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전 외교부 장관. 윤창원 기자'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을 두고 정부·여당과 야당이 강하게 맞붙으면서 신구 권력 충돌이 확전으로 치닫고 있다.
야당은 탈북어민 북송 문제와 관련해 연일 발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특히 2019년 사건 당시 문재인 정부에서 일했던 인사 가운데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정 전 실장이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을 통해 17일 밝힌 '흉악범 추방 사건에 대한 입장문'을 요약하면, 당시 탈북어민들은 십수 명의 동료들을 살해했고, 적극적으로 증거인멸을 시도했으며, 애초 귀순할 의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 헌법상 탈북민을 우리나라 국민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 있었지만, 다른 법률에는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는 추방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고, 우리나라에서 재판 받을 경우에 증거가 불충분해 풀려날 위험이 있었다고도 주장했다.
정 전 실장은 "아무리 전 정권을 부정하고 싶더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부처가 협의해 우리 법에 따라 결정하고 처리한 사안을 이제 와서 관련 부처들을 총동원해 번복하는 것은 스스로 정부 체제를 무너뜨리겠다는 것"이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의 안보라인 핵심 인사가 직접 당시 상황을 설명한 입장문을 내면서 대통령실과 여당을 상대로 역공을 펼치는 모습이다.
17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최영범 홍보수석이 탈북어민 북송과 관련한 대통령실의 입장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대통령실과 여당은 즉각 반발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이례적으로 최영범 홍보수석이 직접 카메라 앞에서 야당의 주장을 반박했고, 보도 참고자료를 통해 이번 사건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대통령실의 입장을 정리하면, 이번 사건의 문제점은 크게 조사 과정의 조기 종료, 탈북어민의 귀순 의향 여부, 법 적용 문제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대통령실은 탈북민에 대해 진행하는 중앙합동정보조사와 관련 "본인 자백 외에 물증이 전무한 상황에서 우리 측으로 넘어오기도 전에 '흉악범 프레임'을 씌워 북송을 미리 결정했다"며 "보통 1~2개월 정도 걸리는 검증 과정을 2~3일 내에 끝내는 등 탈북민 합심조사를 부실하게 강제로 조기 종료시켰다"고 했다.
또한 탈북어민이 귀순 의사를 밝힌 순간 헌법에 따라 우리나라 국민으로 간주해 관련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귀순 의사가 없었다고 하지만, 자필로 작성된 귀순의향서가 존재하는 등 명백한 증거가 있는 만큼 민주당의 주장이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법 적용의 문제도 지적했다. "귀순한 탈북자도 헌법상 우리 국민으로 간주하는 국내법, 고문방지협약에 따른 강제송환금지 원칙 등 국제법을 무시하며 귀순자의 범죄행위만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해 "인권과 법치를 강조하는 문 대통령도 과거 페스카마호에서 우리 국민을 살해한 외국인 선원들도 우리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한다고 한 바 있다"고 정면공격했다.
페스카마호 사건은 1996년 참치잡이 원양어선에서 조선족 선원 6명이 선상 반란으로 한국인 선원등 모두 11명을 살해한 사건으로, 문 전 대통령은 이 사건의 2심 변론을 맡았다.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던 가해자 5명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유일한 사형수였던 주범(主犯) 전모씨도 문 전 대통령의 청와대 비서실장 재직 당시인 2007년 특별사면됐다.
최영범 홍보수석도 브리핑에서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탈북어민을 엽기적인 살인마라고 규정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이 사안의 본질은 당연히 대한민국이 받아서 우리법으로 처리해야 마땅한 탈북어민을 북측이 원하는 대로 사지로 돌려보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대통령실과 민주당 사이 공방이 커지면서 특검과 국정조사에 대한 논의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양측 모두 '떳떳하다'면서도 미묘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합의에 이를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탈북어민 강제북송과 대통령실의 사적 채용 논란을 동시에 국정조사하자고 제안했다. 국정조사는 국회가 국정의 특정 사안에 대해 조사를 시행하는 제도로,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 요구가 있으면 가능하다.
연일 불거지는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을 정조준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통신설비업체 대표 우모 씨의 아들이 대통령실에서 9급 행정요원으로 근무하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야당은 이를 '사적 채용'이라고 주장하면서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우 비대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실의 직원 채용과 대통령 부부 지인들의 연이은 움직임 등은 그냥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며 "마침 국민의힘이 탈북 어민의 북송 문제까지 국정조사나 특검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그렇다면 사적 채용 비선 논란 국정조사를 같이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최 수석은 "특검이나 국정조사는 여야가 합의하면 피할 수도 없고 피할 이유도 없다"고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다만 야당이 다수 의석을 믿고 진실을 호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고 맞불을 놨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사적 채용' 논란은 논리적으로 근거도 상당히 부족하고 대통령 비서실의 특성을 감안하면, 부당한 프레임"이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실의 행정요원(9급)을 공개채용으로 채용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 우리나라 외 다른 나라도 관행이 비슷하다"며 "과거 일부 국회의원들이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친인척이나 특수관계인을 보좌진에 채용하는 것과는 당연히 구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부는 지난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탈북어민 2명을 북한으로 송환하던 당시 촬영한 사진을 12일 공개했다. 당시 정부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했다. 통일부 제공하지만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굳이 2개의 국정조사를 같이 받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적 채용' 논란 등이 절차상 문제가 없는 만큼 굳이 야당이 정치 공세를 계속해 펼칠 여지를 만들어줄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탈북주민 강제북송 사건은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에서 진상이 밝혀질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야당의 뻔한 정치 공세가 예상되는데, 굳이 거기에 장단을 맞춰줄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이나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은 사안이 중대한 만큼 검찰에서도 수사에 속도를 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최 수석도 "야당과 지난 정부 관련자들이 해야 할 일은 정치 공세가 아니라 조사에 성실하게 협조해 진실을 밝히라는 국민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라며 "국민의 눈과 귀를 잠시 가릴 수는 있어도 진실을 영원히 덮어둘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