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플랫폼 종사자가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없게 가로막던 '전속성 요건'이 폐지를 눈앞에 뒀다. 여기에 적용 제외 신청 제도도 함께 폐지될 전망이어서 특고, 플랫폼 종사자가 실제로 사회보험 보호망에 완전히 들어올 수 있을 지 주목받고 있다.
14년 만에 산재보험서 사라질 전속성 요건·적용제외 신청
국회사진취재단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16일 이러한 내용을 담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개정안 내용을 살펴보면 산재보험법 조항 가운데 전속성 요건과 적용 제외 신청 제도를 언급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노동자, 이하 특고)에 대한 특례조항인 제125조를 아예 삭제했다.
대신 특고와 플랫폼 종사자는 일시적으로 노무를 제공한 이들도 포함하는 '노무제공자'라는 범주를 신설해 묶는다.
적용제외 신청 제도 역시 삭제하고, 일부 직종 종사자가 노무제공을 하지 못하는 기간에는 보험료를 내지 않을 수 있도록 다른 관련 법에 '휴업 등 신고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전속성 요건'은 정부가 한 사람이 얼마나 산재보험에 가입할 만한 '근로자'에 가까운 사람인가 판단하는 요소다. 산재보험법 125조에서 첫 조건인 1항에 적힌 "주로 하나의 사업에 그 운영에 필요한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할 것"이 바로 전속성 요건이다.
2008년 산재보험법에 특고에 대한 특례조항이 처음 도입될 당시에 있던 전통적인 특고 직종들은 대개 일반 임금노동자처럼 하나의 사업장에서 일정 시간 이상 꾸준히 일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업체에 동시에 등록해 일감을 받거나, 부업으로 일하는 플랫폼 종사자들은 이 전속성 요건에 발이 묶여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등 여러 업체의 온라인 앱에 가입해 일감을 찾는 배달노동종사자들은 교통사고를 당해도 전속성 요건 탓에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또 하나의 장애물이 적용제외 신청 제도다. 특고의 경우 소득과 고용이 불안정한 처지를 고려해 특고 스스로 '산재보험 적용제외'를 신청하면 산재보험을 가입하지 않을 수 있는 제도다.
그런데 실제 노동현장에서는 보험료 부담을 피하려는 사업주가 적용제외 신청을 해야만 고용하겠다고 강요하는 일이 잦아 특고 등이 산재보험에 가입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적용제외를 신청하는 경우가 흔했다.
이런 가운데 특고는 물론, 플랫폼 종사자까지 급격히 증가하자 전속성 요건, 적용제외 신청의 폐지는 노동계 뿐 아니라 국회와 정부에서도 해결이 시급한 과제로 거론됐다.
2020년 9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관련 분과위원회에서는 노사정이 산재보험 가입의 문턱을 낮추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같은 해 12월 전국민 고용·산재보험에 플랫폼 종사자를 포함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플랫폼 종사자 보호대책'을 발표했다. 또 지난해 3월에는 산재보험 적용제외신청 제도의 사유를 엄격히 제한해 사실상 폐지 수준에 이르도록 개선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수차례 전속성 요건 폐지 등을 요구했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이 반대하면서 국회의 법 개정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특고·플랫폼의 산재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국정과제에 담은 데 이어, 이번 개정안이 윤석열 정부의 '1호 노동법안'으로 환노위를 통과하면서 법사위, 본회의 통과 가능성도 매우 높은 상황이다.
핵심은 시행령의 대상 직종 확대…"사각지대 해소 취지 살릴 논의 이어가야"
이처럼 14년 만에 산재보험 보호망 안에 특고·플랫폼 종사자를 완연히 보듬을 수 있는 진전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아쉬움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노무제공자'에 들어갈 직종을 업무상 재해 보호 필요성과 노무제공 형태 등을 고려해 시행령에 따로 담기로 한 점이 걸린다.
민주노총은 개정안 통과 직후 입장문을 통해 "통과된 법안에서는 적용직종을 시행령으로 규정하도록 하고 있다"며 자칫 산재보험이 필요한 일부 특고·플랫폼 종사자가 보호망 밖에 남을까 우려하고 있다.
기존 산재보험법 시행령에서는 15개 특고 직종을 산재보험 적용 대상으로 허용했는데, 이번에는 '노무제공자' 대상 직종의 규모가 이번 법 개정안의 취지를 살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아울러 애초 산재보험의 혜택을 체감해보지 못한 플랫폼 종사자 등에게 보험료를 부담하더라도 사회적 보호망에 들어와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다.
문재인 정부의 전국민 고용·산재보험 정책이 시작된 후인 지난해에도 플랫폼 종사자 중 산재보험 적용률은 30.1%에 불과했다.
한국고용정보원 김준영 연구위원이 2020년 플랫폼 종사자 노동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종사자 중 3분의 2 가량은 보험료 부담이나, 다른 보험까지 가입하기 부담스럽기 때문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김 연구위원은 "사회보험, 국민연금 등에 다 가입하면 소득이 노출돼 세금, 보험료 부담이 커질까봐 두려워하는데, 특히 산재는 실업이나 노후 문제와 달리 '남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우가 잦아 더욱 기피하기 쉽다"며 "기본적으로 산재보험을 의무가입으로 성격을 명확히 정리하고, 객관적인 소득 파악 등을 위한 준비작업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성신여자대학교 권오성 법학과 교수는 "애초 사회보험은 의무 가입이 원칙이므로, 앞으로 모든 플랫폼 종사자가 가입한다면 보험료 부담은 임금에 반영돼 자연히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며 "결국 소득 요건 등을 얼마나 잘 정비해서 시행령의 적용 대상 직종을 얼마나 확대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다만 "통과된 법안의 구체적 완성도에는 이견이 있더라도, 산재보험 보호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적용 대상 범위를 대폭 확대하자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산재보험법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꾼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법 시행까지 1년 유예기간이 있는 만큼 적용 직종 및 실제 가입 확대를 위한 추가 논의를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