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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성관계 영상, 원본인가 아닌가…n번방 피해자 두번 울린 판정

사건/사고

    [단독]성관계 영상, 원본인가 아닌가…n번방 피해자 두번 울린 판정

    n번방 퍼진 성관계 영상, 재촬영 여부에 국과수 "확인 불가"

    40대 사업가가 사귀던 여자친구와의 성관계 영상을 유포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해당 영상을 감정한 국과수가 '원본일 수도 있지만, 재촬영물인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는 취지로 판정했습니다. 2018년 12월 성폭력처벌법이 개정되면서 '재촬영물'도 처벌 대상이 됐지만, 해당 사건은 법 개정 이전 벌어진 사건이라 소급 적용이 어렵습니다. 국과수의 애매한 판정 때문에 피해 여성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40대 사업가가 사귀던 여자친구와의 성관계 영상을 유포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해당 영상을 감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지난 4월 법원에 "유포된 영상은 원본일 수도 있지만, 재촬영물일 수도 있다"는 취지의 감정 결과를 내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영상의 원본 여부는 2018년 12월 개정된 성폭력처벌법의 한 조항 때문에 주목된다. 법 개정 이후 재촬영물을 포함해 포괄적인 성적인 표현물을 불법 유포하는 행위가 처벌 대상이 됐지만, 이전엔 영상을 다시 촬영한 '재촬영물'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피고인은 당시 상황에서 법적 미비점에 착안, '재촬영물이기 때문에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과수 감정 결과가 "재촬영물 여부를 판정할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에 재판부의 무죄 선고 가능성도 커졌다.

    n번방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한 여성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국과수의 '책임 회피성' 답변이 가해자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특히 n번방 사건을 통해 복제된 디지털 성범죄 영상·사진의 광범위한 피해가 확인된 상황에서 법적 미비점이 가해자에겐 선처를, 피해자에겐 악몽을 선사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가해자, 법률적 미비점 이용해 "재촬영물" 주장…국과수는 애매한 답변


    3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피해자 A씨와의 성관계 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유포한 혐의(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촬영·반포 등)로 재판을 받고 있는 가해자 B씨 사건에서 국과수는 지난 4월 영상 감정 결과를 회신했다. 피해자 측에 따르면 국과수는 '원본일 가능성도 있지만, 재촬영물인지 확실하게 단정할 수도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검찰에 따르면 B씨는 2016년 3월 서울 강남의 본인 자택에서 A씨와의 성관계 영상을 본인 휴대전화로 직접 촬영한 뒤, 이를 A씨의 전 연인인 C씨에게 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C씨는 B씨로부터 전송받은 영상을 n번방 등 온라인에 유포했고, 피해자는 뒤늦게 피해 사실을 알게됐다.

    현재 B씨는 본인 재판에서 해당 영상은 '재촬영물'이며, 발생 시점 당시에는 처벌 조항이 없었기 때문에 '무죄'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8년 12월 개정되기 이전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제1항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를 처벌하도록, 제2항은 '제1항의 촬영이 촬영 당시에는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도 사후에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경우'에 이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시 법률은 촬영의 대상을 '다른 사람의 신체'로만 규정하고 있을 뿐, 이를 재촬영한 경우는 별도 처벌 조항이 없었다. 이로 인해 2018년 8월 대법원은 성관계 동영상을 컴퓨터로 재생한 후 모니터에 나타난 영상을 재촬영해 유포한 사건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대법원은 "다른 사람의 신체 그 자체를 직접 촬영한 촬영물만이 제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촬영물에 해당하고, 다른 사람의 신체 이미지가 담긴 영상을 촬영한 촬영물은 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했다.


    이후 법률적 미비점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같은 해 12월 '촬영물 또는 복제물(복제물의 복제물을 포함)'까지 처벌하도록 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B씨의 경우 영상을 촬영·유포한 행위 발생 시점이 법률 개정 이전이라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법원 판단에 따라 유포한 영상이 직접 촬영물이라면 유죄, 재촬영물이라면 무죄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 측은 국과수의 애매한 답변이 곧 피고인에게 유리한 결론으로 연결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형사 사건에서 피고인의 범죄 행위에 대한 입증 책임은 검찰에게 있는데, 재판 과정에서 입증이 모호할 경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결하라'는 원칙에 의해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피해자 "국과수, 책임 회피식 답변으로 두 번 죽여"


