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SPC 그룹 계열사인 SPL 제빵공장에서 일어난 산업재해 사망사고에 대해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를 검토 중입니다.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을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었는데, 이 논의 지형에도 변화가 예상되는데요.
고용노동부 담당하고 있는 김민재 기자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노동부가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는데요. 경영책임자까지 처벌하는 중대재해법도 적용될 수 있을까요?
[기자]
이미 고용노동부의 담당자인 류경희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전날 열린 국회 환노위 국정감사에서 정의당 이은주 의원의 비슷한 질문에 답을 내놓았습니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87조 8항, 분쇄기 등에 기계는 회전축이 작동할 때는 덮개를 설치해야 한다, 이렇게 돼있습니다. 즉 접근이 안돼야 하는 거에요. 보시다시피 해당 사업장은 이를 위반했습니다. 또 재해조사 과정에서 경영책임자 측에서 작업시간 단축 등의 목적으로 안전설비 센서를 고의로 제거했거나, 2인1조 근무수칙 준수하지 않은 게 확인되면 중대재해법상 안전보건확보 의무 위반한 것이 되죠?
20대 근무자 사망사고 발생한 평택공장 내부. 연합뉴스[고용노동부 류경희 산업안전보건본부장]
"예 위반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렇게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를 정조준한 노동부 수사는 크게 세가지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첫째로 2인1조로 작업이 이뤄졌느냐 여부입니다. 사고 당시 숨진 피해노동자 홀로 있다가 변을 당했는데, 반드시 2인 1조로 해야 하는 작업 중이었다면 문제가 될 수 있죠.
[앵커]
현행 산업안전 보건법에는 어떻게 규정돼 있나요?
[기자]
현행법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2인1조로 하라고 정하지는 않았고, 공공기관 위험 작업장에 관한 지침을 참고할 뿐입니다.
다만 SPL 내부 지침에 관련 규정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회사 스스로 2인1조로 일해야 하는
위험한 작업이라고 인정한 셈이고, 그걸 알면서도 혼자 일하도록 지시하거나 방치했다면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앵커]
또 다른 포인트는요?
[기자]
피해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혼합기계에 안전장치가 제대로 갖춰졌냐는 것인데요.
SPL 공장의 혼합기, 총 9대 중 7대는 뚜껑이 열리면 자동으로 꺼지는 방호장치가 없었습니다.
이번 사고가 일어난 기계도 이 방호장치 없이 뚜껑이 열린 채 기계가 돌아가다 사고가 난 걸로 보이는데요.
이렇게 충분한 보호장치를 회사가 마련하지 않아 사고가 일어났다면 역시 중대재해법 위반이 될 수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사고 당시 상황이나 현장 외에도, 회사의 구조적인 문제는 없었을까요?
경기 평택시 SPC 계열 제빵공장 앞에서 '파리바게뜨공동행동'과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20대 여성 근로자가 숨진 사고에 대한 철저한 원인 조사를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기자]
말씀하신 부분도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를 가릴 때 매우 중요한 지점입니다.
앞서 사고 8일 전에도 민주노총은 SPL 공장에서 손목이 끼는 등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는데 회사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던 일이 있었는데요.
노동부는 그동안 비슷한 사고가 있었는지, 그렇다면 그에 대해 회사는 어떻게 대처했는지, 결정적으로 이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어떤 대책을 마련해 이행했는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에 관해 공장 전반의 위험요소를 살피는 위험성평가 등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살펴볼 대목입니다.
현행 법에는 사업주가 자신의 사업장에 유해, 위험요인이 있는지 반기에 한 번 이상 점검하고 개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번 사고에 관해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거나 위험요인을 파악하고도 조치하지 않았다면 이 또한 법적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앵커]
만약 이번 SPL 제빵공장의 사고에 중대재해법이 적용된다면 SPC 그룹의 허영인 회장까지 처벌받는 겁니까?
[기자]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허 회장에 대한 처벌은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우선 노동부는 사고가 일어난 SPL은 SPC 그룹 계열사지만 독립된 기업으로 보고 있습니다. SPC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인 SPL을 실질적으로 운영했다면 모를까, 아직 그런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따라서 노동부는 SPC 그룹 전체의 대표가 아닌 SPL의 최고경영책임자, CEO나 안전보건최고책임자, CSO 등의 책임 여부를 먼저 따져보고 있습니다.
앞서 채석장 토사 붕괴사고로 중대재해 1호 기업이 됐던 삼표산업도 삼표그룹 정도원 회장은 기소할 수 없다고 검찰에서 정리한 바 있습니다. 나아가 이제껏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수사받은 기업 가운데 실제 기소된 사례는 두성산업 한 곳 뿐이고, 해당 기업은 중대재해법에 위헌 심판까지 신청했죠.
중대재해를 일으킨 경영진의 책임을 명확하게 입증하는 작업이 워낙 어렵고 또 처벌 여부를 결정할 법조계도 부담이 크기 때문에 노동부도 수사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입니다.
[앵커]
그런데 SNS상에서 피묻은 빵 안먹겠다.. 규탄 성명과 불매운동까지 확장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주목하고 있어요.
[기자]
사고 다음날 윤석열 대통령이 정확한 사고 경위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는 없었는지 파악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해졌죠. 같은 날 노동부 이정식 장관이 직접 사고 현장과 장례식장을 찾아가 상황 파악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전날(17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자신의 SNS를 통해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 진상규명을 촉구했고요.
이에 앞서 정의당 의원들도 사고 현장을 직접 찾아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야당은 이번 사고에 관해 SPC 허영인 회장 등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한동안 정치권의 주요 이슈로 부각될 전망입니다.
[앵커]
이렇게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된다면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 문제에도 영향이 있겠네요.
[기자]
중대재해법이 올해 1월 시행돼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요. 그동안 경영계와 보수 여권은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나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해왔습니다.
이런 가운데 노동부가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에 나선 상태여서 노동계에서는 법이 무력화되는 것 아닌가 우려도 나왔습니다. 특히 기획재정부가 노동부에 경영계 입장을 대거 반영한 방안을 제시해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 이후에는 일을 하다 목숨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에 다시 힘이 실리면서 정부 개정안에 경영계 요구사항이 대거 반영될 가능성은 한층 낮아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애초 중대재해법이 제정되고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됐던 당시에도 충남 태안화력발전의 고 김용균 씨의 사망 사고와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가 법과 제도의 변화를 불러왔는데요.
너무나 안타까운 이번 사고를 계기로 삼아 다시는 일하는 직장에서 죽음을 맞는 노동자들이 없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