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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죽어서야 닿은 사회의 손길…수원 세 모녀의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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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포]죽어서야 닿은 사회의 손길…수원 세 모녀의 마지막

    25일 공영장례 빈소서 열린 추모식
    유가족 없이 시민들 조문 이어져
    영정 대신 위패만…쓸쓸한 분위기
    생전 복지혜택 못 받고 장례지원만
    "공동체 회복…사람 중심 복지 돼야"
    26일 화장·안치, 5년 뒤 산골 처리

    빈소 안에는 조문객들이 올려둔 국화 사이에 수원 세 모녀의 위패가 나란히 놓여 있다. 박창주 기자빈소 안에는 조문객들이 올려둔 국화 사이에 수원 세 모녀의 위패가 나란히 놓여 있다. 박창주 기자
    "단절돼서 이웃이 죽어나가도 몰랐던 거죠. 자신의 비참함을 스스로 증명했어야 됐으니…"
     
    25일 경기도 수원 세 모녀의 빈소가 차려진 수원중앙병원장례식장 특실. 안내판에는 고인이 된 60대 A씨와 두 딸의 성함, 그리고 상주 이름 대신 '공영장례'라고 적혀 있었다. 빈소 안에는 국화 사이로 영정 없이 쓸쓸하게 위패만 올라 있었다.
     
    추모식이 예정된 오후 2시가 가까워지자 지역 인사와 몇몇 일반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날 오후부터 내린 비로 젖은 우산을 털며 들어오는 조문객들도 보였다.
     
    추모식은 의식을 주관한 종교인들과 수원시청 직원 등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한 분위기 속에 거행됐다. 고인들의 마지막 길을 지킬 유가족이 없어 곡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명복을 비는 축원문 낭독 등을 하는 동안 허탈한 표정의 조문객들은 의식 진행 관계자들의 어깨너머로 위패만 바라볼 뿐이었다. 전날부터 빈소를 찾은 조문객은 100여 명으로 집계됐다.
     
    시민들은 이번 죽음을 막지 못한 제도에 분노하면서도, 같은 사회구성원을 돌봐주고 품어주지 못한 데 대해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60대 수원시민 김모(여)씨는 "제도 탓을 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함께 살아가려는 시민의식도 개선됐으면 좋겠다. 마을공동체가 회복돼서 옆에 누군가가 관심을 가져줘야 해결될 문제로 보인다"며 "복지체계는 구멍이 너무 많고,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이젠 화도 못 내겠다. 장례식에는 다들 불구경하러 온 것 같다"고 탄식했다.
     
    정일용 수원나눔의집 원장도 "바로 옆 사람이 죽어가는 것도 알지 못할 정도로 관계가 단절된 게 문제다. 다시는 슬픈 죽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문을 왔다"며 "자기가 가난하고 아프다는 걸 스스로 밝혀야 하는 이런 상황들이 원망스럽고, 사람 중심의 복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A씨와 두 딸의 빈소에는 수원시청 직원과 추모식 주관 종교인들, 일반시민 조문객, 취재기자 등이 드나들고 있다. 박창주 기자A씨와 두 딸의 빈소에는 수원시청 직원과 추모식 주관 종교인들, 일반시민 조문객, 취재기자 등이 드나들고 있다. 박창주 기자
    A씨 가족의 빈소에는 3일장의 공영장례를 추진한 이재준 수원시장을 비롯한 정치인들 발걸음도 끊이지 않았다.
     
    추모식에 참석한 이 시장은 "무연고자 장례는 통상 하루지만, 이번엔 고인이 3명인 데다 조문객도 많을 것으로 예상돼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까 싶어 삼일장으로 하게 됐다"며 "너무도 가슴 아픈 죽음이지만 마지막만큼은 존엄함과 품위를 지켜드릴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기정 수원시의회 의장은 "우리 사회의 큰 사각지대를 절감한다"며 "수요자 중심의 현미경 복지 시스템 구축, 관리 인력 확충 등을 위해 의회 차원에서도 잘 살피겠다"고 했다.
     
    이들 모녀는 26일 발인식과 화장을 거쳐 수원연화장 내 봉안시설에 안치된다. 무연고 사망자들의 경우, 시가 유골을 5년간 안치한 뒤 산골 처리하게 돼 있다.
     
    빈소 알림판에는 상주 이름 없이 '공영장례' 글자만 적혀 있다. 박창주 기자빈소 알림판에는 상주 이름 없이 '공영장례' 글자만 적혀 있다. 박창주 기자
    세 모녀는 건강보험료와 같은 공과금 체납과 금융채무, 세대주(남편) 사망 등 생전에 여러 '위험 신호'를 보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단전과 단수, 건보료 체납 등 34가지 정보로 선별하는 위기가구 대상에서조차 누락됐다.
     
    특히 이들은 빚 독촉을 피해 전입신고를 하지 않고 떠돌이 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마지막으로 등록된 주소지도 화성시로 숨진 채 발견된 수원 주거지에는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화성시와 수원시 모두 행방을 알지 못했고, A씨 가족은 긴급생계지원비나 암과 희귀병 등에 대한 의료비 지원 혜택,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서비스를 전혀 받지 못했다.
     
    화성시는 A씨의 건보료 체납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고 접촉을 시도하다 닿지 않자, 지난 3일 등록 주소지 기준으로 가정 방문에 나서기도 했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종결 처리했다. 수원에서 숨진 채 발견되기 보름 전 시점이었다.
     
    결국 A씨와 딸들이 보낸 신호에 사회는 아무런 응답을 하지 못한 가운데, 사망한 뒤 장례에 대해서만 공적 지원을 받게 됐다. 죽고 나서야 복지 손길이 닿은 셈이다.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경제2팀장은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는 동안 사회가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데 대해 안타까움이 크다"며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위기가구 발굴을 강화하겠다는 발표만 쏟아지는데, 그보다는 불평등 구조와 빈곤을 양산하는 원인을 진단하고 복지지원 문턱을 낮추거나 기준중위소득을 현실화하는 등 근본적인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수원시는 세 고인에 대해 전날부터 26일까지 3일장을 공영장례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먼 친척 관계인 유가족이 시신 인수를 포기하면서, 무연고자로 사망 처리해 공영장례가 가능해진 것이다. 통상 유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면 별도 장례 절차 없이 곧바로 화장된다.
     
    A씨 가족은 이달 21일 오후 2시 50분쯤 수원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시신은 부패가 상당히 진행됐으며, 현장에서는 신변을 비관하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A씨는 암 진단을 받아 치료 중이었고, 두 딸 역시 각각 희귀 난치병을 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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