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 자택에서 어린이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당선인 대변인실 제공"부모 모두 육아휴직 3년 지급" "남성육아휴직 정착 기업 지원" "육아 휴직 급여 소득 대체율 100% 상승"
선거철이면 국가적 과제가 된 저출생 해결을 위해 앞다퉈 육아휴직제도 개선 공약이 쏟아지지만 있는 제도조차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는 게 우리나라 육아휴직의 현주소다. 공공부문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조금씩 개선되고는 있다지만 여전히 중소기업에는 다른 세상 얘기다. 이마저도 부모 중 남성은 거의 쓰지 못해 여성의 육아부담이 높은 상황이다.
현재 정부가 휴직기간 연장을 추진하고 있지만, 있는 휴가라도 제대로 쓸 수 있게 사회적 분위기 개선과 지원 확대가 우선이다. 전문가들은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 같이 남성 할당제 도입 등도 적극 검토할 때가 됐다고 조언한다.
육휴 사용률 OECD 최저 수준…남성 사용률 극히 적어
육아정책은 저출생 해결을 좌우하는 첫 전제 조건으로 꼽힌다. 이중에서도 직장인이 출산 후 직장을 유지하며 아이를 기르는 것과 관련한 '육아휴직'이 가장 중요한 제도라는 데 당사자인 부모는 물론, 전문가들도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2021년 영유아 및 초등학교 저학년(1~3학년) 부모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부가 육아정책 중 가장 집중해야 할 정책으로 육아휴직 제도가 1등(25.9%)으로 꼽혔다. 학계 전문가 100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마찬가지로 급여 현실화 등 육아휴직 제도가 27.0%로 가장 높았다.
하지만 육아휴직에 대한 인식과 사용 실태 간 괴리는 무척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아이를 낳은 부모 중 육아휴직 사용 대상자는 모두 30만2490명, 이중 실제 육아휴직을 사용한 경우는 7만3105명이다.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전체 대상자의 24% 만이 실제 육아휴직을 쓴 것이다.
특히 경제규모가 비슷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거의 '꼴찌'다. 국회입법조사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출생아 100명 당 여성 21.4명, 남성 1.3명이 육아휴직을 사용한 반면 해당 통계를 발표하는 OECD 19개 국 평균은 여성 118.2명, 남성 43.4명으로 격차가 매우 컸다.
육아휴직 제도가 가장 잘 갖춰진 나라로 꼽히는 스웨덴의 경우 출생아 100명 당 여성 380명, 남성 314명이 육아휴직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통계가 기간과 무관하게 아이 1명에 대해 육아휴직을 나눠서 사용할 때마다 누적 포함하고 있다고는 해도 우리나라 육아휴직 사용률이 가장 낮은 수준임은 명백해 보인다.
전체적인 낮은 육아휴직 비중만큼 사용 대상이 '엄마'에게 치중돼있는 점도 문제다. 같은 통계 기준 OECD19개국의 육아휴직 여성 사용 비중은 남성의 대략 3배지만 우리나라는 2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어느 나라든 여전히 육아를 위해 여성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그 정도가 큰 셈으로 이마저도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또 기업체의 규모 별로 그 사용 차이가 크게 벌어져 있다.
예로 2020년 육아휴직 사용자 중 300명 이상 기업체 소속이 61.9%였고 50명~299명 기업체는 15.2%, 5~49명 기업체는 17.7% 수준에 불과했다. 아빠의 육아휴직이 막히며 돌봄부담은 엄마에게 집중되고 그 부담의 정도가 민간기업일수록 그리고 그 규모가 작을 수록 더 커지는 셈이다.
