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0일 이란 혁명수비대가 미 해군 무인수상정을 끌고 가는 모습. 미 국방부 영상정보시스템 캡처지난 8월 30일(현지시간) 미 중부해군사령부(NAVCENT)가 두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전날 이란 혁명수비대가 페르시아만에 배치된 미 해군의 무인수상정(USV)인 '세일드론 익스플로러'를 나포해 끌고 가는 장면이다. 미군 헬기 등이 출동하자 혁명수비대는 무인수상정을 풀어 줬지만 2일(현지시간) 똑같은 일이 또 반복됐다.
8월 25일(현지시간) 중국 푸젠성 샤먼시로부터 4.5km 떨어진 진먼섬 부속 얼단다오 섬에 중국의 드론이 접근해 경계를 서고 있던 대만 초병을 촬영했고 이 영상은 인터넷에 퍼졌다. 30일 근처 섬에서 비슷한 일이 생기자 대만군은 실탄으로 경고사격을 했다. 9월 1일, 스위 섬에서 대만군이 처음으로 중국 드론을 격추시켰다.
21세기 들어 무인기가 보편화되면서, 전시는 물론 평시에도 각 나라들이 드론을 투입하는 비중이 늘어났다. 인명 손실 없이 원하는 목표를 안정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전지전능한 '게임체인저'는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는 만큼, 현명한 사용이 관건이다.
민간 동호회서 시작한 우크라군 '드론 타격' 부대…'장군멍군' 싸움 계속돼
현대전의 특징 중 하나는 군과 민간 영역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언론매체나 SNS를 통한 선전으로 상대국을 겨냥, 전의를 꺾는 심리전은 그 특성상 민간의 정보 전달 수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방송국이 국가중요시설로 취급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6개월 넘게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선 아예 민간인들이 전쟁에 직접 참여하게 됐다. 다름아닌 드론 이야기다. 대학 교수와 소프트웨어 개발자, 이공계 대학생 등 민간인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아에로로즈비드카(Аеророзвідка, 공중 수색정찰)'라는 동호회에서 시작한 우크라이나군 부대는 드론을 운용해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있다.
폭탄을 장착한 드론을 날리고 있는 아에로로즈비드카 대원들. 아에로로즈비드카 페이스북 캡처방식은 다음과 같다. 먼저 드론을 보내서 정찰을 하면 스페이스X가 지원하는 '스타링크' 통신망을 통해, '델타'라고 하는 시스템에 그 위치가 표시된다. 이 시스템은 지형정보체계(GIS)를 이용해 적을 스크린에 표시, 무엇을 어떻게 타격할지 결정해야 하는 사람을 돕는 역할을 한다.
뭘 어떻게 공격할지 결정되면 공격용 드론을 보내는데, 튀르키예에서 들여온 공격용 TB2 바이락타르 드론과 함께 우크라이나가 자체 제작한 R18 드론에 대전차수류탄에 3D 프린터로 만든 날개를 붙인 급조품을 장착하는 방법이 함께 쓰이고 있다. 뒤이어 특수작전부대가 대전차 공격을 통해 러시아군을 혼란에 몰아넣는다.
물론 러시아군도 이런 방식에 몇 달 동안 당하다 보니 드론을 보내 맞불을 놓기도 하고, 우크라이나군의 드론을 전자전으로 공격해 추락시키는 한편 인간 조종사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려고 한다. 예를 들어 드론이 격추돼서 러시아군 손에 들어갔는데 이륙해서 찍은 영상들이 드론 본체에 저장돼 있다면, 역으로 드론 조종사가 어디에 있는지 추적할 수도 있다. R18 드론도 원래는 군용이 아닌데다 운용거리도 4km 정도로 짧은 편이라 대드론 공격에는 취약하다.
그러면 아에로로즈비드카는 민간 차량이나 4륜 ATV를 활용, 드론이 격추되거나 타격을 하고 난 뒤 재빠르게 퇴각하고 다른 곳에서 이를 반복하는 방법으로 여기에 대처한다. 그야말로 장군멍군으로, 흔히 쓰이는 '게임체인저'라는 말이 별 의미가 없는 이유다. 진짜 중요한 관건은 드론이라는 무기체계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군사작전에 접목시키느냐다.
드론으로 중국에 맞서는 미군…해군은 무인수상정, 해병대도 무인기 활용 작전개념 연구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미 해군이 한국 취재진에게 공개한 무인수상정(USV) 시 호크. 김형준 기자우크라이나군이 주는 교훈은 군사용 드론이 아니어도, 심지어 민간인들이라도 군사작전에 드론을 잘 활용하면 매우 유용하다는 점이다. 반대로 군인이 운용하는 군사용 드론이라도 이상하게 활용하면 무용지물이다. 따라서, 각 나라들이 처한 상황에 맞게 드론을 이용한 지휘 시스템과 부대 형태, 작전개념 등을 제대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드론을 이용한 대규모 군사작전 개념은 전 세계적으로 살펴보아도 아직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 세계 최강 미군조차 올해 7월 환태평양훈련(RIMPAC)에서 무인수상정(USV)을 처음으로 연합훈련에 투입했을 정도다. 이란 입장에선 미군이 바다를 떠다니는 드론을 어떻게 운용할지 궁금하기에 이를 나포했을 터다.
