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62만 1328명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60만명을 넘어선 17일 서울 송파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박종민 기자오미크론 변이의 대유행이 정점을 향해 치달으면서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60만'을 넘겼고, 하루 사망자는 429명으로 역대 최다치를 경신했다. 이달 14일부터 전문가용 신속항원검사 양성을 확진자로 간주한 조치와 질병관리청의 시스템 오류로 누락된 약 7만 명이 반영된 통계임을 감안해도 엄청난 규모다.
정부는 검사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숨은 감염자'가 잡힌 결과로 해석했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유행 증가세가 본격화됐을 때부터
'계절 독감'을 입에 올리는 등 오미크론의 위험성을 얕잡아본 정부의 메시지 전달이 심리적 방역을 푸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또 현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속적으로 거리두기 완화를 추진해온 것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2월 초 '계절독감' 언급하더니…정점구간서 "1급 감염병 해제 검토"
전문가들은 정부가 유행상황에 근거한 방역 정책을 내놓기보다 앞서가는 성급한 방역완화 기조로 위기를 자초했다고 지적한다.
서울 구로구의 한 이비인후과가 코로나19 검사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박종민 기자앞서
정부는 지난달 4일 '계절 독감'이라는 단어를 처음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이기일 제1통제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확진자가 증가하더라도 위중증·치명률이 계속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의료체계 여력이 충분하다면 방역 규제를 단계적으로 해제하면서 일상회복을 다시 시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중대본은 해당 발언과 관련해 "의료체계 여력, 최종 중증화율·치명률 등을 평가하면서 계절독감과 유사한 방역·의료 체계로의 전환 가능성을 본격 검토한다"고 설명했다.
당시 신규 확진자는 2만 7천여 명 수준으로 오미크론 우세종화에 따라 매주 확진자가 2배로 불어나는 '더블링'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정점이 언제인지 예측하기도 어려운 시점에 오미크론 변이를 계절독감에 빗댄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정부는 오미크론의 치명률(0.16%)이 델타 변이(0.8%)의 5분의 1 정도라는 점을 내세웠지만, 위중증·사망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유행 초반의 수치임을 고려하면 빈약한 근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또 정부는
눈에 보이는 병상 가동률만을 들어 "아직 우리 의료체계가 감당가능한 수준"이라는 말만 반복해 왔다. 일일 확진자의 증감보다는 '중증환자·사망자'가 더 핵심적인 지표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전체 확진규모가 급격히 불어나면서, 이달 8일 1천 명대(1007명)에 진입한 위중증 환자는 16일 최다기록(1244명)을 갈아치우는 등 열흘째 네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전국 중환자 전담병상 가동률은 65.6%(2801병상 중 1838병상 사용)로 30% 이상의 여력이 남아 있지만, 곧 포화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역 간 불균형도 심해 비수도권 지역(72.4%)은 수도권(62.8%)보다 10%p 가까이 여유가 더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갔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 16일 "머지않아 회복의 시간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일상적인 의료체계에서 코로나 대응이 가능하도록
현재 1급으로 지정된 감염병 등급을 조정하는 방안을 의료계와 함께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발생 즉시 신고와 격리치료가 의무인 '1급' 감염병 해제를 검토하겠다는 것은 코로나19를 더 이상 국가가 적극 관리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정부 스스로가
지금이 '정점 구간'이라고 정의한 것과는 결이 맞지 않는 모양새였다.
영업제한 밤 9시→10시→11시…"사실상 거리두기 없는 상황"
정부가 견지해온 방역완화 방침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17일 서울 종로구 식당가의 한 주점에 영업시간 안내문이 붙어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는 가운데 방역당국은 21일부터 적용할 새로운 거리두기 조정안을 18일 확정할 계획이다. 연합뉴스정부는 지난달 19일 유흥시설과 식당·카페 등의 영업시간을 밤 9시에서 10시로 연장한 데 이어 이달 1일에는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를 잠정 해제했다.
당초
적용기간을 3주로 발표했다가 대선을 앞두고 조기에 푸는 일도 있었다. 지난 13일까지였던 거리두기를 주말이었던 5일로 당겨 '밤 11시'로 영업시간을 1시간 더 늘린 것이다. 올 1월 중순부터 시작된
'사적모임 최대 6명' 등만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규제가 다 사라진 셈이다.
이같은 정부 정책에 반발해 '코로나19 일상회복 지원위원회' 자문위원 직에서 사퇴한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난 16일 CBS 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해
"(정부가) 거리두기는 이미 포기한 걸로 본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지금 정점을 찍지 않았는데 먼저 할 필요가 없는 얘기들을 계속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유행을 마지막 유행으로 한 번 만들고 끝내겠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면 절대 이런 방향으로 (방역을) 끌어갈 수 없다"고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아울러 "미국도, 영국도 정점을 찍고 (확산세가) 꺾이고 난 다음에 '끝났구나' 하고 얘기를 하지,
'(곧) 정점이 될 거니까 완화시켜도 된다'는 국가는 한 곳도 없다"며 최소한 현행 거리두기라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 역시 "우리보다 먼저 유행을 경험한 나라들은 오미크론 치명률이 낮다는 정보가 나온 중에도 다 방역을 강화했다"며
"우리는 (유행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점부터 방역을 완화하는 등 거꾸로 간 바람에 난장판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도 "정부가 지금까지 예측한 유행규모가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다. 정부의 정책이 (수리모델링에 있어) 상수가 돼야 하는데 오히려 변수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서울 시내 한 대형 쇼핑몰이 나들이객들로 붐비고 있다. 황진환 기자"정부가 방역 포기한다는 인상"…다음주 '6명→8명' 거리두기 완화 검토
정부는
오는 21일부터 사적모임만 최대 8명으로 소폭 완화하는 방안을 두고 고심 중이다. 일상회복 지원위와 지자체 등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정부는 18일 오전 중대본 브리핑을 통해 다음 주 거리두기 조정안을 발표한다.
모임인원 6명·밤 11시 영업제한을 골자로 하는 현행 거리두기는 이번 주말 종료된다.
당초 정부는 '모임 8명·밤 12시(자정)' 안(案)을 유력하게 검토했지만, 확산세가 예상보다 커지면서 미세조정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국민들의 '심리적 방역'을 무너뜨리는 정부의 메시지가 방역 완화보다 더 큰 문제라고 짚었다.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천은미 교수는 "제 주변에도 의심증상이 있지만 진단검사를 안 하는 분들이 꽤 있다. 확진이 되더라도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 실익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모든 곳에 감염원이 퍼져 있어 거리두기 완화가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이 시점에 거리두기 완화를 논하는 것은
국민 입장에서 '정말 (방역을) 포기했나 보다'라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19에 걸려 자연면역을 얻는다 해도 확진자가 앓는 동안의 진료체계는 국가가 책임 있게 마련해줘야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김우주 교수 또한 "만약 밤 11시에서 자정으로 영업시간을 1시간 늘린다면 직접적 영향은 크지 않을 거다. 국민 대부분이 11시 전에 귀가하는 게 습관이 됐기 때문"이라면서도 "정부가 '(오미크론) 치명률이 계절독감 수준', '감염병등급을 낮추겠다' 등
계속 국민들의 경계심을 허무는 시그널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재갑 교수는 "코로나 환자가 하루 40만씩 발생하는 건 정말 우리가 극단에 와 있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지금이 위기'라고 메시지라도 정확하게 전달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현 거리두기) 유지를 넘어 사실 강화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강화하면 1주 뒤 정점을 찍고 내려간다는 게 우리의 경험칙"이라면서도 "그럴 일이 없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