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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문턱 확 낮춘 '北 핵 독트린'…우린 어떻게 하나?[안보열전]

국방/외교

    핵 문턱 확 낮춘 '北 핵 독트린'…우린 어떻게 하나?[안보열전]

    편집자 주

    튼튼한 안보가 평화를 뒷받침합니다. 밤낮없이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치열한 현장(熱戰)의 이야기를 역사에 남기고(列傳) 보도하겠습니다.

    추석 연휴 전날 공세적 성격의 '북한판 핵 독트린' 법령 채택
    기존 '조건부 핵 선제불사용' 원칙에서 '핵 선제공격 가능'으로 선회
    "핵무기가 2013년엔 '억제 수단', 2022년엔 '선제공격 수단' 됐다"
    김정은만이 핵 사용 결정하는데, 유고시 '사전 작전방안에 따라 핵타격'?
    지휘통제체계 '독단형'? '위임형'? '혼합형'? '국가핵무력지휘기구'는 무엇?
    북한 핵전략, '핵 선제타격' 상정한 '비대칭 확전'으로 바뀌었을까?
    "바뀌었다면, '핵 언제든 쓸 수 있다' 믿게 만들어 한미 공격 억제가 목적"
    4년 8개월만에 확장억제전략협의체 열었지만…억제의 실효적 작용 방안은?
    "핵 독트린 대응 구체적이지 않다, '압도적이고 결정적 대응' 뭔지 못 밝혀"

    북한 정권수립 74주년(9ㆍ9절)을 맞이해 지난 8일 평양 만수대기슭에서 경축행사가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북한 정권수립 74주년(9ㆍ9절)을 맞이해 지난 8일 평양 만수대기슭에서 경축행사가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은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를 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라는 새 법령을 채택해 파문을 일으켰다. 쉽게 이야기해 어떤 상황에서 핵무기를 사용할지 규정한 대내외적 선언으로, 이를 흔히 '핵 독트린'이라고 한다.

    핵무기는 본래 쓰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속성의 무기다. 그렇기에 핵 독트린은 보통 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부러 모호하게 빙빙 돌려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번에 채택된 '북한식 핵 독트린'은 상당히 공세적이고 적극적이며 자의적인 핵 사용을 언급하고 있다. 핵전략이 '선제 핵공격'도 가능하게 바뀌었다는 내용을 법령으로 공식화했다.

    우리 입장에선 골치가 아파졌다. 한미 외교·국방당국은 16일(현지시간) 미국에서 3차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열어 북한 핵 위협에 대해 "전례 없이 압도적이고 결정적으로 대응"한다고 천명했지만 과연 북핵을 사전에 억제할 수 있는 실효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의문이 남는다.

    미국은 '선제 핵공격 가능' 정책 유지, 북한은 '조건부 선제불사용'에서 '선제 핵공격 가능' 선회

    보통 4년 또는 8년마다 발행되는 미국의 핵태세검토보고서(NPR)는 미국의 핵 독트린을 다룬다. 올해 NPR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발간이 늦어져 요약본만 공개됐지만, 핵무기 사용과 관련해서 짧은 언급이 있다.

    미국의 핵 독트린은?

    • 요약본만 공개된 미국 2022년 NPR 내용의 일부

      As long as nuclear weapons exist, the fundamental role of U.S. nuclear weapons is to deter nuclear attack on the United States, our allies, and partners. The United States would only consider the use of nuclear weapons in extreme circumstances to defend the vital interests of the United States or its allies and partners.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미국 핵무기의 근본적인 역할은 미국과 그 동맹국, 파트너 국가들에 대한 핵공격을 억제하는 것이다. 미국은 미국이나 그 동맹국, 파트너 국가들의 핵심 이익을 보호해야만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선 핵무기의 사용을 검토할 것이다.

    미국은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정책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부터 자국이 먼저 핵무기로 공격받지 않는 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제불사용(No First Use) 정책을 지지해 왔지만, 동맹국들의 강한 반대 등이 작용해 결국 이번에도 이 정책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어떨까? 북한은 지난 2013년 '자위적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데 대하여'라는 이름의 법령을 채택했는데, 이것이 사실상의 공식적인 첫 핵 독트린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르면 핵무기 사용 요건은 2가지다.