당시 미 해군 1무인수상함편대장 제레마이어 데일리 중령은 한국 취재진들과 만나 "무인수상정은 정말 작기도 하고 만드는 데 비용도 훨씬 적게 들지만 역할은 똑같이 수행이 가능하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유인수상함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된 기술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두 플랫폼이 어떻게 더 작전을 잘 수행할 수 있는지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해군은 정면대결보다는 대함미사일로 항공모함 전단 등 대규모 함대를 노리는 중국의 위협(반(反)접근·지역거부, A2/AD)에 맞서 전력을 잘게 쪼갰다. 즉 무인수상정과 이를 조종하는 스텔스 구축함을 적 연안에 투입하는 쪽으로 개념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렇게 하면 일단 레이더 등에 들킬 가능성이 낮아져 미사일 위협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
특히 무인기는 사람이 탈 필요가 없으므로, 많은 수의 작은 무인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몰려드는 군집(swarming)을 통해 상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만든다. 몇 대를 파괴하더라도 남은 드론들이 계속 달려들기 때문이다.
EABO 개념도. 미 해병대 홈페이지 캡처미 해군과 함께 작전하는 미 해병대도 중국 등의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원정전방기지작전(EABO)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키고 있다. EABO는 빠르게 기동할 수 있는 해병대 병력을 섬 등지에 공격적으로 침투시켜 다연장로켓과 무인기 등을 활용해 거점을 확보하고, 다시 똑같은 방식으로 다른 섬으로 옮겨다니며 아군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 나간다는 개념이다. 올해 림팩에서 이 작전개념을 시험했는데,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우리 실정엔 뭐가 적합할까…현역 군인들이 직접 연구한 방안은?
물론 우리 군에서도 이러한 개념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열린 국방로봇학회 학술대회에선 현역 군인들이 직접 차세대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활용 방안을 연구해 발표하는 자리가 있었다.
우리 군은 기본적으로 북한과의 전면전을 상정하고 전략과 작전, 전술을 짜고 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이른바 '적화통일'을 위한 전면전 발생보다는,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북한의 위협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정확히 식별하면서도 여러 가지 다양한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국방부 제공일단 북한이 핵과 함께 탄도미사일을 주로 개발하고 있기에, 군은 '킬 체인'처럼 이를 먼저 포착해 파괴하는 방법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육군대학 권범준 소령은 북한에는 산악지형과 함께 갱도진지가 포진해 있으며, 탄도미사일 지역에 대한 정밀타격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 술 더 떠 우리나라의 경우엔 초저출생으로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에 인간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드론이 꼭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물론 탄도미사일 정밀타격까지 할 상황이면 이미 전면전이 벌어지거나 그러기 직전일 가능성이 높다. 이 시점에 특수작전부대들이 북한에 침투해 모종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대부분은 현장에서 장기간 동안 침투해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무턱대고 사람만 밀어넣기보다 효율성과 생존성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우크라이나군 아에로로즈비드카를 연구해 발표한 육군대학 조상근 박사(중령)는 우리 군에 줄 수 있는 시사점에 대해 "민간 전문인력을 특수작전부대와 함께 운용, 안전한 곳에서 원격으로 사이버 공간을 통해 작전지역에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한반도는 험지와 지하시설 등 우크라이나보다 어려운 요소가 많기 때문에, 드론을 중심으로 한 유무인 복합전투체계를 감시와 타격이 동시에 가능하도록 운용해 생존성과 작전효용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발표했다.
최근 평택에 있는 주한미군 캠프 험프리스 기지에 배치된 사실이 확인된 그레이 이글 ER. 제너럴 아토믹스 홈페이지 캡처
미군은 2000년대부터 정찰과 공격용으로 드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마침 주한미군은 최근 평택 캠프 험프리스 기지에 배치돼 있던 MQ-1C 그레이 이글을 최신형인 ER로 교체해 항속거리와 작전반경을 크게 늘렸다.
이와 달리 우리 군에서 현재 운용하는 드론의 대부분은 정찰 능력은 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공격 능력은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아니라 정찰해서 발견하는 즉시 타격이 가능하도록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정찰과 공격 사이에 시간차가 발생하면 그만큼 적이 도망치거나 우리 위치가 들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임체인저'란 없다, 결국 활용하는 '사람'과 '방법'이 가장 중요
육군 제공신무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이를 흔히 '게임체인저'라 부른다. 하지만 아무리 우수한 무기체계가 나오더라도 활용할 방법이 제대로 잡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세계 2위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여겨지던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졸전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아산정책연구원 양욱 부연구위원은 "드론뿐만 아니라 모든 무기체계는 각 국가들마다 서로 다른 필요에 따라 어떤 식으로, 몇 명이, 몇 시간 운용할지 정해지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개념으로 운용하느냐이다"며 "각 국가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런 차이점을 반영해서 시스템을 만들게 된다. 드론도 소부대 정찰을 위해서 사용할지, 대규모 부대에서 타격 임무를 할지 등 임무 성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설사 무기체계 성능은 조금 모자라더라도, 작전개념을 잘 짜서 결합시키면 승리할 가능성이 좀더 높아진다. 육군 등에서 '아미 타이거'처럼 첨단 미래 전투체계를 연구하고 시범부대까지 만들어 운용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작전개념과 교리를 발전시키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예산과 노력을 투입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