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행정안전부 경찰국 설치의 근거가 된 '경찰 지휘 규칙'에 대해 국가경찰위원회(국가경찰위)가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지만, 헌법재판소는 본안 심리 없이 종결했다.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한 국가경찰위가 '당사자 능력'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헌재는 22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국가경찰위의 권한쟁의심판을 '각하'했다. 권한쟁의심판은 헌법상 국가기관 사이에 권한의 존재 여부나 범위에 관해 다툼이 발생한 경우 헌재가 유권 판단을 내리는 절차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 본안 사건에 대한 판단 없이 소송을 마무리 짓는 결정이다.
이번 사건은 지난 8월 2일 제정된 '행안부 장관의 소속 청장 지휘에 관한 규칙(행정안전부령)'이 국가경찰위의 권한을 침해했는지가 쟁점이었다. 총 5개 조항으로 이뤄진 이 규칙은 경찰청장과 소방청장이 법령 제정·개정이 필요한 기본계획 수립에 관한 사안을 미리 장관에게 승인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 중요 정책·계획의 추진 실적이나 국무회의 상정 안건, 예산 관련 중요 사항, 법령 질의 후 회신받은 내용 등은 장관 보고를 거치게 했다.
국가경찰위는 경찰 사무에 관한 주요 정책이 경찰청법 10조 1항에 따라 국가경찰위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하는데도 행안부가 일방적으로 규칙을 제정해 무효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상민 장관은 "경찰 지휘 규칙은 행안부와 경찰 사이의 업무 절차를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며 "국가경찰위의 심의·의결 대상이 아니다"라고 맞섰다.
헌재는 권한을 침해했는지 심리에 들어가기에 앞서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한 국가경찰위가 소송을 제기할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법률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인 국가경찰위에게는 권한쟁의 심판의 당사자 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010년 국가인권위와 대통령 간의 권한쟁의 사건에서도 헌재는 인권위의 당사자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권위가 법률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이어서다.
헌재는 "국회가 제정한 경찰법에 의해 설립된 청구인(국가경찰위)은 국회의 경찰법 개정 행위에 의해 존폐 및 권한 범위 등이 좌우된다"며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권한쟁의심판의 당사자 능력은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에 한정하는 것이 타당하므로, 법률에 의해 설치된 청구인에게는 권한쟁의심판의 당사자 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