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노사위) 공공기관위원회가 출범하는 지난해 6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노사위 사무실 앞에서 공공운수노조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공공기관의 일방적 임금체계 개편 중단과 임금피크제 지침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합리적인 이유 없이 '나이'만을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현행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26일 나왔다. 대법원이 임금피크제 내용이 정당한 지에 대한 판단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퇴직자 A씨가 한 연구원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A씨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임금피크제 시행에 대해 고령자노동법을 위반해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받지 못한 돈을 달라고 지난 2014년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노사 합의로 일정 연령 이후 임금이 깎이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더라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임금 등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고령자고용법에 위반돼 무효라는 원심에 법리 오해 등의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 1항의 규정 내용과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이 조항은 연령 차별을 금지하는 강행 규정에 해당하는데. 이 사건 임금피크제를 전후해 A씨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의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임금피크제 시행이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로써의 무효인지 여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이번 선고는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판단 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판결이다. 재판부는 정년을 유지하면서 일정 기간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의 효력은 판단 기준에 따라 개별·사안 별로 달리 판단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 연합뉴스
대법원 관계자는 "다른 기업에서 시행 중인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나 하급심에 진행 중인 사건 관련 개별 기업들이 시행하는 임금피크제의 효력 인정 여부는 임금피크제의 도입 목적의 정당성 및 필요성, 실질적 임금삭감의 폭이나 기간, 등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편 임금피크제는 2000년대 들어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도입돼 청년 일자리 확대와 고령화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2016년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15년에는 300인 이상 기업의 27.2%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가 2016년에는 46.8%까지 확대됐다.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대법원이 처음으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함에 따라 개별 사업장에서는 임금피크제 도입·시행 방법 등을 두고 노사 간 재논의·협상 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