다. 학교 측은 "기준이 모호한 항목으로 교사의 신상을 매도한 점, 정황에 대한 설명도 사실 관계도 없이 성희롱으로 규정한 점, 내부적으로 제기된 적도 없는 문제를 학교의 대처가 미흡했다고 사실과 다르게 유포한 점 등에 대해 심히 유감이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번 보고서에 언급된 사안에 대해서는 자체 조사를 통해 문제점을 확인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앞으로 교사의 폭언이나 학생 비판 발언은 절대 없을 것이다. 모든 면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학생들을 더 존중하고 더 좋은 학교로 만들겠다"라고 밝혔다.
교육 당국 조사 나서…"인권조례 제정 이후 대응 미흡"
제주도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 김영관 센터장 언론 브리핑 모습. 고상현 기자제주도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에서는 이번 사안에 대해 조사에 나섰다.
학생인권교육센터 김영관 센터장은 이날 언론 브리핑을 통해 "해당 학교에 대해서 실제 학생 인권침해 내용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예정이다. 조사 과정에서 피해 학생이 노출되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인권침해가 확인되면 학교에 개선하도록 권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지난해 1월 제주학생인권조례 공포 이후 도교육청 차원의 대응이 미흡했다고 인정했다.
김영관 센터장은 "조례 제정된 지 1년이 됐다. 그동안 학생인권조례를 알리기 위해서 리플릿이나 업무 매뉴얼을 제작해서 학교에 알렸다. 또 학교 관리자나 교원들 대상으로 인권 연수를 진행해서 학생 인권 신장되도록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학교 문화가 인권 친화적으로 변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