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후 정국을 뒤흔들던 소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논란이 일단락됐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제시한 중재안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받아들인 것인데 모처럼 국회에서 여야간 합의 정신이 발휘됐다.
국회의장 중재안 '1년 6개월 뒤 검수완박'
박병석 국회의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관련 중재안을 여야 원내대표에게 전달하고 "양당 의원총회에서 의장 중재안을 수용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검수완박을 놓고 최고조에 달하던 여야의 대립을 풀 물꼬를 제공한 건 박 의장이 제시한 중재안이었다. 박 의장은 22일 "여야 원내대표에게 의장의 최종 중재안을 전달했다. 오늘 양당 의원총회에서 의장의 중재안을 수용해줄 것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8개 항목으로 구성된 박 의장의 중재안을 살펴보면 우선 검찰의 직접 수사권과 기소권은 분리하는 방향으로 하고, 검찰의 직접 수사권은 한시적이며 직접 수사의 경우에도 수사와 기소 검사는 분리하기로 했다.
검찰의 기존 6대(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범죄 수사에서는 부패·경제범죄 수사 2개 영역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삭제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검찰 외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 대응 역량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검찰의 직접 수사권은 폐지한다"고 덧붙였다.
동시에 검찰로부터 이관된 범죄를 수사하기 위한 가칭 중대범죄수사청(한국형 FBI)을 발족할 수 있는 입법 조치에도 나서기로 했다. 법률안 심사권을 부여하는 사법개혁특위를 구성해 6개월 내 입법 조치를 마무리하고, 그로부터 1년 이내 발족한다는 계획이다.
위와 같은 내용의 검찰청법 개정안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고, 공포된 날로부터 4개월 뒤 시행한다고 중재안에 명시됐다.
정리하자면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현행보다 더 줄이고, 이마저도 대체할 수사기관이 최대 1년 6개월 이내에 설립되면 검수완박을 완성한다는 게 중재안의 핵심 내용이다.
모처럼 '합의정신'…한발씩 물러서 중재안 수용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회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전날 박 의장으로부터 중재안을 전달받은 여야 원내대표는 물밑 접촉을 통해 세부 내용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날 동시에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소속 의원들로부터 추인을 받는 작업을 진행했다.
먼저 국민의힘이 중재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뒤 "박 의장의 중재안에 대해서 치열한 논의를 한 결과, 우리 당은 의장의 중재안을 수용하기로 했다"며 "의장 중재안은 사실 의장과 양당 원내대표가 3~4차례 회동을 통해서 합의한 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 역시 중재안 수용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역시 의원총회 뒤 "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국회의장께서 제시한 중재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며 "중재안에서 더 필요한 내용들은 향후 보완해 나가기로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국민의힘 입장에서는 그동안 검수완박의 부작용으로 우려했던 중대범죄 수사 공백을 줄일 수 있는 시간을 최대 1년 6개월 동안 벌게 됐고, 민주당 입장에서는 그만큼 시한이 늦춰지긴 했지만 검찰개혁의 마지막 퍼즐조각이었던 검수완박을 쟁취하게 됐다.
특히, 민주당은 검수완박 강행 처리를 위해 소속 의원을 하루아침에 탈당 시킨 것을 비롯해 국회선진화법의 합의정신 취지를 무력화 시키는 각종 꼼수를 동원하고 있다는 비판이 당 내부에서조차 잇따라 제기되는 등 코너에 몰리자 중재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의장은 합의를 도출한 뒤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더 이상 검찰개혁으로 소모적 논쟁을 중단하고 앞으로는 민생과 국민을 위한 국회가 돼서 다시 신뢰받는 국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검찰 반발, 尹 거부권 카드 등 남의 변수도
김오수 검찰총장다만, 직접 수사권이 사라지는 검찰의 반발은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중재안에 여야가 합의하자 김오수 검찰총장은 "이 모든 상황에 책임을 지겠다"면서 사직서를 제출했다. 한차례 사직서가 반려된지 나흘만이다.
여기다 박성진 대검 차장과 이성윤 서울고검장, 김관정 수원고검장, 여환섭 대전고검장, 권순범 대구고검장, 조재연 부산고검장, 조종태 광주고검장이 이날 중재안에 반발해 법무부에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지휘부가 단체행동에 돌입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2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반송큰시장을 방문해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이후 어떤 입장을 취할지도 변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이날 중재안이 합의에 이른뒤 "원내에서 중재안이 수용됐다는 점을 인수위는 존중한다"고 밝혔지만 윤 당선인의 입장에 대해서는 "윤 당선인의 말씀을 별도로 듣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반발이 큰 상황에서 검찰 출신인 윤 당선인이 향후 사법개혁특위 단계에서 마련된 검수완박 관련 법안에 대해 거부권 카드를 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대해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윤 당선인 핵심 측근인 권성동 원내대표와 윤 당선인을 만든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합의한 내용"이라며 "본인들이 수용하고 합의한 내용을 당선인께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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