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미키7'의 저자 에드워드 애슈턴. JustTeeJay 제공영화 '기생충'으로 세계 영화사를 새롭게 쓴 봉준호 감독이 차기작으로 SF소설을 원작으로 한 SF영화를 선택했다. 소설 '미키7'은 복제인간으로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주인공을 통해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과 계급 간의 모순을 파고든 작품이다.
이러한 작품이기에 미국 매체 더 필름 스테이지는 "끝내주는 설정은 물론 사회적 비평, 우울한 유머 그리고 깜짝 놀랄 공포가 골고루 버무려져 있어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영화화하기에 딱이다"라고 말했다.
'미키7'의 저자인 에드워드 애슈턴 역시 "내 이야기로 봉준호 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아주 기대가 크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과연 어떤 점이 봉 감독을 '미키7'으로 이끌었는지, 봉 감독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소설 '미키7' 국내 출간을 기념해 출판사 황금가지가 에드워드 애슈턴과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봉준호 감독. 황진환 기자 ▷ '미키7'의 복제된 인간이 계급의 하층민 역할을 해 착취당한다는 설정이 매우 흥미롭다. 처음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에드워드 애슈턴(이하 에드워드) : 나는 최소 175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철학적 질문인 순간이동 역설에 오랫동안 심취해온 바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여러분이 자신의 마음을 다른 신체에 완벽하게 복제할 수 있다고 했을 때, 결과로 만들어진 사람은 실제 여러분인지 아닌지를 묻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 역설을 체화한 인물을 구상하기 시작했던 거다.
그러고 나서 소설가로서 나는 내가 만든 등장인물들을 증오할 줄도 알아야 하므로 그가 맞닥뜨릴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했다. 그러다가 익스펜더블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내기에 이르렀고, 미키가 탄생하게 됐다. ▷ 이런 계급 담론은 사실 한국에서도 봉준호 감독이 특히 영화로 잘 표현하는데, 마침 '미키7'을 봉 감독이 연출하게 되어 한국에서도 관심이 높다. 봉 감독이 작품에 접근하게 된 과정에 관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 에드워드 : '미키7'의 초고를 완성한 건 2019년 말 무렵이었다. 출판 계약도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에이전시는 그걸 어떻게든 브래드 피트의 영화 제작사인 플랜B의 제레미 클라이너의 손에 쥐여줬다. 봉준호 감독과 '옥자'를 같이 제작했던 플랜B는 정확히 이 질문에 담은 것과 똑같은 이유로 봉 감독이 '미키7'을 스크린에 소환할 적임자라고 생각했던 거다.
플랜B가 원고를 봉준호 감독에게 보내자 그는 '미키7'을 다음 프로젝트로 정할 정도로 작품을 마음에 들어 했다. 봉 감독이 최종 결정을 앞두고 내게 먼저 연락했는데, 영화화에 대해서 긴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정말로 놀라운 대화였다. 봉 감독은 오히려 나보다도 내 책을 더 잘 알고 있었고, 심지어 내가 생각지 못했던 질문들을 던졌다. 내 이야기로 봉준호 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아주 기대가 크다. ▷ 주인공인 미키7이 미키8과 함께 방을 공유하며 타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상황에서 '기생충'이 떠오르기도 하고, 얼음 행성이 무대인데다 영양분 재활용 같은 설정이 '설국열차'가 떠올라 봉준호 감독과 결이 잘 맞는 것 같다. 특별히 작품에 대해 봉 감독이 남긴 말이 있을까?
