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박진 외교부장관 해임 건의안 상정에 항의하는 국민의힘 의원들 앞으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을 기점으로 입법부의 권위가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박진 외교부장관 해임건의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키자 국민의힘이 김진표 국회의장 사퇴 촉구로 응수하면서, 당장 다음 주 국정감사는 물론 이주호 교육부장관 후보 인사청문회와 양곡관리법, 화물차 안전운임제 등 주요 쟁점 법안 처리에서도 성과 없이 정쟁만 난무할 것으로 보인다.
野 박진 해임건의안에 與 국회의장 사퇴 촉구…'맞불작전'
국민의힘은 30일 국회 의안과에 김 의장에 대한 사퇴 촉구 결의안을 제출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의장이 당초 의사일정에 없던 박 장관의 해임건의안 의사일정 변경의 건을 일방적으로 강제처리했다"며 "첨예하게 쟁점이 되는 안건에 대해 국회의장이 마지막까지 조정하지 않아 국회의장이 제대로 된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반발했다.
이는 하루 전 민주당이 박 장관 해임건의안을 제출한 것에 대한 '맞불' 성격이 짙다. 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첫 순방을 외교참사로 규정하며 주무장관이 박 장관에게 책임이 있다고 규탄한 것을 도발로 받아들이면서다. 박 장관 해임건의안은 국민의힘과 정의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재적 170명 중 168명 찬성으로 통과됐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 김미애, 장동혁 원내대변인이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김진표 국회의장 사퇴 촉구 결의안을 제출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여야의 전선은 또 있다. 국민의힘이 비속어 논란 첫 보도를 한 MBC를 겨냥해 MBC 편파·조작 방송 진상규명 태스크포스를 만들고 검찰 고발까지 하고 나서자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 외교참사·거짓말 대책위원회를 발족하며 윤 대통령 포함한 대통령실 외교라인을 정조준했다.
고민정 대책위원장은 윤 대통령에게 비속어 논란과 관련해 진심으로 국회와 국민들 앞에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박 장관을 향해서는 "윤 대통령을 변종 독재자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지 잘 알 것"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고 대통령실 김성한 외교안보실장 등도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압박했다.
여기에 대통령실도 박 장관 해임건의안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추면서 여야 대치는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박 장관은 탁월한 능력을 가졌고 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국익을 위해 전세계로 동분서주하는 분"이라고 치켜세우며 정면돌파에 나섰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대신 대야 투쟁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물러설 곳이 없게 됐다.
다음주 국정감사 '먹구름'…여야 협의체 제안 무색해져
다음 주부터 추가로 펼쳐지는 여야 대치 전선은 윤석열 정부 첫 국정감사다. 당장 이날 오전 민주당이 윤 대통령 순방과 영빈관 신축 관련 현안 질의를 위해 민주당이 소집 요청했던 운영위원회는 열기도 전에 무산되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다음 달 4일부터 시작하는 국정감사에서 민주당은 '외교참사'를 규명하기 위해 외교통일위원회와 운영위원회를 정조준하고 있다. 외교라인의 책임소재를 파헤치는 동시에 꾸준히 문제 삼아왔던 대통령실 이전 비용 문제까지 지적하겠다는 계획이다. 교육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김건희 여사와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공방에 불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문제 삼아 비판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교육시설안전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사무실에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이주호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절차도 여야 공세로 점철될 수 있다. 교육위에서 김 여사의 논문 표절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강득구 의원은 "윤 정부 교육 퇴행 정점이 이 전 장관의 복귀"라며 벌써부터 벼르는 모양새다. 이견을 보이던 주요 쟁점 법안 처리는 더욱 난망해졌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이나 화물차 안전운임제, 종합부동산세 완화 관련 조세특례제한법 등 협의가 필요한 법안이 산적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가 공통 공약을 모아 함께 추진하자고 제안했던 '협의체'는 공허한 선언만 남게 됐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여야 민생경제협의체'를, 이 대표는 '여야 공통공약 추진 협의체'를 만들자고 서로 제안한 바 있다. 정국이 급랭하면서 여야의 협치 제안이 책임을 면피하려는 '정치적 알리바이'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초기에는 대통령이 빨리 유감을 표명하고 끝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지만 민주당에서 강하게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우리도 물러서기가 쉽지 않다"며 "냉정하게 말하자면 서로 자기 얼굴에 침뱉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비속어 논란으로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어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상황"이라며 "민생에 책임이 있는 정부여당에서 전향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꼬인 상황을 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