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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반대급부' 재조명된 김두황, 자살인가 타살인가

사건/사고

    '김순호 반대급부' 재조명된 김두황, 자살인가 타살인가

    핵심요약

    [김순호 특채와 김두황 군 의문사 사건②]
    80년대 학생운동하다 강제징집, 군 의문사 김두황
    같은 시기 강제징집, 녹화사업 겪었던 김순호 경찰국장과 대비
    "총성, 유서 관련 타살 정황 짙지만 20년째 의혹 안 풀려"

    왼쪽부터 김순호 초대 행안부 경찰국장, 故 김두황씨. 박종민 기자·녹화선도공작의문사진상규명대책위 제공왼쪽부터 김순호 초대 행안부 경찰국장, 故 김두황씨. 박종민 기자·녹화선도공작의문사진상규명대책위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대공특채 김순호, 軍의문사 김두황…운명은 어떻게 엇갈렸나
    ②'김순호 반대급부' 재조명된 김두황, 자살인가 타살인가
    (계속)


    죽은 사람은 한 명인데, 총성이 울린 때와 장소는 제각각이다. 1983년 6월 18일 군이 자살했다고 발표한 김두황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30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는 녹화공작 대상이 돼 군에 강제징집되고 3개월 만에 의문사했다. 녹화공작이란 전두환 정권이 군부독재를 비판하는 대학생들을 군에 강제징집하고 '프락치' 활동을 강요하며 정보를 수집시킨 일이다. 최근 김순호 경찰국장 또한 녹화공작 대상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된 바 있다. 군은 김두황의 죽음을 자살로 발표했지만 관련 의혹은 20년 넘도록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전두환 정권부터 노태우 정권까지 이어진 녹화·선도공작 피해자는 2400여 명에 달한다. 그중 김씨를 비롯해 의문사한 이들은 최온순(동국대 81학번), 김용권(서울대 83학번), 이진래(서울대 77학번), 최우혁(서울대 84학번), 한희철(서울대 79학번), 이윤성(성균관대 81학번), 정성희(연세대 81학번), 한영현(한양대 81학번) 등 9명이다. 조사 결과 김씨는 이들 중 타살 정황이 가장 뚜렷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씨는 1980년 고려대 경제학과에 입학해 서클 '현대철학회'에 가입하고 각종 집회 및 시위에 참여했다. 1981년 여름에는 서울 구로지역 노동현장에서 활동했고 이후 학회 총책임자로서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다 1983년 3월 18일 서울 성북경찰서에 일명 '3.7사건'이라 불리는 시위 모의 사건으로 붙잡혀 휴학 조치 후 특수학적변동자로 징집된다. 그의 '특수학변자 보호카드' 등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자료에 따르면 김씨는 녹화사업 대상자로 관할 222보안부대의 동향 관찰을 받았다. 다만 그가 보안사에 의해 심사와 프락치 강요를 받은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군 수사 결과에 따르면 김씨는 그해 6월 18일 오후 11시 35분경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저진리 소재(해안 3분초 서북방 800m 지점) 매복 근무지에서 지급된 M16 소총 실탄 4발로 총상을 입고 변사체로 발견된다.

    故 김두황씨 헌병대 수사 기록. 유족 제공故 김두황씨 헌병대 수사 기록. 유족 제공
    헌병대는 김씨가 강제징집돼 감시받으며 불만이 쌓이고 내성적인 성격, 소외감, 열등감 등으로 인한 복무 염증으로 자살했다고 판단했다. 함께 근무를 섰던 이들은 "(김씨가) 사망 시점에 용변을 본다면서 떠났고, 5분 후 총소리가 연발(3~4발)로 나서 가봤더니 두 다리에 총을 끼운 채 뒤로 넘어져 사망한 모습을 발견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2000년 11월 대통령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가 진정을 받고 조사한 결과, 김씨의 자살 징조는 파악되지 않았다. 김씨의 전입 동기 황모씨는 "(김씨가) 표창을 받고도 신분상의 불이익 조치로 최전방에 배치됐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 했고 고참병의 부름에 힘차게 커다란 목소리로 복명하며 뛰어갔다"고 진술했다.

    사건 당일 김씨와 함께 근무했던 유모씨도 자살 요인은 감지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김씨의 '특수학변자 보호카드'에는 "신병교육을 마치고 22사단에 전입한 뒤 자대 생활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맡은 바 근무에 충실하다"고 쓰여 있었다.


    한 발과 연발, 총성에 시차가 있었나


    故 김두황씨 사망 사건 현장 지도. 유족 제공故 김두황씨 사망 사건 현장 지도. 유족 제공
    무엇보다 의문사위는 총성에 시차가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부대원들의 진술에 따르면 총성은 시차를 두고 각각 다른 장소에서 단발, 연발로 울렸다. 실험 결과 총성 발생 장소 두 곳은 거리가 있어 서로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위치다.

    이에 의문사위는 사체가 처음 사건이 발생한 장소로부터 군이 발표한 사고 발생지(3분초 인근)로 옮겨졌으며, 재차 총격을 가해 김씨의 사망 시각과 장소 또는 원인을 조작하려는 과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헌병대의 사건 조작·은폐 정황은 대원들의 일관되지 않은 진술에서 나타났다. 의문사위 사건 종결보고서를 살펴보면 진술자들은 "저녁 무렵 단발", "자정 무렵 연발" 등 총성에 관해 다르게 말한다. 또 실제 나가본 사건 현장과 헌병대 수사기록에 첨부된 사진 모습이 달랐다는 내용도 있다.

