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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장 바뀔 때마다 교체하는 표어 간판…예산 '줄줄'

부산

    구청장 바뀔 때마다 교체하는 표어 간판…예산 '줄줄'

    새 구청장 '구정 목표'에 관공서 건물 간판 모두 교체
    그늘막, 관용차, 주민 게시판 등에 붙은 시트지까지 교체 대상
    대부분 사정 비슷해…구청별 소요 예산 100~5700만원
    시민단체 "주민 의견 반영 않은 표어에 예산 낭비" 지적

    사상구청 청사 외벽에 신임 구청장의 표어를 새긴 현판이 걸려 있다. 박진홍 기자사상구청 청사 외벽에 신임 구청장의 표어를 새긴 현판이 걸려 있다. 박진홍 기자부산지역 기초자치단체들이 각자의 정책 목표를 담은 표어를 바꾸는 일에 수천만원대 예산을 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부분 새 구청장이 취임할 때마다 표어가 적힌 청사 현판 등을 바꾸고 있는데, 혈세 낭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 사상구는 이달 들어 구청 청사 벽면에 붙은 가로 24m, 세로 1.4m짜리 대형 현판을 교체했다.
     
    현판에는 '사상을 새롭게 구민을 힘나게'라는 신임 구청장의 새 구정 목표 문구가 새겨졌다.
     
    사상구는 지난 1일 새 구청장이 취임하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새롭고 강한 미래 100년 사상'에서 새로운 문구로 표어를 바꿨다.
     
    이에 따라 구청 청사와 12개 동 행정복지센터 입구에 내걸린 현판을 새로 교체했는데, 여기에 쓴 비용만 1398만 1000원이다.
     
    이뿐만 아니라 각 사무실에 걸린 액자형 포스터와 구 경계에 설치된 홍보판부터 각종 시설물에 붙은 스티커나 시트지까지 순차적으로 교체할 예정인데, 여기에는 393만 2500원이 더 들어갈 예정이다.
     
    부산 사상구의 한 횡단보도에 설치된 그늘막에 전임 구청장의 구정목표인 '새롭고 강한 미래 100년 사상' 문구가 적힌 시트지가 붙어 있다. 박진홍 기자부산 사상구의 한 횡단보도에 설치된 그늘막에 전임 구청장의 구정목표인 '새롭고 강한 미래 100년 사상' 문구가 적힌 시트지가 붙어 있다. 박진홍 기자이처럼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구청장이 교체된 부산지역 13개 구·군은 새로운 구정 목표를 담은 표어를 바꿨거나 바꿀 예정인데, 이 과정에 막대한 혈세가 투입되는 것으로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파악됐다.
     
    표어를 교체하는 13개 구·군 중 현재 예산이 산출된 곳은 모두 8곳으로, 금정구 5700만원, 연제구 1900만원, 북구 1864만원, 사상구 1791만원, 강서구 1700만원, 동래구 1194만원, 동구 700만원, 부산진구 100만원 순이었다.
     
    예산을 가장 많이 잡아 놓은 금정구는 구청 입구와 내부, 행정복지센터 16곳, 보건소에 설치된 현판을 교체하는 데 더해 스마트 그늘막, 버스 승객 대기실, 주민 게시판 등 구 곳곳에 있는 각종 고정 시설물의 시트지까지 모두 떼어 내고 새로 붙일 예정이다.
     
    다른 구청들도 청사와 동 행정복지센터, 산하 기관 등의 입구에 붙은 현판은 새것으로 교체한다는 계획이 있으며, 예산이 가장 적은 부산진구는 입구 현판을 통째로 교체하는 대신 시트지만 떼어 내고 붙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운대구와 남구·기장군·영도구·사하구는 새 구정 목표를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정확한 예산을 산출하지 않았다고 답했지만, 대부분 기존에 설치된 청사 현판 정도는 어떤 식으로든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들 기초단체 대다수는 구정 목표가 바뀐 이상 현판 등 시설물을 교체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부산 금정구 관계자는 "구정 목표 표어를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그렇다고 변경된 표어를 그대로 놔둘 수도 없기 때문에 바꾸는 것"이라며 "당장 모든 걸 일괄적으로 바꾸는 건 아니며, 추후 유지·보수할 때 바꿀 예정인 시설물도 있다"고 말했다.
     
    부산지역 구·군 표어 변경 예산 현황표.부산지역 구·군 표어 변경 예산 현황표.그러나 각 구청 내부에서조차 구청장이 바뀔 때마다 표어 교체에 막대한 예산과 행정력을 쓰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부산의 한 구청 직원은 "표어가 한 번 바뀌면 관용차나 관광안내도에 붙은 것들까지 모두 떼어 내고 다시 붙여야 하고, 심지어 직원 개개인의 명함에도 표어가 다 들어가 있어 새로 다 파야 한다"며 "구청장이 바뀔 때마다 이런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구청 관계자는 "애초에 그늘막이나 주민 게시판 같은 곳에 4년 뒤에 바뀔지도 모르는 구정 목표 표어를 새겨놓는 것부터 문제가 있다"라며 "구정 목표와 별개로 구마다 자체 슬로건이나 휘장·캐릭터를 따로 정해놓고 있는데, 고정 게시물에는 이를 활용하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지역 시민단체는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구정 목표 교체에 구청들이 이토록 많은 예산을 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부산지역 16개 구·군 중 민선 8기 구정 목표를 주민에게 공모하는 건 사하구가 유일하다.
     
    부산참여연대 양미숙 사무처장은 "시민들은 이런 구호가 바뀌는 것들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구정의 목표나 지향점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주민이 참여하는 사례도 이번에는 사하구를 제외하면 없는 실정인데, 우선 지역 의견을 수렴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구정 목표를 바꾼다고 해서 예산이 안 들면 상관이 없겠지만, 지금같이 경제적으로 어렵고 코로나19도 다시 유행한다는 시기에 이렇게 예산을 들여 표어를 바꾸는 게 과연 맞는지 구청장들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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