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에서 온 레건과 선미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아들, 서울, 2021, 피그먼트 프린트, 91x71cm 최원준 학고재 제공 사진작가 최원준(43) 개인전 '캐피탈 블랙'이 서울 삼청동 학고재에서 30일부터 12월 31일까지 열린다. 한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의 삶과 문화를 담은 사진 24점과 뮤직비디오 영상 2점을 선보인다.
1980년대 후반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국내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중 아프리카 출신 흑인 대부분은 미군부대가 주둔하거나 주둔했던 기지촌과 제조업 공장지대가 모여있는 동두천(나이지리아 이보족), 파주(가나인), 평택(카메룬인)에 타운(Town)을 형성해 거주하고 있다.
작가는 사진 작업을 위해 2020년 서울에서 동두천으로 거처와 작업실을 옮겼다. 2021년 더 레퍼런스에서 선보인 개인전 '하이 라이프'가 서아프리카 인기 댄스 장르 하이라이프(Highlife)를 메타포 삼아 아프리카 이주노동자 개개인의 삶을 보여준 반면 이번 전시는 개인, 가족, 노동, 문화를 주제로 이야기를 펼쳐낸다.
'아프리카 출신 흑인-한국인 다문화가정'을 찾는 일부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촬영한 다문화가정은 레건과 선미. 레건은 프로축구 대구FC에서 은퇴한 뒤 휴대폰 공장에서 일하며, 선미는 유튜브를 통해 가족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작가는 "흑인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 국내에서 흑인-한국인 부부를 찾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1세대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풍경'을 보여주는 뮤직비디오(고통 없이는 왕관도 없다·5분 30초)와 사진도 감상할 수 있다. '고통 없이는 왕관도 없다'는 서울 신세계 백화점 본점 명품관과 전태일 동상 등을 배경으로 아프리카 이주노동자의 애환을 담았다.
파티들, 동두천, 2022, 피그먼트 프린트, 177x667cm 최원준 학고재 제공
작가는 "격주로 주간·야간 근무를 하고 주말에는 교민회 행사에 참여하기 때문에 이들은 한국에 10년을 살아도 방탄소년단(BTS)을 모를 정도로 한국 문화에 관심이 없고 문화적으로 고립됐다. 미국 LA 한인타운에만 거주하고 생을 마감하는 한국 교민들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세자매, 파주, 2021, 피그먼트 프린트, 178x138cm 최원준 학고재 제공적응보다 고립을 택했지만 이들의 일상은 여느 한국인과 다르지 않다. 노동 환경은 썩 좋지 않지만 자신의 일터에서 긍정적이고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 나이지리아 이보족이 돈을 하늘에 뿌리고 얼굴에 붙이며 파티를 즐기는 모습,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모델 한현민처럼 되고 싶어하는 2세대들의 발랄한 모습 등은 흑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씻겨주기에 충분하다.
뮤직비디오 '저의 장례식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최원준 학고재 제공 전시장 가운데 자리한 뮤직비디오 '저의 장례식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7분 50초)도 눈길을 끈다. 작년과 올해 작가가 직접 2구의 시신을 나이지리아로 송환하는 과정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이다. 평소 고인이 가장 좋아한 물건을 형상화한 구두 모양 관을 국내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다국적 배우들이 들고 이동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작가는 "고인과 다국적 배우들 모두 외국인 노동자지만 국적에 따라 서열이 생기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동두천 '스페이스 아프로아시아' 디렉터 문선아는 전시 서문에서 "블랙이라는 미명 하에 숨겨진 다양함을 들춰내려는 시도이자 그들과 우리의 관계성을 살펴보는 시도"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