    처음 총성이 울린 곳은 2대대 주둔 716OP(전 통일전망대)였다. 근무자들은 김씨가 사망한 당일 오후 6시~8시경 단발음이 들렸고, 인사 사고란 사실을 알고 대대장이 현장에 출동했다고 밝혔다. 이는 사망장소가 3분초 인근이고, 자정 무렵 연발음이 났다는 헌병대 기록과 차이가 있다.

    아울러 의문사위가 사체 검사서, 현장 사체 사진 등 자료를 첨부해 의뢰한 해외 법의학 감정서에는 "김두황이 두 발의 총알을 이마에 발사하고 이후 목에다 또 다른 두 발의 총알 쐈다"는 내용이 나온다. 총상이 생긴 데 시차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김두황열사추모사업회 양창욱 회장(고려대 80학번)은 최근 자신의 녹화공작 존안자료를 확인하고 "제가 군 웅변대회에 나간 날이 6월 18일이라 적혀있는데, 그날 김두황의 사망 소식을 들었고 군 헌병대에서 관련자들을 조사 중인 모습도 봤다"고 증언했다. 6월 18일이라는 김씨의 사망일 또한 조작됐을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셈이다.


    김지하 시(詩) '끝' 소지했다는 이유로 '유서' 단정


    군이 처음에 김씨의 유서라고 밝힌 '시'도 타살 의혹의 한 쟁점이다. 헌병대는 김씨 전투복 상의 우측 주머니에 유서로 보이는 염세적 내용의 '끝'이란 제목의 시가 들어 있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당시 김씨 유족 측은 필체가 김씨의 것과 다르다며 의문을 표했다.

    의문사위는 민간 감정전문가 자문을 통해 필적을 비교하고 "고의성이 없으면 동일 필적으로 감정할 수 없을 정도의 상이 필적"이라는 소견을 들었다. 이후 탐문 과정에서 고려대 현대철학회에서 함께 학생운동을 하던 남모씨가 김씨에게 편지로 보낸 '김지하의 시'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에 필적 재감정을 의뢰해 남모씨의 필적임을 밝혀냈다.

    2004년 의문사위는 헌병대 수사 기록을 둘러싼 의혹을 확인했음에도 경찰청, 기무사령부 등 관련 기관 비협조와 조사 권한 미흡으로 사건을 미완 종결한다.

    이듬해 5월 27일 발족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과거사위)는 기무사로부터 "없다"던 자료들을 제공받고 '김두황 사건'만 현장 조사하며 사건 위치 등과 관련해 의문사위의 조사 내용이 틀렸다는 결론을 내린다.

    2005년 12월 출범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1기도 사건을 진정받았지만 관련자 기억이 부정확하고 과거사위 조사 때 진술을 번복했다며 의문사위가 제기한 타살 가능성을 사실상 부인했다. 유족 측은 "핵심적인 참고인, 기관, 자료 등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더 이상의 조사는 무의미하고 그 결과도 신뢰할 수 없다"며 사건을 취하했다.

    지난해 출범한 진실화해위 2기는 '강제징집 및 녹화·선도공작 사건' 진실규명을 신청받아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민주화운동 희생자 추모 단체인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 연대회의는 "출범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의문사 사건 조사가 지지부진하다"며 공작 피해자 2400여 명 전수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김두황 사건'과 관련해선 총성 실험을 요구하며 현재까지 진정인 조사 2회만 진행한 점을 비판했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진실규명 신청을 받으면 검토하고 보고서를 작성해 소위 의결을 통해 조사 개시가 된다"며 "최근 '이재문 의문사 사건'도 진상 규명됐고 '김두황 사건'도 곧 결과가 나올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거사정리법에 근거해 피해 당사자가 진실규명 신청을 해야 하지만 피해자가 여럿이고 사회적 의미가 클 때는 직권조사로 당사자 신청이 없어도 해당 사건을 (전수) 조사한다"며 "다만 여야 위원 입장이 나뉘어 있고 합의를 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다 보니 직권조사를 결정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故김두황씨가 소지하고 있었던 시의 본문
    끝 / 김지하

    기다림밖엔
    그 무엇도 남김없는 세월이여
    끝없는 끝들이여
    밑없는 가없는 모습도 없는
    수렁 깊이 두 발을 묻고 하늘이여
    하늘이여
    외쳐 부르는 이 기나긴 소리의 끝
    연꽃으로도 피어 못 날 이 서투른 몸부림의 끝
    못 믿을 돌덩이나마 하나
    죽기 전엔 디뎌보마
    죽기 전엔

    꿈없는 네 하얀 살결에나마 기어이
    불길한 꿈 하나는 남기고 가마
    바람도 소리도 빛도 없는 세월이여 기다림밖엔
    남김없는 죽음이 죽음에서 일어서는
    외침의 칼날을 기다림밖엔
    끝없는 끝들이여

    모든 끝들이여 잠자는 끝들이여
    죽기 전엔 기어이
    결별의 글 한 줄은 써두고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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