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 인상 등을 설명하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2.25%에서 2.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사진공동취재단고물가 행진과 경기침체 우려 사이에서 고심하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폭을 0.25%p로 결정했다.
이번 조치로 2.50%가 된 기준금리가 연말까지 2.75%에서 3.00%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는 가운데 이러한 수준의 금리 인상이 고물가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억제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인다.
결국 '베이비스텝' 밟은 한은…사상초유의 4회 연속 금리 인상에도 추가 인상 가능성 높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5일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연 2.25%이던 기준금리를 2.50%로 0.25%p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4회 연속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사상 초유의 결정 배경에는 고공비행을 계속하고 있는 물가와 환율을 조금이라도 잡아 보겠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을 통해 "물가가 목표 수준을 크게 상회하는 높은 오름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2개월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p 인상)을 밟으면서 한미 간 기준금리가 역전된 데다, 지난 23일 원달러 환율 또한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장중 1346.6원을 기록하는 등 환율 방어의 필요성 또한 금리 인상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4차례나 연속으로 올랐지만, 기준금리는 연내 추가 인상 가능성이 높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금통위 후 기자간담회에서 "현 경제 상황이 지난 7월 예상했던 국내 물가, 성장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지난달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제시했던 바와 같이 25bp(0.25%p)의 점진적 인상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당분간 25bp씩 인상하겠다는 것이 기조"라고 말했다.
금통위 통화정챙방향 회의는 올해 안에 오는 10월과 11월 두 차례 더 열린다.
현 기조가 유지된다면 기준금리가 최대 3.00%, 적어도 2.75%까지는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 IMF 이후 가장 높은 5.2%
황진환 기자관건은 기준금리가 3.00%가 물가를 잡는데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수치냐는 점이다.
한은이 이날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 따르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5.2%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5월 발표한 기존 전망치 4.5%보다 0.7%p나 높아진 것이자,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때인 1998년 9.0%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한은 전망치에 앞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19일 물가와 관련해 "현재 4.9% 정도 되는데 평균으로 보면 5% 안팎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전망한 바 있다.
올해 연간 물가 상승률이 5%를 넘게 된다면 1998년의 7.5% 이후 처음이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때도 물가상승률은 4.7%를 기록, 5%를 넘어서지 않았다.
추 부총리는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인 6.3%가 "거의 정점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 내려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우크라이나 사태 등이 잠복해 있지만 최근 국제 유가, 원자재의 가격이 내려갔다"고 조심스레 안정세를 전망했다.
추경호 "거의 정점 됐고 내려갈 가능성 크다"지만 국제유가 반등…곡물가격·환율도 한동안 불안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눈을 만지고 있다. 윤창원 기자하지만 이러한 추 부총리의 기대와 달리 대내·외 전망이 밝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의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해 한동안 하락세로 진입했던 국제유가는 최근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을 시사한 데다, 미국 원유 재고가 감소하자 브렌트유와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모두 이틀 연속 상승하는 등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에너지와 함께 물가 상승세를 이끌었던 곡물의 경우에도 3분기에는 상승세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40.9로 전월 대비 8.6% 하락했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흑해 항구 봉쇄 해제 합의 등으로 인해 밀을 비롯한 주요 곡물과 축산물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입 곡물 가격이 국내에 반영되기 까지는 시차가 있기 때문에 올해 최고점을 기록한 2분기 국제 가격이 3분기 국내 시장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여기에 가능성이 높은 미국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과 지속되고 있는 원달러 환율 상승세 또한 국내 물가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더 높은 금리 인상 노력 필요" vs "대외요인 해소 없인 한계"…정부 "종합적으로 지켜보면서 대응"
때문에 일각에서는 기준금리를 연말까지 3.00% 수준으로 올리는 것으로는 현재의 물가 상황을 잡을 수 없다며, 보다 공격적인 금리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추 부총리의 말처럼 고점을 지나고 있는 시점이라 가정해도 여전히 4~5%대의 높은 물가 상승률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통화가치 하락 또한 지속될 경우 수입물가 상승 압박 또한 막아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기준금리 인상 폭이 0.25%p에 그치면서 한미 간 기준금리가 같아진 점 또한 이같은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연세대 성태윤 경제학부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일상적인 금리 인상 폭만으로는 현재의 상승하고 있는 물가를 제어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며 "특히 한미 금리 역전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 부분이 우리나라 통화가치의 급락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일상적인 형태의 금리 인상 폭을 넘어서는 부분을 통해서 실질적인 물가 상승 제어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전체적인 물가 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종합적인 대안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통화정책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현재의 고물가 상황에 미치는 영향력이 국내 금리정책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는 대내보다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롯한 대외적 원인에 의한 것이 더 크고, 금리 조절로 인한 물가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보통 2분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점 등을 고려할 때 금리를 무작정 올릴 수만은 없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2.25%에서 2.5%로 0.25%포인트 인상 결정했다. 네 차례 연속 금리 인상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사진은 25일 서울의 한 은행 앞 대출 현수막. 연합뉴스
KDI(한국개발연구원) 관계자는 통화에서 "국내 기준금리를 올린다고 하면 기대 인플레이션을 떨어뜨리거나 국내 소비·투자가 조금 줄어드는 방향으로는 작용하겠지만, 이번 고물가 상황이 글로벌 원자재 가격 등으로부터 촉발된 것이기 때문에 대외 가격이 떨어지지 않으면 분명히 하한선이 존재할 것"이라며 "글로벌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워낙 크기 때문에 한은으로서도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현재와 같은 수준의 통화정책으로도 소비 심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사태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큰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보다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고물가 지속과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적절한 금리 조절 이외의 과감한 시도에 나서거나, 뾰족한 수를 마련하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고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급격하게 올렸는데 물가가 이미 고점을 지난 상태라면 불필요한 경기침체를 유발할 수 있으며, 반대로 안정적인 금리 정책을 펼쳤는데 대내외에서 새로운 요인이 발생해 다시 물가가 출렁거린다면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는, 양방향의 우려가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한미 간 금리 격차로 축소로 인한 자본 유출 우려가 크지 않고, 물가 또한 고점을 지나고 있거나 곧 지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은의 이번 금리 결정은 적절한 판단"이라며 "수입물가와 환율 등 상황을 종합적으로 지켜보면서 필요한 대응에 나서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