    북한 핵 독트린(2013년)

    • 2013년 법령 '자위적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데 대하여'

      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무기는 적대적인 다른 핵보유국이 우리 공화국을 침략하거나 공격하는 경우 그를 격퇴하고 보복타격을 가하기 위하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최종명령에 의하여서만 사용할수 있다.

      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적대적인 핵보유국과 야합하여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이나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비핵국가들에 대하여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4조를 근거로 이를 조건부 선제불사용 원칙이라고 해석했다. 비교적 최근인 지난 2020년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과 2021년 1월 8차 노동당 대회에서도 북한은 이러한 선제불사용 원칙을 천명한다.

    북한의 조건부 핵 선제불사용 원칙(2020~2021년)

    • 2020년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과 2021년 8차 노동당 대회

      "국가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고 지역의 평화를 수호하는데 이바지할 우리의 전쟁억제력이 결코 람용되거나 절대로 선제적으로 쓰이지는 않겠지만 만약, 만약 그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안전을 다쳐놓는다면, 우리를 겨냥해 군사력을 사용하려 한다면 나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공격적인 힘을 선제적으로 총동원하여 응징할 것"

      "우리 공화국이 책임적인 핵보유국으로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우리를 겨냥하여 핵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람용하지 않을것임을 다시금 확언하였다"

    물론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8차 당 대회에선 '사용'이 아니라 '남용'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핵무기를 '도가 넘게'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북한, 열병식에 등장한 '화성-17형'. 연합뉴스북한, 열병식에 등장한 '화성-17형'. 연합뉴스
    북한이 2013년과 2021년 사이 내놓은 핵무기 사용 조건 관련 발언에 '적대세력', '자주권 침해'와 같은 표현이 다수 있다는 이유로 의문점을 가지는 목소리도 있다. 적대세력은 누구이고 자주권은 무엇이며 어떻게 침해되면 핵무기를 쓰겠다는 것인지 명확히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보미 부연구위원은 그해 5월 내놓은 '북한 핵선제불사용 선언의 의미와 한계'라는 보고서에서 "'적대세력이 핵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 한'이라는 표현은 적이 핵을 선제적으로 사용하였을 때를 상정한 것과는 다른 의미로, 적의 핵 사용 의도를 포착했을 때에는 북한이 선제 핵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 가능"하다며 "광의의 개념을 갖거나 모호한 의미의 단어들을 사용하여 향후 북한의 핵전략과 대미억지전략에 유연성을 발휘하려는 판단을 가진 것으로 분석한다"고 설명했다.

    조성렬 주오사카 총영사는 같은 해 펴낸 책 '김정은 시대 북한의 국가전략'에서 북한이 2013년과 2021년 사이 내놓은 핵무기 관련 발언을 함께 언급하며 "공식적으로는 핵 선제불사용 독트린을 견지하고 있지만, 조건을 내걸어 핵무기 사용 요건을 매우 낮게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2022년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다음과 같은 표현을 통해 '선제 핵공격'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선제 핵공격' 가능성 암시한 북한

    • 2022년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설

      "우리 핵무력의 기본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까지 우리의 핵이 전쟁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여있을수는 없습니다.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리익을 침탈하려든다면 우리 핵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수 없을것입니다."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과 같은 표현에서 '근본 이익'이 무엇이고 '침탈'이 뭘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어 있을 수는 없다'는 표현까지 함께 보면, 결국 자의적 판단에 따라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공세적 핵 독트린 법령으로 공식화…"북핵, '억제 수단'에서 '선제공격 수단' 됐다"

    이번 핵 독트린은 '매우 낮게 잡은 핵무기 사용 요건'이 아예 법령으로 공식화됐다. 2013년 법령을 9년 만에 폐기하고 새로 채택된 법령은 핵무기의 사용 조건을 5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모호한 단어를 사용한 측면도 있긴 하지만 상당히 공세적이다.

