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경찰이 오늘 양대노총의 건설노조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습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산하의 건설노조 사무실들, 그리고 압색 대상이 된 노조 관계자의 주거지 등에 수사관을 보내서 노조 운영과 회계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휴대전화를 압수했는데요. 건설노조가 공사현장에서 각종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게 오늘 강제수사의 근거입니다.
어제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진행된 점, 저희가 전해드렸죠. 같은 날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위도 화물연대를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연이틀 이런 상황이 벌어지다보니 노동계에서는 정당한 불법행위 규율이 아니라 사실상 노조 탄압 아니냐, 이런 주장이 나옵니다.
고용노동부 담당하는 김민재 기자와 한 번 따져보죠.
최근 건설노조 불법행위에 관한 정부의 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이게 오늘 경찰의 압수수색 근거였던 건가요?
[기자]
어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공 건설현장 82곳에서 270건의 불법행위를 찾았다고 발표했고요.
오늘은 국토부가 민간 건설현장으로 조사범위를 확대하니 290개 업체에서 불법행위 2070건을 신고받았다고 합니다.
조합원 채용을 강요하거나 채용하지 않으면 대신 노조 전임비를 달라, 또 타워크레인 월례비를 달라는 요구가 대다수였다네요.
19일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지부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경찰이 나오는 모습. 연합뉴스[앵커]
이게 건수도 굉장히 많고, 이런 내용이 이게 사실이라면 심각한 불법행위 아닌가요?
[기자]
사실 건설현장 안팎에서 노조가 너무 힘이 세다는 불만은 하루 이틀 나온 문제가 아니죠.
노조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 공사를 방해하면 공기가 길어져서 천문학적인 손해를 보는 건설업 특성 때문에 노조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기업들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다만 이번 조사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찜찜한 구석이 있습니다.
[앵커]
아니 국토부와 LH 같은 정부기관에서 직접 조사한 결과인데, 어떤 부분이 찜찜하다는 거죠?
[기자]
어제 LH 조사를 살펴보면 지난 5일부터 13일까지, 열흘도 안돼 387개 공구를 전수조사했답니다.
[앵커]
5일부터 13일까지, 열흘도 안되서
[기자]
이걸 어떻게 조사했냐 물어보니까 LH 지역본부 직원들이 현장 상황을 잘 알고 있으니까 이들 보고를 받아서 단순 합산했다더라구요.
오늘 국토부 조사도 국토부가 직접 현장 실태를 조사한 게 아니고요. 대한건설협회나 한국주택협회 등 건설업계 협회의 주장을 모은 것 뿐입니다.
그러니까 정부가 노사 양측 의견을 들어가며 현장 실태를 직접 파악한 결과가 아니라 기업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갈무리한 것이죠.
예를 들어 국토부는 290개 건설업체가 불법행위를 신고했다는데 관련 근거가 있는 곳은 133곳으로 절반이 안됩니다.
[앵커]
근거가 있는 곳이 절반이 안되고. 이러면 조사내용에 대한 신뢰도가 좀 떨어지는데, 노조는 뭐라고 말하나요?
[기자]
노동계는 사측이 예를 들어 임금 체불 같은 불법을 저질러놓고 항의하면 불법행위를 벌인다고 누명을 씌우는, 이런 경우도 많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애초 고용이 안정되지 않은 건설현장에서 노조가 조합원의 고용을 챙기지 않으면 반대로 어느 기업이 굳이 노조에 가입한 인력을 채용하겠습니까.
여러 불법행위라는 게 살펴볼수록 노사 양측이 서로 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행으로 굳어져서 심지어 노조에서 없애자고 제안해도 해결이 잘 안되는 경우도 있어요.
물론 노조가 명백한 불법행위를 벌였다면 당연히 처벌해야 하지만, 기업 측에서 불법행위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의심사례'를 정부가 '확인'했다, 라며 기정사실화 하고 언론이 취재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받아쓰는 건 문제가 있죠.
[앵커]
정부가 노동계와 대립하고 있는 지점이 건설노조만이 아니라, 어제도 상황이 있었거든요. 화물연대도 최근 검찰에 고발을 당했는데, 고발 주체가 공정거래위원회여서 저도 의아했어요. 이게 가능한가요?
