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가 식량 안보를 이유로 밀 수출을 전격 금지함에 따라 국내 밀가루 가격도 급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1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밀가루 매대. 연합뉴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해상운임 상승 등으로 인해 에너지 등 원자재와 더불어 수입 밀 가격이 폭등하면서 '밀 자급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당장 타격이 불가피한 국내 관련 업계를 보호하는 등 식량 안보 차원에서 자급률 제고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높아진 모습이다.
부총리 간담회서도 나온 "우리 밀 자급률"…정부 2020년부터 밀산업 육성 기본계획 수립·시행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국수제조업체를 방문, 건의사항을 청취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지난 16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를 방문해 이뤄진 소상공인과의 간담회에서도 밀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국수 제조업체 효자국수의 대표 안재훈씨는 국수의 주재료인 밀가루의 원가 상승과 관련해 "우리 밀을 좀 더 많이 심어서 자급률을 올리면 일본같이 세계적인 식량난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는 커버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019년 기준 밀 자급률은 0.7%까지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예상하지 못한 국외 요인으로 수입 밀 가격이 폭등하는 사태가 현실로 다가오자 자급률로 이목이 쏠리게 된 것이다.
정부는 식생활 서구화와 소비 품목 다양화 등으로 인해 전체 양곡 소비가 감소함에도 밀 소비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이미 2020년 밀 산업 육성 기본계획을 수립, 진행하고 있다.
수입산 밀 의존도가 무려 99.3%까지 높아진 데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한동안 손을 놨던 밀 수급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품질관리체계 등 밀과 관련한 기준을 재정립하는 한편,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생산단지의 규모를 키우고, 대량 소비가 일어날 수 있도록 판로 마련 또한 지원에 나섰다.
늘어난 밀 전문 생산단지…면적 넓어지고 효율성도 올라
연합뉴스정부는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동시에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전국의 밀 전문 생산단지 육성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2020년 시범사업을 시작해 27개소 3천ha의 면적에 900톤을 비축했으며, 지난해에는 39개소 7663ha를 통해 비축물량을 8401톤으로 크게 늘렸다.
올해는 55개소 1만ha, 비축물량 1만7천톤을 목표로 단지를 확대해 가고 있는데, 이를 위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내달부터 7월까지 생산단지에서 출하된 보통 등급 이상의 밀 1만7천톤 매입에 나선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 외에도 지난해 각 2개소에 불과하던 건조저장소와 시설장비 수를 올해 건조저장 4개소, 시설장비 14개로 확대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수요 확보를 위해 지난해 4천톤이던 계약재배 물량을 6천톤으로 늘리는 한편, 톤당 20만원씩의 제분과 유통비용을 지원하는 등 농가지원도 이어가고 있다.
이같은 노력은 각 생산단지의 양적·질적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광주 한국우리밀농업협동조합은 2020년 140ha이던 재배면적을 지난해 825ha로 489% 늘렸는데, 이 과정에서 단일품종 재배를 통해 밀 순도까지 높여 같은 기간 561톤이던 생산량은 4828톤으로 무려 760%나 증가시켰다.
전남 흑석산영농조합법인은 2020년 10a 당 10만원이던 종자비를 지난해 10a 당 7만원으로 30% 절감시켰으며, 경북 나누리영농조합법인은 밀·콩 이모작 재배로 농가소득을 10% 이상 늘렸다.
당면한 밀가루값 부담은 추경으로…중장기 시각으로 생산기반 확대에 주력
우리밀 수확. 연합뉴스
하지만 이같은 노력이 2025년까지 5%, 2030년까지 10%로 밀 자급률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중기 목표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당장 들이닥친 밀값 폭등에 즉효를 발휘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밀산업 육성 기본계획을 통해 지난해 밀 자급률을 1.7%로 전망했지만 실 자급률은 0.8%로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적극적인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제반 시설을 다지고, 농가 수익을 높이는 등 생산기반을 마련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농림부는 올해의 경우 2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담긴 가공식품 물가 안정 지원 예산 546억원을 활용해 밀가루 가격 상승분의 70%를 국고로 부담함으로써 우선 소비자의 부담을 줄이고, 이와 함께 농가 지원을 늘려 국산 밀 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병행할 방침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농업직불금을 현재의 2배인 5조원으로 늘리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당시 공약도 있었던 만큼 선택직불 등을 통해 농가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지금 검토하고 있다"며 "생산 기반을 한 번에 확 늘리기는 쉬운 일이 아닌 만큼 기초를 잘 다져나갈 수 있도록 꾸준히 사업을 확대하고, 지원도 늘려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