    북한 핵 독트린(2022년)

    • 2022년 법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

      5. 핵무기의 사용원칙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가와 인민의 안전을 엄중히 위협하는 외부의 침략과 공격에 대처하여 최후의 수단으로 핵무기를 사용하는것을 기본원칙으로 한다.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비핵국가들이 다른 핵무기보유국과 야합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이나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한 이 나라들을 상대로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6. 핵무기의 사용조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다음의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수 있다.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핵무기 또는 기타 대량살륙무기공격이 감행되였거나 림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2) 국가지도부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대한 적대세력의 핵 및 비핵공격이 감행되였거나 림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3) 국가의 중요전략적대상들에 대한 치명적인 군사적공격이 감행되였거나 림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4) 유사시 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필요가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경우
      5) 기타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핵무기로 대응할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

    먼저, 5조에 규정된 '핵무기의 사용원칙'을 보면 '비핵국가들이 다른 핵무기 보유국과 야합하여 북한을 반대하는 침략이나 공격 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핵보유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비핵보유국엔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경우로 우리나라가 있다.

    6조에 5가지 경우로 규정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요건 가운데 첫 번째를 보면 "북한에 대해 핵무기 또는 대량살상무기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서, 핵 선제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그러기 직전이라고 판단되면 핵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행간을 읽을 수 있다.

    바로 그 다음 문장에서는 '국가지도부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대한 '적대세력의 핵 및 비핵공격'을 언급했는데, 이는 적 지휘부를 제거해 전쟁을 조기에 끝내는 '참수작전(decapitation strike)'을 뜻한다. 여기에는 핵공격뿐만 아니라 재래식 공격도 포함돼, 어떤 형태로든 참수작전이 시행되거나 그러기 직전이라고 판단되면 핵공격으로 보복하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2018년 말 분석한 북한 탄도미사일 기지 벨트. 전술(tactical)기지, 작전(operational)기지, 전략(strategic)기지로 나뉘는데 군사분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사거리가 긴 미사일이 배치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CSIS 제공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2018년 말 분석한 북한 탄도미사일 기지 벨트. 전술(tactical)기지, 작전(operational)기지, 전략(strategic)기지로 나뉘는데 군사분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사거리가 긴 미사일이 배치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CSIS 제공법령은 조건 세 번째로 '국가의 중요 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치명적인 군사적 공격'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꼭 수뇌부만이 아니더라도 그 외 중요한 군사적 또는 민간 시설이 공격을 받게 될 경우 핵무기로 보복하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대표적인 '중요한 군사적 시설'로는 탄도미사일 기지를 들 수 있다.

    조건 네 번째는 '유사시 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 필요가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경우'를 들었는데 전쟁을 어느 쪽이 일으키는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핵무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을 들었는데, '불가피'한 상황과 '파국적'인 위기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않다. 결국 북한 자신들이 규정하는 임의의 상황에서 핵무기를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공격적 핵교리 법제화와 북핵 대응의 질적 전환' 보고서에서 "새로운 법령은 북한의 핵무기가 핵전쟁이 아닌 상황은 물론 자신들이 규정하는 임의의 상황에서도 사용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며 "'임박한 경우'는 공격받기 이전의 상황으로, 선제공격을 명문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핵무기는 2013년 4월 법령의 '억제 수단'에서 2022년 9월 법령의 '선제공격 수단'으로 변화했다"고 평가했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은 "핵무기 또는 비핵무기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될 경우에도 핵무기 사용을 정당화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한미가 북한을 공격하겠다고 예고하고 공격하지 않는 한 공격이 임박했다는 것을 북한이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외부의 비핵무기 공격에도 핵무기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명문화하고 있어 한반도에서 우발적 군사충돌 발생 시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해석했다.

    "김정은만이 핵무기 사용 결정"하는데, 김정은 유고시엔 자동 핵공격?

    일단 수틀리면 핵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는 뉘앙스를 띄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북한 핵 독트린엔 조금 이상한 점도 있다. 이는 북한의 핵 지휘통제체계와 핵전략에 관련된 변화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북한 핵 독트린(2022년)

    • 2022년 법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

      3. 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의 유일적지휘에 복종한다.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은 핵무기와 관련한 모든 결정권을 가진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 임명하는 성원들로 구성된 국가핵무력지휘기구는 핵무기와 관련한 결정으로부터 집행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을 보좌한다.
      3) 국가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체계가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는 경우 사전에 결정된 작전방안에 따라 도발원점과 지휘부를 비롯한 적대세력을 괴멸시키기 위한 핵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된다.

