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그것이 알고 싶다' 화면 캡처 2021년 5월, 공군 15 전투비행단에서 근무하던 24살 이예람 중사가 상관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졌다.
많은 이들이 이 중사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공군의 사건 대응에 대해 공분했다.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는 유가족의 국민청원은 40만 명이 넘게 동의했다.
이 중사의 죽음을 놓고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대적인 수사를 지시했다. 창군 이래 최초로 특임검사가 임명됐고 수사심의위원회까지 설치됐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지난 2월 유가족을 만났다. 그런데 이 중사의 아버지는 딸을 여전히 차가운 영안실에 안치한 채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었다. 수사 결과가 딸의 억울함을 풀어주기엔 너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수사는 왜 유가족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준 걸까.
81일의 심리부검, 이예람 중사에겐 무슨 일이 있었나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건 2021년 3월 2일이다. 이 중사는 곧바로 상관에게 보고했고 가해자를 신고했다.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던 상급자를 신고하는 일이라 심리적 어려움이 많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상담도 받는 등 이 중사는 본인에게 닥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다른 부대로 전속도 갔다.
하지만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지 81일째인 2021년 5월 21일, 이 중사는 관사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미뤄오던 혼인신고를 하는 등 삶의 희망을 살려가던 이 중사가 돌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는 무엇일까.
제작진은 이 중사가 남긴 사진, 영상, 글, 수사기록을 입수했다. 도대체 성폭력 사건 발생 이후 81일간 이 중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가 메모에 남긴 '모두'는 누구를 의미하는 걸까.
'사건을 식힌다'…81일이 감춘 진실은?
전문가들과 살펴본 이 중사의 상태는 심각했다. 성폭력 사건으로 인한 고통 말고도, 군부대 내에서 발생한 2차 가해 행위들로 인해 극심한 심리적 위기를 겪고 있었다.
성폭력 피해자였던 이 중사에게 발생한 2차 피해. 유가족은 가해자에 대한 수사가 계속되고 있던 그때, 왜 2차 피해가 발생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81일간의 수사 과정을 살펴본 전문가들은 '사건을 식히는', 즉 수사를 지연시킨 정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사건을 식힌다'라는 말은 법조인들 사이에 쓰이는 표현으로, 수사 기간을 길어지게 해 뜨거운 논란을 피하고 수사 결과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줄여, 결국 가해자나 사건 관계자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사건을 식히는' 방식의 수사가 이뤄진 정황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가해자에 대한 불구속 수사였다고 한다. 군부대 내에서, 더욱이 피해자가 거역하기 어려운 위계의 힘이 작동한 중범죄가 발생했음에도 구속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가해자이며 상급자였던 장 모 중사는 수사가 시작되고 조사도 바로 받지 않았고, 불구속 상태였기 때문에 탄원서도 받으러 다녔던 것으로 밝혀졌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1299회 '81일간의 지옥-공군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 편은 26일 오후 11시 10분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