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주시의 한 골프장에서 맨홀 작업을 하다 쓰러진 50대 남성 노동자가 2주간 사경을 헤매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이 남성이 두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사고를 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지만 골프장과 하청업체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두 딸의 결혼 위해…직장까지 옮긴 가장의 죽음
스마트이미지 제공16일 CBS 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A(53)씨는 올해 초 첫째 딸과 둘째 딸로부터 결혼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는 둘째 딸의 남자친구 집안과 올해 안으로 상견례를 갖고 본격적으로 결혼 일정을 잡을 예정이었다.
첫째 딸 또한 조만간 집안과의 만남을 진행한 뒤 내년쯤 결혼식 날짜를 잡자는 이야기가 오갔다.
겹경사에 A씨는 기뻐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했다.
한번에 두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서는 목돈이 필요한데, 당시 A씨는 음식물 처리업체에 근무하고 있어 벌이가 만족스럽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그는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 올해 5월 골프장 시설관리 업체에 취직했다.
A씨의 둘째 딸 B(28)씨는 "아빠는 항상 나나 언니가 시집을 가게 되면 부족함 없이 지원해주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라며 "그래서 직장을 옮긴 것인데 별다른 지병도 없이 건강했던 아빠가 이런 식으로 우리 곁을 떠날지는 상상도 못했다"고 울먹였다.
안전장비도 없이 맨홀로…산소결핍으로 쓰러져
맨홀 외부에서 A씨가 촬영한 유량계(왼쪽)과 맨홀로 들어가 촬영한 유량계(오른쪽). 유가족 제공골프장 시설관리 업체에 취직한 A씨는 경기 양주시에 있는 C골프장에서 근무했다.
그러던 중 지난달 26일 오전 A씨는 골프장 코스 내 지하수 유량계에 찍힌 사용량을 확인하는 작업에 투입됐다.
유량계는 지하 5m가량 깊이 맨홀 하부에 위치해 있는데, 외부에서 촬영 장비로 사진을 찍어 확대한 뒤 사용량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화질이 좋지 않아 사용량을 확인하기 어려웠고, A씨는 아무런 안전장비도 착용하지 않고 지하로 내려가 자신의 휴대전화로 유량계를 촬영한 뒤 곧바로 의식을 잃었다.
사고 이후 산업안전보건공단이 맨홀 안에 산소농도를 측정한 결과 6~20% 수준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산소농도가 6%보다 낮은 경우 순간 혼절하고 호흡이 정지되며 같은 상태가 6분이 지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동료 직원의 신고로 A씨는 구조됐지만, 의식도 없었고 맥박도 뛰지 않았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A씨는 사고 발생 2주 만인 지난 10일 끝내 숨졌다.
골프장-관리업체,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
A씨의 장례식장. 유가족 제공A씨가 숨진 지 일주일가량이 지나고 장례까지 마무리됐지만, 현재까지 아무도 그의 죽음을 책임지지 않고 있다.
골프장과 A씨가 몸담았던 시설관리 업체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만 급급하다.
C골프장 관계자는 "확인 결과 A씨는 자진해서 맨홀로 들어갔으며, 엄밀히 따지만 시설관리 업체 직원이지 골프장의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은 관리 업체가 져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장비에 대해서는 "다른 근로자는 직접 맨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외부에서 유량계를 촬영하기 때문에 방독면 등 안전장비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취재진은 복수의 시설관리 업체 직원과 통화했지만, 모두 "할말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에 A씨의 유족은 "시설관리 업체는 '죄송하다'고 말할 뿐 사건의 책임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며 "노동자가 일을 하다 사망했는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하소연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골프장과 시설관리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아 자세한 수사 사항은 말해줄 수 없지만 두 업체 관계자를 상대로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조사가 어느 정도 이뤄지면 책임 소재가 있는 이들을 형사입건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