    3조 1항과 2항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와 관련된 모든 결정권한을 가진다는 뜻으로, 전문용어로는 이를 독단형 지휘통제체계라고 한다. 문자 그대로 국가 최고지도자만이 핵무기를 사용하도록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반대로, 군부 등에게 핵무기에 대한 사용 권한을 어느 정도 나눠주는 형태를 위임형이라고 한다.

    그런데 3항을 보면 '핵무력 지휘통제체계'가 위험에 처할 경우 '사전에 결정된 작전방안'에 따라 '적대세력을 괴멸시키기 위한 핵타격이 단행된다'는 표현이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만이 핵무기 사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데, 그의 유고시에 핵무기가 사용된다는 말은 모순으로 들린다.

    이에 대해 김보미 부연구위원은 "3조 2항에 등장한 '국가핵무력지휘기구'를 통해 지휘통제구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북한 정권이 김정은 중심의 일원적이고 중앙집권적인 핵전력 지휘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며 "북한 정권 특성상 김정은에 의한 독단적 지휘통제체계를 포기하기 어려운데, 핵무력 구조가 확장되면서 중앙집권적이고 일원적인 지휘통제체계를 유지하기는 점차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김정은 유고 시에는 북한의 핵전력 지휘통제체계 전체가 마비될 위험성이 커, 이 문제를 '국가핵무력지휘기구'의 창설을 통해 모두 해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3조를 보면 김정은은 이 기구로부터 자문이나 조언을 구할 수 있고,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방편이 마련된 것으로 볼 때 김정은 유고시 '국가핵무력지휘기구'가 핵무력 지휘를 전적으로 담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지난 4월 27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년 기념 열병식 참가자들과 기념촬영한 장면을 30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참가자들을 향해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4월 27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년 기념 열병식 참가자들과 기념촬영한 장면을 30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참가자들을 향해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또한 이를 앞서 언급한 6조의 내용과 결합해서 생각해 보면 북한의 이러한 지휘통제체계와 함께 핵전략의 변화에 대해서도 추측을 가능케 한다.

    미 국방부 비핀 나랑 우주정책 수석부차관보는 연구를 통해 신흥 핵보유국들의 핵전략을 3가지로 분류한 적이 있는데, 소량의 핵무기 사용 위협을 통해 제3국의 군사·외교적 지원을 이끌어내는 촉발, 핵 보복위협을 과시해 적대국의 핵무기 위협이나 침공을 억제하려는 확증보복, 전쟁 초기부터 핵 선제타격을 설정해 적대국(과 그 동맹국)의 군사력 사용을 억제하는 비대칭 확전이다.

    북한은 과거엔 조건부이긴 하지만 선제불사용 원칙을 선언했다가, 최근에 선제 핵공격을 시사하는 쪽으로 변화했다. 이를 토대로 조성렬 총영사는 자신의 책에서 북한 핵전략이 처음에는 '촉발', 이후 '확증보복'을 추구했지만 앞으로는 '비대칭 확전'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여러 전문가들의 견해를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비대칭 확전을 위해선 재래식 공격을 억제하기 위해 핵무기로 신속하게 군사와 민간 표적을 공격해야 하기 때문에 위임형 지휘통제체계가 필요하다. 모순이다.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기본적으로는 독단형 지휘통제체계를 채택하지만, 위기나 전시 상황에 따라 위임형으로도 전환할 수 있는 혼합형 지휘통제체계를 취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사실이라면, 그 역할을 이번에 등장한 '국가핵무력지휘기구'가 할 가능성이 높다.

