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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폼 나게' 대한민국 국민 잠시 '사표' 내고 싶은 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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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폼 나게' 대한민국 국민 잠시 '사표' 내고 싶은 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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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과 인사하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과 인사하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 연합뉴스
    '폼 나게 사표 낸다'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베스트셀러 작가인 어느 교수가 누군가 눈치도 없이 타인의 인생을 마구 캐물어 올 때 직면하지 않았을 궁극적인 질문을 던져 응수해 보라 권했다. 뭐라 답변할 길 없는 질문을 눈치도 없이 강권할 때 근본으로 돌아가 근본적 질문을 던져 보라는 훈수인 셈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느냐"고 발언했다. 형사적 책임은 차치 하고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질 생각이 없냐는 기자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고 한다. 이 장관의 상식을 어긋나는 표현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일찍이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는 발언으로 국민들의 염장을 질렀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또 다시 '폼 나게 사표'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로 돌아가 보자. '폼 나게 사표' 앞에는 무엇보다 '맥락'이 있어야 한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폼 나게 사표'를 꿈 꾸어 봤을 것이다. 월화수목금으로 이어지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왜?라는 돌연 의문이 들고 이른바, 권태라는 것이 밀려올 때 우리는 폼 나게 사표내고 싶다는 욕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조직 인생에서 회의가 올 때 장삼이사들은 이런 사치스런(?) 욕망을 한 번쯤 가져 보는 것이다.
     

    꼭 조직 인생이 아니어도 삶에서 '사표'를 던지고 싶은 순간을 맞이하는 때가 종종 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한 장면을 떠올려 보자. 어느 날 갑자기 4·50대 나이에 시한부 생명 선고를 받는 아내가 있다. 이름은 '세연'이다. 세연은 죽음을 직면하고 삶의 덧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가정주부 직에 폼 나게(?) 사표 던진다. 그리고 첫사랑을 찾아 남편과 같이 인생을 정리하는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영화는 슬프지만 인생은 아련하다.
     
    폼 나게 사표 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아무 때나 하는 일이 아니다. 폼 나게 사표 내는 일에는 반드시 '맥락'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맥락'이 아주 중요한데 맥락이 닿지 않으면 공감을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폼 나게 사표 내고 싶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내뱉는다면 그것은 허공에 외치는 탄식에 불과하거나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 사이에 외침일 때 만이 용인 될 수 있는 것이다. 즉설 하면 사적 관계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공적인 신분에서는 함부로 뱉을 수 있는 성질의 말이 아니란 말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창원 기자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창원 기자
    누가 봐도 이상민 장관은 대한민국의 재난 안전 컨트롤타워이다. 재난기본법에 그렇게 명시돼 있다(물론 현 정부에서는 누구도 재난컨트롤타워라고 인정하는 분이 없지만). '폼 나게 사표 내고 싶다'라는 말을 재난 안전 책임자로부터 시민들이 귀담아 들어야 하는 현실이 적반하장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했다. 할 수 있다면 상당수 국민들의 작금 심경은 '폼 나게' 대한민국 국민 좀 잠시 벗어나고 싶은 심경일 것 같다.
     
    이 장관의 사법 연수원 한 동기생은 "소년 등과 해서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력이 부족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대학교 3. 4학년 때 사시에 합격한 사람을 보통 소년 등과라 표현한다. 이 평가가 맞는 분석이나 해석이라 일반화하기 곤란하다. 그러하다해도 이 평가를 수반하지 않고는 그의 '영혼 없는' 사고 체계를 헤아릴 길이 없으니 어쩌랴…
     
    류영주 기자류영주 기자스위스 극작가 뒤렌마트는 작품 <노부인의 방문>에서 '정의를 돈으로 살 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현대 사회의 비인간적인 속성에 근본적 결함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모두가 그것에 책임이 없고, 모두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참사가 발생하고 3주가 흘러가고 있는데도 비인간적인 사회의 모습에 책임지는 이가 없다.
     
    대참사는 관료화된 체제 하에서 공직자 개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알지 못했으니 각자의 행위로 결과로 가능하진 이태원 참사에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대참사를 원한 사람도 전혀 없었다는 논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폼 나게 사표 싶어도 사표를 낼 수 없다'는 형식에 도달한 것이다.
     

    비인간적인 사회의 모습에 책임질 고위 공직자 단 한 명조차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의 비극이고, 이것은 또한 부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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