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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지사 김동연은 누구…흙수저 신화 만든 정통 경제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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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지사 김동연은 누구…흙수저 신화 만든 정통 경제관료

    천막집 전전하던 소년 가장, 만 17세에 은행 입사
    행정·입법고시 동시 합격…미국서 최단기간 석·박사
    공직 승승장구했지만, 큰아들 잃어 가장 큰 시련 겪어
    경제부총리까지 올라…대선 주자에서 경기도지사로

    어린시절 김동연 당선자(가운데). 김동연 캠프 제공어린시절 김동연 당선자(가운데). 김동연 캠프 제공더불어민주당 김동연 경기도지사 당선인은 판잣집과 천막집을 전전하던 '소년 가장 흙수저' 신화를 만든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김 당선인은 어떤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한 '삶의 승자'로 평가된다.

    천막집 전전하던 소년 가장, 만 17세에 은행 입사

    김 당선인은 1957년 충북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했지만, 그가 11살이 되던 해 사업가였던 아버지가 서른셋의 나이에 아내와 네 자식을 두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는 소년 가장의 역할을 떠맡게 됐고, 아버지의 빈자리에 경제적 어려움은 커졌다. 살던 집에서 쫓기듯 나와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으로 이사했지만, 이마저도 도시정비 사업으로 철거되면서 당시 경기도 광주시 대단지(현 성남시)로 강제 이주당해 한동안 천막을 치고 살았다.

    그의 어머니는 채석장 일과 산에서 나물을 캐 파는 일로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 나갔다. 맏아들인 그도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비교적 이른 나이에 취업전선에 뛰어들 수 있는 덕수상고에 진학한 뒤 고교 졸업 전인 만 17세의 나이로 한국신탁은행(현 하나은행)에 입사했다.

    당시 은행은 많은 사람이 선망하던 직장으로 입행시험 경쟁이 치열했다. 그의 어머니는 합격 소식에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치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고 한다.



    행정·입법고시 동시 합격…미국서 최단기간 석·박사

     
    그는 대학에 가지 못한 열등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주저앉을 수 없다는 절박함 등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괴롭혔다. 직장생활과 대학입시 준비를 병행한 끝에 야간 대학생이 된 그의 눈에 운명을 바꿀 잡지 한 권을 쓰레기통에서 발견했다.

    그는 고시 수험생을 위한 잡지 맨 뒤에서 합격기를 읽고 고시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낮에는 은행원, 밤에는 야간대학생, 새벽에는 고시 수험생으로 주경야독을 반복한 그는 1982년 만 25세의 나이에 제26회 행정고시와 제6회 입법고시를 동시에 합격하는 쾌거를 거뒀다.

    그는 이듬해 행정공무원으로 총무처(現 행정안전부)와 경제기획원(現 기획재정부)에서, 입법공무원으로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입법조사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동기와 함께 선배들한테 인사를 하고 나가던 그는 "요새는 별 희한한 학교 나온 애들도 시험에 붙어 여기까지 오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는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사무관으로 일하면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 들어가 석사학위 공부도 병행했다.

    고생 끝에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돼 미국으로 간 그는 1993년 3년 9개월 최단기간으로 미시간 대학교에서 공공정책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김동연 후보가 미국 미시간대학교 교수시절 큰아들과 함께 있는 모습. 김동연 캠프 제공김동연 후보가 미국 미시간대학교 교수시절 큰아들과 함께 있는 모습. 김동연 캠프 제공

    공직 승승장구했지만, 큰아들 잃어 가장 큰 시련 겪어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2002년 대통령 비서실장 보조관을 거쳐 2005년 세계은행(IBRD) 선임정책관 등으로 공직을 이어갔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 기획예산처에서 일하며 국정 마스터 플랜 '비전 2030' 구상을 주도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 야심차게 기획됐던 프로젝트인 '비전 2030'은 2030년까지 한국의 삶의 질을 세계 10위로 올려놓는다는 구상이다.

    그는 2012년 기획재정부 제2차관 자리에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이 시기 삶은 그에게 가장 큰 시련도 안겨줬다. 이듬해 10월 백혈병으로 투병하던 큰아들이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가 발인을 마치던 날 오후 사무실에 출근해 국무조정실이 만든 '원전 비리 종합대책'을 직접 발표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아들을 잃은 지 9개월 만인 이듬해 7월 국무조정실장직 사의를 표하고 관료 공직생활을 끝낸 그는 대형 로펌들의 제의를 거절하기 위해 6개월간 양평 농가로 내려가 근처 중·고등학교 강연 등을 통해 봉사의 삶을 살았다.

    2015년 2월 제15대 아주대학교 총장으로 돌아온 그는 학생들이 하고 싶은 공부나 활동을 학점으로 인정해주는 '파란 학기제', 학점 등과 관계 없이 해외연수 장학금을 지원하는 '애프터 유' 제도를 신설했다. 학생들은 그를 '갓동연'이라고 부를 정도로 열렬하게 지지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동연 경기도지사 후보가 2일 오전 수원시 팔달구 선거사무소에서 당선이 확실시 되자 축하를 받고 있다. 김동연 캠프 제공더불어민주당 김동연 경기도지사 후보가 2일 오전 수원시 팔달구 선거사무소에서 당선이 확실시 되자 축하를 받고 있다. 김동연 캠프 제공

    경제부총리까지 올라…대선 주자에게 경기도지사로

    그는 2017년 문재인 정부로부터 경제부총리 제의를 받아 고민 끝에 수락했다. 재임 중에는 3%대 성장률을 회복했으며,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하는 등 성과를 보였다. 대외적으로는 한·중 통화스와프를 연장하고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을 막는 등 경제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소득주도성장 추진에 있어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게 된다. 경제에 정치적 이념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결국, 그는 2018년 고용지표 통계발표 직후 고용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연봉 10~20억원대 전관 예우직, 대기업 등의 제의를 모두 거절한 그는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을 운영하면서 강연 활동에 주력했다.

    그는 지난해 8월 자신의 고향에서 대한민국을 '기회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신념 아래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화하고 '새로운물결' 창당을 선언했다.

    당시 민주당 대선 주자로 출마했던 이재명 후보와 단일화를 이룬 그는 대선이 끝나고 민주당에 입당해 후보 경선을 통해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됐다.

    이제 민선 8기 경기도지사로 도정을 이끌게 된 김동연 당선인은 "경기도부터 새롭게 바꾸는데 내 모든 것을 걸고자 한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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