    김보미 부연구위원은 "북한이 비대칭 확전으로 핵태세를 변화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미국, 나아가 한국이 북한이 위험한 핵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것을 언제든지 쓸 수 있다고 믿게 함으로써 양국의 공격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그는 "북한의 핵능력이 더욱 커지고 핵태세가 공세적으로 전환될수록 북한의 경제는 (핵개발에) 잠식될 수밖에 없고 체제는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크다"며 "핵무기가 언제든 먼저 사용될 수 있다는 위협을 주기 위해 핵무기를 즉시 운용 가능한 수준으로 상시 대기하여야 하므로 한은 앞으로 높은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문제를 안게 되었다"고도 덧붙인다.

    4년 8개월만에 EDSCG 열어 '확장억제 전략' 논의했지만…그래서 대책이 무엇?

    미군 앤드루스 합동기지를 방문해 B-52 전략폭격기에 핵무기를 탑재하는 부분을 둘러보는 신범철 국방부 차관. 국방부 제공미군 앤드루스 합동기지를 방문해 B-52 전략폭격기에 핵무기를 탑재하는 부분을 둘러보는 신범철 국방부 차관. 국방부 제공한미가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공교롭게도 이러한 핵 독트린이 발표된 바로 다음 주인 16일(현지시간) 한미 외교·국방당국은 워싱턴 DC에서 4년 8개월만에 3차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열었다.

    핵탄두 소형화 기술을 검증하려는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한미 양국은 북한 핵 위협에 대해 "전례 없이 압도적이고 결정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미국은 '모든 범주의 군사적 능력을 활용해' 한국에 확장억제를 제공한다는 공약을 다시금 강조했다.

    특히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는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는 '핵우산' 개념뿐만 아니라, 미사일이 발사되기 전에 사이버·전자전 공격 등으로 이를 무력화하는 발사의 왼편(left of launch) 등을 위해서도 관련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미는 '압도적이고 결정적인 대응'이 대체 무엇인지 내용을 자세히 공개하지 않았다. 확장억제를 강화하기 위해 정보공유, 공동기획, 위기협의, 연합연습, 전략자산 전개, 전략적 소통 방안으로 카테고리를 나눠 체계적으로 접근했다고 하지만 그 억제가 어떻게 북한에 실효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도 밝히지 않았다.

    정부 고위 당국자조차 "'담대한 구상'은 여전히 유효하며, 미국도 이를 지지하고 공동성명에도 포함됐다"면서도 "억제력이 북한의 추가 핵실험을 억지할지는 알 수 없고 핵실험을 언제 어떻게 할지는 북한 지도부가 결정하겠지만, 군사적 외교적 억지 효과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한 터다.

    2017년 11월 동해에 전개된 미 해군 니미츠급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3척. 맨 위부터 니미츠함, 로널드 레이건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 미 7함대 페이스북2017년 11월 동해에 전개된 미 해군 니미츠급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3척. 맨 위부터 니미츠함, 로널드 레이건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 미 7함대 페이스북2017년 6차 핵실험과 화성-15형 ICBM 시험발사로 유엔 안보리에서 강력한 제재를 시행한 지 이미 5년이 되어 간다. 당시 동해에 미 해군 니미츠급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3척이 전개돼 연합훈련을 벌이는 등 무력시위의 수준도 상당히 높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정부 당국자들이 여러 차례 강조하는 '과거와는 다른 대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메시지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즉, 8차 노동당 대회에서 언급한 '자위적 국방력'을 갖추기 위해서 무기를 계속 개발하겠다는 북한을 처음부터 억제할 수 있는 선제적인 해법이 대체 무엇이냐는 얘기다.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의 핵무력정책 법령에 대해 한미의 대응은 전혀 구체적이지 않으며, '압도적이고 결정적인 대응'이 무엇인지 전혀 밝히지 못하고 있다"며 "한미가 이번에도 북한의 핵 공격 수준에 비례하는 '즉각적이고 자동적인' 미국의 핵 보복에 대해 또다시 합의하지 못하고, 미국이 현실적으로 지킬 수도 없으며 지킨다면 남북과 북미간의 전면 핵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큰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을 공약(空約)한 것은 유감이다"고 비판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핵전략은 말을 하는 순간 스스로 책임 문제가 되고, 잘못하면 공세적으로 해석되는 부분이 있어 가급적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 핵보유국의 기본적 운용방침"이라며 "충분히 해석 가능한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주고 경고 의미를 두는 것"이라고 부연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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