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운데)와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왼쪽)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내년도 예산안 합의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윤창원 기자'절반씩의 양보'. 내년도 예산안 합의 약속을 번번이 깨며 '양치기 국회' 비판을 받던 여야가 22일 극적인 결론을 낸 배경이다. 여야는 결코 포기할 수 없거나 절대 반영할 수 없다며 대치하던 '윤석열표' '이재명표' 예산을 각각 절반씩 양보한 끝에 내년도 예산 합의안을 도출했다.
이날은 여야가 이미 법정 처리 시한인 지난 2일을 삼 주나 넘긴 뒤였다. 그동안 양당 정책위의장과 예결위 간사가 참여하는 '2+2'협의체를 넘어 국민의힘 주호영·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까지 붙은 '3+3'협의체가 가동됐지만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김진표 국회의장의 중재안마저 받아들여지지 않는 동안 정기국회 회기인 9일도 지나버렸다.
특히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문제와 행안부 경찰국·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을 두고 여야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자 김 의장은 15일 두번째 중재안을 냈다. 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합의 기대감이 커졌지만 국민의힘이 수용을 거부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끝까지 원칙대로'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말이 돌면서 19일로 잡았던 데드라인이 철회됐다. "이러다 연말까지 가는 것 아니냐"며 분위기는 다시 험악해졌다.
간신히 합의의 문을 연 건, 더 정확히는 합의를 '압박'한 건 김 의장의 최후통첩이다. 김 의장이 23일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안이 올라가지 못한다면, 민주당의 수정안을 표결처리 하겠다고 못박은 것이다. 이때부터 국민의힘은 집권여당으로서 정부의 재정운영에 흠집이 날 것에 대한 우려가, 민주당은 헌정 사상 최초의 수정안 단독처리에 대한 부담이 본격 작용하기 시작했다.
결국 여야는 절반씩 양보하거나 포기했다. 주고 받거나 증액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온 게 22일 오후 들어 나온 합의안이다. 일단 국민의힘은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구간별 1%포인트)와 금융투자소득세 2년 유예,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얻어냈다. 또 이번 정부의 상징과도 같은 '윤석열표' 경찰국·인사정보관리단 예산의 경우, 절반으로 깎이긴 했지만 정식 예산을 확보했다. 같은 사안을 민주당 입장에서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폭 최소화, 경찰국
·인사정보관리단 예산의 절반 삭감이라는 성과라 볼 수도 있다. '이재명표' 역점 예산이었던 지역화폐와 관련해, 요구액수의 절반이나마 증액한 것도 민주당에겐 성과다. 지난 대선에서 당시 윤석열 후보가 주장하던 '공공분양'주택융자사업은 정부안이 유지됐고 이재명 후보가 주장했던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6600억원 증액하기로 했다.
여야가 공히 '챙길 건 챙겼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각 당이 "정부 정책과 철학을 담았다(국민의힘)","민생예산이 반영됐다(민주당)"고 자평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정의당은 여야가 법인세율을 내리는 데 합의하고, 민주당이 공언했던 공공임대주택 예산 전액 복구가 무산된 것을 두고 "역사적 퇴행이자 특권층만을 위한 정치"라고 비판했다.
여야는 내년도 예산안을 23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하고 화물차 안전운임제 연장 등 일몰조항 법안들은 28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여야가 이날 극적 합의를 이뤘지만, 그간 지리멸렬한 대치로 법정기한을 21일이나 초과하고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예산안을 최장 지각 처리했다는 오명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