    법원이 국과수 감정 결과를 받아들여 피고인에게 유리한 결론을 내릴 경우 파장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성범죄의 대부분이 온라인을 통한 영상·사진 등의 유포로 발생하는데, 유포범들이 법률 개정 이전 시점에 발생했던 사건들에 대해서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하자'는 등 악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서 검찰은 컴퓨터 모니터를 재촬영한 경우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무아레 현상'(물결 무늬)이 없는 점 등을 근거로 유포된 영상이 '직접 촬영물'이라고 판단하고 B씨를 재판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측은 이처럼 명확한 근거로 인해 기소가 이뤄졌음에도 국과수가 책임 회피성 답변을 내놓았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피해자 A씨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과수가 애매한 답변으로 피고인이 빠져나갈 여지를 만들어 준 것에 대해 큰 분노와 슬픔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다"며 "현실에 맞지 않은 법조항과 잘못된 판례로 '재촬영물은 무죄'라는 프레임 안에서 가해자는 법의 허점을 악용하고 있다. 너무나 참담한 심정"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국과수 결과대로라면 앞으로 법 개정 전 디지털 성범죄물 유포로 처벌받은 가해자들도 재심을 신청해 국과수에 원본인지 확인하자고 할 것이고, 같은 논리로 무죄가 되고 국가 배상까지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국과수의 애매한 답변으로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처절하게 울고 가해자는 쾌재를 부를지 모르겠다. 국과수는 책임 회피식 미온적 답변으로 피해자를 두 번 죽이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과수는 모든 방법과 가능성을 검토해 법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답변을 줘야 한다"며 "제발 피의자가 저지른 범죄를 처벌받게 하고, 피해자를 살려달라"고 촉구했다. 현재 A씨는 해당 사건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공황장애 등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약 860여명의 시민들이 가해자의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에 참여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디지털 자료의 특성상 국과수의 애매한 표현이 어쩔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복제·편집 등이 매우 쉬운 디지털 자료 특성상 국과수 입장에서는 확정적인 표현을 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전문가들은 범죄자들이 악용할 수 없도록 국과수에서 기준을 만들어 객관적인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법영상분석연구소 황민구 박사는 "국과수 답변을 보면 그 결과가 명확하지 않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을 수 있다"며 "과학적으로 그 결과가 어디에 더 가까운지에 대한 객관적인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두 차례 무혐의에도 발로 뛰어 증거 찾아낸 피해자…결국 기소



    해당 사건은 수사기관의 부실 수사를 피해자가 직접 발로 뛰어 찾아내 항고한 끝에 재판에 넘겨진 사건이다.

    최초 이를 수사했던 경찰과 검찰은 유포된 영상·사진을 모두 재촬영물이라고 보고 B씨에 대해서 혐의없음 처분했다. 그러자 피해자가 직접 유포된 영상물들을 찾기 시작했고, 이 중 하나를 직접 촬영물이라고 판단해 2019년 다시 고소장을 냈다. 한 번 결론이 난 사건이더라도 새롭게 증거가 발견될 경우에는 다시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이때 피해자는 B씨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도 함께 고소했다. 재촬영물로 판단되더라도 이를 유포한 행위에 대해서는 별도의 명예훼손 혐의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수사에 착수했던 검찰은 두 가지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원본으로 볼 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과 함께 해당 영상을 B씨가 C씨에게 개인적으로 전달한 것일 뿐 명예훼손의 전제가 되는 '공연성'(불특정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자 피해자는 "검찰이 B씨의 휴대전화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등 부실 수사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반발하며 항고했다. 서울고검은 3번째 수사에 착수한 끝에 유포된 영상 중 1개를 직접 촬영물로 판단하고 B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한편 B씨로부터 영상을 전달받아 이를 온라인과 n번방 등에 유포한 C씨는 별도 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C씨가 이를 유포한 시점은 2018년 12월 법률 개정 이후였기 때문에 법원은 재촬영물 여부와 관계없이 유죄 판결을 내렸다. 당시 C씨는 A씨뿐만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의 영상·사진도 유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C씨가 유포한 A씨의 영상·사진 중 일부는 '텔레그램 n번방의 설계자'라 불리는 와치맨 전모씨의 블로그와 텔레그램 비밀대화방 등을 통해 확산됐다. 전씨는 해당 영상·사진과 함께 A씨에 대한 허위 사실도 유포했는데, 이 또한 피해자가 찾아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전씨는 n번방 혐의로 구속된 상황에서 해당 혐의가 병합돼 재판을 받았고, 총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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