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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부동산 예능 출연…전세사기에 악용한 '413채 빌라왕'

사건/사고

    지상파 부동산 예능 출연…전세사기에 악용한 '413채 빌라왕'

    CBS 정다운의 뉴스톡 530

    ■ 방송 : CBS 라디오 <정다운의 뉴스톡 530>
    ■ 채널 : 표준FM 98.1 (17:30~18:00)
    ■ 진행 : 정다운 앵커
    ■ 패널 : 서민선 기자



    [앵커]

    최근 일명 빌라왕, 빌라의신 등 작정한 전세사기꾼들로 인한 피해가 크게 보도됐죠. 실제 피해자는 물론이고 지금 전세를 살고 있거나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분들도 불안감이 커진 상황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광범위한 사기행위를 벌일 수 있었을까. 여러 원인들이 지목되고 있는데요. 저희 취재 결과 이 빌라왕 사기꾼 중 한명은 부동산 관련 유명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사기와 관련 있는 물건을 홍보하기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어디서 부동산을 알아봐야할지 불안할수록 언론이나 다른 신뢰할만한 채널에 나오는 중개자들을 믿고 거래하시는 경우도 많을텐데, 그래서 더 충격적입니다. 이 사건 취재한 사회부 서민선 기자 만나보겠습니다. 어서오세요.

    [기자]

    네 안녕하세요.

    [앵커]

    언론에 나오는 빌라왕이 참 많은데, 오늘 소개해주실 빌라왕은 누구인가요?

    [기자]

    네, 서울시 도봉구, 강북구, 중랑구 등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31살 이모씨 인데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에서 수사에 착수해 일당 8명을 검거하고, 이 중 주범인 이씨만 구속이 된 상황입니다.

    이씨는 2018년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약 3년 7개월 동안 총 413채의 빌라를 소유하면서 임차인 118명으로부터 보증금 312억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습니다. 수사 결과 413채 전체가 이씨 명의로 돼 있었는데, 전부 이른바 '깡통전세'로 확인이 됐습니다.

    [앵커]

    3년 7개월 사이에 빌라 400여채를 소유했다.. 그럼 단순 계산해봐도 3~4일마다 집 한 채씩을 산 셈이네요?

    [기자]

    네, 이씨는 서울 중랑구에 임대사업 법인을 설립하고 직원들을 모집한 뒤 임대차수요가 높은 중저가형 신축 빌라를 주 목표로 매물들을 물색해 이른바 '동시진행' 방식으로 매물들을 매입했는데요, 신축매물을 물색하는 사람, 임차인을 모집하는 사람, 계약서류를 정리하는 사람 이렇게 조직적으로 역할을 나눠서 치밀하게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
    [앵커]

    방금 말씀한 '동시진행'이라는 수법이 전세사기에서 흔히 쓰인다는데, 무슨 말인가요?

    [기자]

    네, 동시진행이란 전세계약과 매매계약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매수인이 전세를 끼고 부동산을 매입하는 건데요, 전세입자로부터 받은 보증금을 그대로 매매대금으로 활용해서 매도인에게 주는 겁니다.

    예를 들어 빌라 시세가 2억원이라고 가정하면 2억원 전세를 놔서 전세입자가 들어오면 이때 받은 전세 보증금 2억원을 그대로 빌라 판매자에게 전달해 바로 빌라 명의를 매수인으로 바꾸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매수인은 돈 한 푼 없이 전세입자의 보증금만으로 빌라를 사는 건데요, '무자본 갭투자'라고도 합니다. 근데 이게 전세가 계속 오르면 문제가 없는데, 지금처럼 고금리 상황이 발생해 전세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후에 들어오는 전세입자의 보증금이 전에 있던 전세입자의 보증금보다 적으면 그 차액만큼 집주인이 내놔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집주인은 전세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고 '돈이 없다'고 버티면서 보증금을 떼먹는 겁니다. 이씨도 이런 식으로 빌라 413채, 총 312억원 상당의 보증금을 편취한거죠.

    다만 이 보증금들은 최초 이씨에게 빌라를 매도한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셈이라, 실제 이씨 주머니로 들어간 돈은 수수료 명목으로 받은 돈을 제외하곤 별로 없는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빌라왕의 배후에 최초 빌라를 판매한 건축주나 분양대행업자가 있는 것 아니냔 말이 나오고 있고, 현재 경찰도 이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앵커]

    문제는 이런 사기가 지상파 부동산 관련 예능 프로그램에서 버젓이 정상적인 물건으로 소개됐다는거에요. 이씨가 출연한거죠?