연합뉴스[기자]
지난해 파업에서 공정위가 화물연대 사무실 현장 조사를 시도했는데 화물연대가 이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고발했는데요.
문제는 공정위가 화물연대를 조사할 자격이 있냐는 겁니다.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으로 조사할 수 있는 건 사업자 또는 사업자 단체 뿐이거든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본 법 상식 중에 '노동의 적용 제외'(Labor Exemption)법리라는 게 있습니다. 공정거래법 적용대상이 굉장히 넓어서 기업 뿐 아니라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 단체도 다 포함하지만, 노조는 물론이고 사업을 하지 않는 종업원 일반은 모두 배제한다는 게 국제적인 원칙입니다.
[앵커]
넓은 적용 대상 중에서 노동자, 사업하지 않는 종업원은 배제하는 원칙이 있다
[기자]
그런데 화물차 기사들이 비록 특수고용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고)라지만 노동자성이 갈수록 인정받는 추세로 판례도 많이 나오고 있고요. 특히 합법 노조로 인정받은 공공운수노조 산하조직인데 어떻게 노조를 사업자 단체로 보느냐는 게 화물연대의 불만입니다.
공정위 문재호 대변인도 화물연대가 사업자단체냐, 기자들이 물어보니 "조사 대상이 되는지만 봤고 사업자 단체 여부는 조사를 더 진행할 때 판단할 거다"라고 했어요.
[앵커]
공정위도 확답을 못한 거네요.
[기자]
확답도 못하면서 고발부터 하고 본 거죠.
[앵커]
정부가 확답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화물연대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고발까지 한 상황인데, 그러면 당시 파업 최대 쟁점이었던 안전운임제는 어떻게 되가나요.
지난 18일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국토부가 주최한 화물운송시장 정상화 방안 공청회에서 화물연대 노조원들이 요구사항 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기자]
역시 어제, 국토부가 화물연대 파업 후속책이라고 할 수 있는 화물운송시장 정상화 방안을 내놨습니다.
그런데 이 안전운임제는 화물차 운전기사들의 '최저임금'이라고 해서, 화주와 운송사, 차주 간의 운임의 최저선을 정해놓고 어기면 처벌하는 제도잖아요?
이걸 화주에서 운송사에 주는 운임은 권고 수준으로 정하는 표준운임제로 바꾸자는 겁니다.
처음 돈이 나오는 화주에 운임 수준을 강제로 정하지 않으면 그 다음에 운송사와 차주 간의 운임을 정한다고 해도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또 운임 수준을 정하는 위원회에도 원래 화주, 운송사, 차주가 똑같이 3명씩 들어갔는데 이제는 운송사와 차주를 1명씩 줄여서 화주만 3명이 되고, 정부가 임명하는 공익위원은 4명에서 6명으로 늘립니다.
[앵커]
화주와 정부가 좌지우지하는 거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겠네요.
[기자]
또 낮은 운임을 주더라도 안전운임제에선 바로 과태료를 부과했고, 그래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말이 나왔는데 이젠 시정명령부터 시작해서 단계적으로 처벌한다고 완화방침을 내놨어요.
이 때문에 화물연대는 사실상 안전운임제를 무력화했다, 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앵커]
어제와 오늘 노동계에 대한 정부의 압박을 정리해보니, 노조 탄압이라는 주장이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기자]
며칠 전 제가 노조 회계 투명화 문제로 말씀드렸던 얘기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노조에, 노동계에 문제가 전혀 없느냐,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불법이 있으면 당연히 조사해서 해법도 찾고, 문제가 심각하면 처벌해야죠.
하지만 대통령부터 총리, 장관에 이르기까지 총출동해 노조에 대해 비판하는 수준, 또 대응 수위가 이렇게까지 강하게 몰아치면 자꾸 정치적 속셈이 의심될 수밖에 없어요.
대기업들의 요구사항을 정확히 반영한 지점에서 노조에 문제를 삼고, 그 결과 보수층이 결집돼 정부 지지율이 오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거든요.
정부의 이런 엄정한 법과 원칙의 잣대, 대기업과 재벌에도 굽힘없이 적용되서 이런 의심을 정부 스스로 씻어내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