인력 부족에 눈치에 못 쓰는 '육휴'…적은 지원에 생계해결 어려워
육아정책은 저출생 해결을 좌우하는 첫 전제 조건으로 꼽힌다. 윤창원 기자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유독 육아휴직 사용 비중이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우선 기업 규모 별로 놓여진 고용상황이 다르고 특히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에 보수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꼽는다. 인원이 적은 기업일 수록 대체인력을 구하기 힘들어 육아휴직 사용을 주저하게 되고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무원과 공기업 같은 경우 문제가 크지는 않다. 그런데 민간기업의 경우 육아휴직을 쓰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승진의 포기 등으로 읽힐 수 있어 사용을 주저하게 된다"며 "중소기업은 사람이 빠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일해야 하니 더 주저하게 된다. 이중 또 더 작은 기업은 눈치 등으로 이것조차 생각할 수 없는 환경이다. 제도의 문제 만큼이나 문화적인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아울러 부족한 지원으로 인한 '경제적인 이유' 또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육아휴직급여 소득대체율(수령액을 월평균 소득으로 나눈 비중)은 최초 3개월까지는 통상임금의 80%, 이후 종료일까지는 50%로 하고 있지만 상한액이 3개월까지는 월 150만원, 이후 종료일까지는 120만원으로 한정돼있다. 우리나라의 육아휴직자 평균 월소득은 350만원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평상시 소득을 대체하긴 한참 부족한 수준인 셈이다.
김나영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급여다. 차이가 조금씩 있지만 우리나라는 지금 300인 이하 기업 종사자들이 가장 많은데 이 분들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비용' 문제"라며 "육아는 남성들도 참여하길 원하지만 아직 많은 경우 남성들이 주요 소득원이니 휴직을 하면 급여 문제가 가장 커서 못 한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육휴 1년 6개월 연장 추진에 전문가 "있는 것도 못 쓰는 형국"
이러한 육아휴직 사용 실태 문제에 대한 지적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닌 만큼 정치권에서도 매번 제도 개선을 약속하는 공약이 쏟아진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시절 공약처럼 현재 부모 각각 1년으로 정해진 육아휴직 기간을 1년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최근 공식화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 정해진 기간인 1년도 채 못 쓰는 상황에 무턱대고 기간만 연장하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규정된 부모 육아휴직 기간이 선진국에 비해 적기는커녕 오히려 긴 편이기도 하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효과가 없을 수 밖에 없다. 1년도 못 쓰고 있는데 1년 6개월으로 늘린다고 해도 1년을 못 쓰는 이유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며 "(실제로 쓸 수 있다고 해도) 부모는 부모이면서 노동자이자기도 한데 육아휴직이 길어질 수록 오히려 기업 분위기 등으로 다시 못 돌아와 경력단절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남성 육아휴직 사용 할당·부당행위 규제 강화 목소리도
오히려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을 할당제 등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으로 스웨덴은 부모가 자녀 1명당 모두 480일간 육아휴직을 할 수 있도록 하며 90일은 남성이 써야하는 '할당제'를 실시 중이다. 이 몫은 쓰지 않으면 그대로 사라진다.
이 정책은 남성의 육아참여를 높이는 것은 물론 기업에서 '육아공백'이 여성의 일만이 아니라는 인식을 높여 여성 차별을 줄이는 효과도 있던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 정책이 시행되던 1995년 합계 출산율이 1.7명이던 스웨덴은 정책이 잘 자리잡으며 2010년에는 2.0명까지 높아지기도 했다.
김나영 부연구위원은 "사실 북유럽 국가들도 처음에는 남성들의 육아휴직 참여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높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회가 계속 참여할 수 있게 남성 할당제를 실시해오고 노력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며 "선진국의 모든 것을 다 따라할 것은 없지만 이처럼 먼저 시행하고 효과를 본 정책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밖에 육아휴직 사용을 장려하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이를 막는 사용자에 대해 실효성 있는 제재 수준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가령 프랑스의 경우 육아휴직 사용에 대한 거부를 원천적으로 불가하고 만일 해고 시 최대 6개월 급여를 손해배상하도록 사용자에게 의무를 부과한다. 스웨덴은 더 나아가 근로자의 육아휴직 부당 처우 신고 시 입증 책임을 사용자에게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