    [기자]

    네, 일반인 의뢰인이 나와서 몇가지 조건을 얘기하면 그에 맞는 부동산 매물을 연예인 출연자들이 찾아서 추천해준다는 형식의 '부동산 매물 소개' 프로그램인데요, 방영한지 약 4년 정도된 인기 프로그램입니다.

    2019년 5월 19일 진행한 방송에서 이씨가 출연해 한 부동산을 안내했습니다.

    이씨가 해당 방송에 나왔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저희 취재진이 해당 빌라 전체의 등기부등본을 한번 떼봤는데요, 해당 빌라 5층에 있는 한 집이 방송 전부터 이씨의 소유였습니다. 전세사기 범죄를 저지르던 도중 방송에 나온 셈입니다.

    현재 이 부동산은 이씨의 세무 체납으로 인해 국가에 압류됐고, 전세 세입자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피해를 입은 상황입니다.

    [앵커]

    전세사기 범죄가 진행되던 도중에 부동산 관련 TV프로그램에 나왔고,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과 관련 있는 매물을 방송으로 홍보한 셈이네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특히 해당 회차의 주제가 '의뢰인이 숲세권 전셋집을 구한다'는 내용이었거든요. 전세사기를 치고 있던 이씨에게 최적의 홍보 프로그램이 된 셈이죠. 방송이 나간 이후 온라인 상에서는 해당 빌라에 대한 홍보성 글들이 쏟아졌는데요, 자연스럽게 빌라 전체가 홍보되는 셈이라 이씨가 소유한 부동산도 함께 홍보되는 효과를 봤습니다.

    이씨는 방송에 출연했던 모습과 출연 연예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본인 SNS에 올리고, 이후 이뤄진 전세사기 범행에서의 홍보 용도로도 사용했습니다. 방송을 통해 인지도와 신뢰도를 높인 다음, 전세입자들에게 계속해서 추가 범행을 저지른 셈입니다.

    황진환 기자·스마트이미지 제공황진환 기자·스마트이미지 제공

    [앵커]

    프로그램 제작진이 제대로 검증을 하지 않은 거네요. 방송사 측은 어떤 입장인가요?

    [기자]

    네, 최소한 소개되는 빌라가 이를 중개하는 사람과 관련이 있는건 아닌지 등을 검증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데요, 방송사 측은 저희 취재가 시작되자 "이씨가 출연했던 사실은 맞다"면서도 "전세사기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는 입장입니다.

    현재 저희 기사가 보도된 후 이씨가 출연했던 회차의 다시보기는 중단된 상황입니다.

    [앵커]

    전세사기 연루 사실은 방송사가 모를 수 있는데, 그 방송 대상이 됐던 빌라와 출연자의 소유관계 같은 건 파악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요? 주식투자 방송에서도 전문가가 본인이 미리 매수해둔 주식을 호재가 있는 것처럼 방송에서 말해서 나중에 이익을 거두면 처벌받잖아요.

    본인 매물을 방송을 통해 본인이 홍보하는 건 문제가 안되나요?

    [기자]

    문제가 됩니다. 우선 이씨는 공인중개사의 단순 업무를 보조하는 '중개보조원' 신분으로 방송에 출연했습니다.

    그런데 공인중개사법에 따르면 공인중개사는 의뢰인과 직접 거래를 한다거나, 본인이 소유한 매물을 홍보하거나 알선해서는 안됩니다. 중개보조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방송에서 이씨는 본인이 직접 소유한 부동산이 아닌 같은 빌라 내 다른 매물을 소개했기 때문에 해당 행위가 법에 저촉된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앵커]

    당장 위법하다 말하긴 어려워도 예능프로그램이지만 미디어윤리 관점에서는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이분이 공인중개사도 아니고 중개보조원인데 TV에서도 신뢰할만한 전문가로 나온건데 이건 문제가 없나요?

    [기자]

    중개보조원은 공인중개사협회에서 동영상 강의 4시간만 수료하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데요, 이후 별도의 시험이나 연수도 없는 데다가 주무부처인 국토부 차원의 현장 감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거죠.

    [앵커]

    이씨 말고 다른 사례도 있습니까?

    [기자]

    네, 빌라 총 1139채를 소유하면서 세입자 수백여명의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다가 숨진 채 발견된 40대 빌라왕 김모씨도 약 10년간 중개보조원으로 활동해 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앞서 이씨와 김씨 모두 중개보조원을 하면서 무자본 갭투자 방식을 체득했고, 결국 빌라왕에까지 이르게 된거죠.

    [앵커]

    장기간 방치돼 온 공백이 이렇게 큰 피해로 드러났다. 말해도 무방한 수준인 것 같아요. 정부의 대처가 시급한 상황이네요. 사회부 서민선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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