에드워드 : 앞서 언급했지만, 나는 봉준호 감독과 '미키7'은 물론 그 외에도 많은 것에 대해 두 시간 정도 긴 토론을 했었다. 2021년 2월의 일이다. 그때 주고받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생각해 보면, 현재 우리의 경제 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이나 계급 갈등을 풀어내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을 포함한 광범위한 이슈에 관해 우리가 매우 비슷한 관점과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유머 감각도 서로 비슷하고 현대의 부조리를 반영하는 예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소설 '미키7' 표지. 황금가지 제공 ▷ 현재 학생들에게 양자물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지식이 작품에 영향을 준 부분이 있을까? 그리고 작품을 비교적 독자들에게 쉽게 이해시키려고 한 흔적이 많이 엿보이는데, 이를 위해 신경 쓰신 부분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에드워드 : 나는 작품을 쓰면서 항상 과학적으로 그럴듯한 이야기와 빠른 전개로 즐거움을 주는 이야기 사이에서의 균형을 추구한다. 물리학 강의를 늘어놓느라 이야기의 흐름을 끊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과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가 과학적 오류 때문에 흥미를 잃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이야기의 흐름상 필요에 의해 과학적 사실을 과장하는 정도지, 그 이상은 선을 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반물질에 관해 쓴 내용이 있는데, 그건 거의 100% 과학적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묘사한 격납 시스템(작중 시체 등을 반물질로 처리하는 시스템)은 순전히 판타지다. 결국 내가 집중하고자 하는 것은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써내자는 거다. 독자가 내 이야기를 통해 약간의 과학 지식을 얻게 된다면 그건 그냥 보너스일 뿐이다. ▷ '미키7'에 나온 역사적 사건 중에서 자신의 복제인간으로 행성을 점령한다는 설정이 매우 충격적이고 무섭기까지 하다. 주인공의 직업이 역사학자라는 이유로 이러한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가 많은데, 개척민들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들은 어떻게 창안하게 된 건가?
에드워드 : 역사적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니플하임에서 미키에게 생긴 일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었거나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의 어떤 면을 논평하고자 만든 이야기다. 항상 느끼지만, SF 소설의 최대 강점 중 하나는 바로 독자들이 각자의 감정적 맹목을 배제한 채 오늘날의 문제들을 생각하도록 만드는 능력이다.
만약에 여러분이 오늘날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 식민주의의 사악함을 풀어낸다면 많은 독자는 고발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여러분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천년 후 미래에 50광년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똑같은 이슈를 다루면 말할 기회를 공정하게 줄 거다. ▷ 복제인간의 설정에 대해 '스타트렉'에서 착안했다는 이야기에 놀랐다.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질문이다. 좀 더 자세히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에드워드 :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스타트렉'의 특정 에피소드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스타트렉'의 전송기가 영감을 준 아이디어였다. '스타트렉' 시리즈를 통틀어 전송기가 이야기 흐름의 열쇠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어린아이였던 내 눈에도 전송기라는 시스템은 실제로 누군가를 '전송'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아주 확실했다.
한쪽 끝에서 사람들을 녹이면 다른 쪽 끝에서 완전히 똑같이 복제해내는 시스템이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전혀 다친 곳 없이 전송기에서 나온 사람이 전송기로 들어간 사람과 완전히 똑같아 보일 거다. 하지만 그 사람의 주관적인 경험을 따지면 어떨까? 그들은 세포 수준으로 조각조각 찢어지는 순간에 극심한 고통을 느꼈을 거다. 그러고 나서 사라져버리는 거다.조지 R. R. 마틴의 '빛의 죽음(Dying of the Light)'. 아마존 제공
▷ 작품 집필에 영향을 준 영화나 소설이 있을까? 혹시 '미키7'을 읽은 한국 독자들이 함께 읽거나 보면 좋을 영화나 소설이 있다면 추천해 달라.
에드워드 : 미키가 사는 우주는 1970년대에 조지 R. R. 마틴이 쓴 SF 소설 시리즈에서 어느 정도 영감을 받은 거다. 그중에서 '빛의 죽음(Dying of the Light)'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다른 작품들도 그에 못지않게 좋지만 '빛의 죽음'이 최고다. '미키7'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아마 '빛의 죽음'도 좋아할 가능성이 클 거다.
▷ '미키7'의 후속 이야기를 예고했는데, 이에 관해 이야기해 달라.
에드워드 : 속편의 제목은 '안티매터 블루스'(Antimatter Blues)인데, '미키7'의 사건이 있고 약 1년 후를 배경으로 한다. '미키7'에 비하면 역사와 철학을 좀 덜어내고 거기에 액션을 약간 더 넣은 모험 이야기라고 해야겠다. 게다가 독자들 입장에서는 크리퍼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크리퍼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들이 새로운 인간 이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배울 기회가 될 거다. 초기에 '미키7'를 읽은 독자 중 많은 이가 그런 이야기를 더 깊이 알고 싶다고 요청했다. '안티매터 블루스' 덕분에 그 바람을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