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아시죠?) 알죠…. (앞으로 다신 이런 일 안 하실 거죠?) 그럼요…. (우리가 걱정 안 해도 돼요?) 네…"
범죄 혐의자들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이 잇따라 이어지던 지난 1일 춘천지법 103호 법정.
녹색 수의를 입은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A(67)씨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어딘가 불편한 걸음걸이로 피고인석에 섰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 황승태 부장판사가 A씨를 향해 "뭘 잘못해서 여기까지 왔고, 다짐 같은 것을 했느냐"고 묻자 몸을 꼬며 수줍은 듯한 태도로 "했죠…"라고 나지막이 답했다.
살인미수와 폭행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A씨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할 예정이었던 황 부장판사는 A씨에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느냐"며 거듭 물었다.
A씨는 지난해 4월 25일 비닐하우스에서 농사일하던 B(71)씨를 흉기로 살해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가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했던 A씨는 살인미수를 저지르기 약 1년 전에도 B씨가 자신을 무시하고 악담하고 다닌다는 이유로 폭행했다.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1심은 "피고인은 오래전부터 조현병과 우울증을 앓았으며, 별다른 이유 없이 마을에 거주하는 피해자가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해 범행했을 뿐 달리 동기와 관련해 참작할 만한 아무런 객관적인 사정이 없다"며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형이 무겁다"는 A씨 주장을 살핀 항소심 재판부는 고민 끝에 A씨를 집행유예로 석방하는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자칫 피해자의 신체와 생명에 위중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고 실제로 피해자가 상당한 정신적 고통과 피해를 보았다는 점을 들어 사안이 중대하고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했다.
특히, 가구 수가 많지 않은 작은 마을에서 범행이 발생했고, 피해자는 물론 평온한 삶을 기대한 마을 주민들도 그동안 피고인을 경계하면서 되도록 마찰을 피하고 살아왔다고 보이는 점도 A씨에게 불리한 정상으로 봤다.
다만 A씨가 오랜 기간 조현병 등을 앓으면서 가족으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사정과 불안정한 심리 상태, 분노 장애가 범행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이는 사정은 유리한 정상으로 판단했다.
A씨 가족이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A씨에 대한 치료와 관리를 다짐하고 있고, 집을 팔고 마을을 떠나기로 한 결정 등을 종합해 수감 생활을 연장하기보단 형의 집행을 유예하면서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 2년과 함께 그 기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치료를 받으라고 명령했다.
황 부장판사는 A씨에게 석방 사실을 알리며 "집행유예 기간 절대로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고, A씨는 두 손을 모아 "감사하다"고 허리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