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사진기자단인수위가 에너지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방향을 발표한 건 지난달 28일. 중점과제 중 하나인 '시장 기반의 수요 효율화'는 경쟁과 시장원칙에 따른 에너지 시장구조를 확립한다는 내용이다. 전력구매계약(PPA) 허용 범위 확대 등을 통해 공기업인 한전만이 판매하고 있는 전력시장을 점차 개방하고, 전기요금에 '원가주의'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것. 이러한 에너지 정책 방향은 3일 발표한 윤석열 정부 110대 과제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중 에너지 관련 내용 일부. 인수위 제공에너지정책 '정상화'가 아니라 전력시장 '민영화'?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 김동연 경기도지사 후보가 자신의 SNS에 인수위의 에너지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김 후보 페이스북 캡처
더불어민주당 김동연 경기도지사 후보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SNS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에너지 정책을 두고
"사실상 전력시장을 민영화하겠다는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김 후보는 "에너지 신산업과 연계한 수요정책 강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전력판매시장 개방, 한전 민영화는 국민의 실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인수위가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인수위 발표대로라면 전기요금 인상도 불가피하다"며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인 '4월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를 사실상 뒤집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말 정부와 한전이 연료비 상승 등을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 방침을 결정했을 때, 윤석열 당선인은 이를 비판하며 '4월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지금의 인수위 정책 방향은 '원가주의'에 따라 원가 인상분이 적기에 반영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전력시장 개방이 '민영화' 아니라니…누리꾼들 "말장난하나"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후보자가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잠시 얼굴을 만지고 있다. 윤창원 기자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2일 인수위의 전력판매시장 개방 방침에 대해
"큰 틀에서 한전 전체의 민영화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추 후보자는 "(전력) 판매 단계에서 다양한 공급처·수요처가 있고, RE100(재생에너지 100%) 등으로 인해 신재생 수요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또 "한전 공급자와 수요자만이 능사가 아니라 일부는 서로 거래에 의해서 재판매하는 다양한 방법도 있을 수 있지 않겠냐"며 "한전의 적자가 계속 커져선 안 되지만,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이런 상황은 늘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인수위의 발표 내용이 한전 민영화를 계획하는 것이냐는 질문엔 "아는 바가 없다"고 답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의원이 "(인수위 발표대로) 경쟁 체제를 도입하면 지금보다 한전이 더 부실화되고 후손들에게 빚 폭탄을 던지게 된다"고 지적하자, "한전 부분에 관해서는 세부적으로 살펴보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전력판매 시장 개방 방침을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선 사실상 '한전 민영화'라는 지적과 함께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2016년 가정용 전기까지 전면 시장 자유화돼 요금 부담이 커진 일본의 전철을 답습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국전력거래소 이사장을 지낸 조영탁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는 3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인수위의 에너지정책을 두고 '민영화'라고 보는 시각에 우려를 표시했다.
조 교수는
"공기업 지분을 민간에 매각하는 건 수많은 단계를 거쳐서야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한전 민영화'라는 이야기는 침소봉대"라며, '공급차원의 민영화'라는 주장에 대해 의견을 묻자 "그건 한전이 발전사들을 민간에 다 팔아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PPA가 활성화하진 않았지만 이미 지난해 도입이 됐고, 새 정부는 RE100을 이행하려는 기업을 염두하고 전기 판매할 수 있는 사업자 범위를 확장하려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한전의 (전력판매 시장) 포션이 일부 축소될 수는 있지만, '민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민간사업 수익 아닌 한전 적자폭 줄이기 위해 '원가주의' 적용돼야
올해도 한전의 대규모 적자가 예고된 가운데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3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앞으로 전기요금 상승 요인이 많다"며
"콩보다 싼 두부를 팔 순 없듯, 연료보다 전기가 쌀 수 없기에 '원가주의'는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국민들에 부담된다는 이유로 전기요금이 원가 평균에도 따라가지 않고 낮게 책정돼 장기적으로 괴리가 발생하면 경제구조가 감당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코로나19 사태라든가 경제 위기 상황 같은 때에 가용한 정책 내에서 유류세 인하처럼 전기요금을 안정화할 순 있다"며 "에너지빈곤층에도 복지 차원의 다른 해결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영탁 교수 역시
"탄소중립 하자면서 탄소 비용은커녕 연료비도 제대로 부담 안 하면 수요절약이나 새로운 기술 개발이 이뤄질 수 없다"며 "원가주의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에너지 빈곤층을 고려해서 전기요금을 묶을 수는 없고, 나라에서 직접 보조를 하면 된다"고 밝혔다.
이어 "한전이 적자인 이유는 전기요금에 늘상 정치가 개입하다보니 쉽게 올리지 못해서다"며 "독립 심의기구를 만들어 정치권 부담도 없애고, 원가 수준을 반영해 전기요금을 정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전력산업을 시장논리에 맡기면 경쟁을 통해 싸지지 않을까 하지만, 전기는 필수재이기 때문에 민간에서 수익 보장 안 된다는 이유로 독점력을 행사하면 국민들이 볼모가 될 수 있다"며 "원가를 보장해 주더라도 공기업이 하는 게 민간 주도보다 수익성 추구가 아니기 때문에 국민들에 훨씬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조 교수는
"독점력을 규제하기 위해 정치권 개입 없는 독자적인 기구를 만들자고 하는 것"이라며 "민간사업자가 대규모로 있어야 규제도 하는데 지금은 전기요금 설계가 오로지 국가 차원에서 이뤄지니 문제"라고 반박했다.
인수위가 한전의 전력판매 구조를 '독점'이라고 표현하는 데에도 문제가 제기된다. 정 교수는 "공기업인 한전은 독점을 한다고 해도 독점 이윤의 문제는 없다"며
"독점이란 표현으로 국민에 부정적 인식을 심어 한전의 독점 구조를 깨려는 듯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발전 부분에는 한전도 IMF 외환위기 이후 민영화가 추진되면서 6개 자회사로 쪼개져 과잉경쟁을 하면서 비효율성이 발생하는 상황"이라며 "연료비 상승, 에너지 빈곤층 문제 등을 한전에 떠맡겨 놓고 적자만 운운하는데,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중요한 시점에서 서울 본사의 땅까지 팔고 지역으로 내려가서 적자를 메워온 한전은 그런 시도할 여력조차 안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