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냈다!' 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실내테니스 경기장에서 열린 2023 데이비스컵 최종 본선 진출전(4단 1복식) 4단식 한국 홍성찬과 벨기에 지주 베리스의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2 대 0(6-3 7-6<7-4>)으로 승리한 한국 홍성찬이 권순우 등 선수단과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한국 남자 테니스가 기적과 같은 역전승을 이뤄내며 새 역사를 썼다. 국가 대항전인 데이비스컵에서 첫날 당한 2패를 극복하고 다음 날 내리 3연승을 거두며 최초로 2년 연속 16강 진출의 쾌거를 달성했다.
대표팀은 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실내테니스 경기장에서 열린 '2023 데이비스컵' 최종 본선 진출전(4단 1복식)에서 3승을 따냈다. 전날 1, 2단식 2패를 안았지만 복식과 단식 2경기를 모두 이기며 최종 전적 3승 2패를 기록했다.
데이비스컵 2년 연속 파이널스 진출이다. 한국 테니스는 이전까지 1981년과 1987년, 2007년, 2022년까지 4번 데이비스컵 16강에 오른 바 있다. 올해까지 2년 연속은 최초다. 지난해 오스트리아를 누르고 15년 만에 파이널스 진출을 달성한 기세를 이었다.
사실 대표팀 상황은 좋지 않았다. 4일 믿었던 에이스 권순우(61위·당진시청)가 지주 베리스(115위)와 1단식에서 접전 끝에 1 대 2 패배를 당한 것. 지난달 남자프로테니스(ATP) 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 2차 대회에서 우승하며 한국인 최초로 ATP 투어 2회 정상 등극을 이뤘던 권순우였기에 충격은 컸다.
2단식에 나선 홍성찬(237위·세종시청)마저 상대 에이스 다비드 고팽(41위)에 0 대 2로 졌다. 5일 1패만 당해도 본선 진출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대표팀은 꺾이지 않았다. 5일 33살 맏형이지 주장 송민규(복식 147위·KDB산업은행)와 30살 베테랑 남지성(복식 152위·세종시청)이 복식에서 먼저 일을 냈다. 상위 랭커인 요란 블리겐(복식 53위)-잔더 질(복식 55위)에 2 대 0(7-6<7-3> 7-6<7-5>) 완승을 거둔 것.
송민규, 남지성은 2020, 2021년 호주오픈에서 2년 연속 본선에 오른 찰떡 호흡을 과시했다. 두 세트 모두 타이 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이었지만 승부처에서 놀라운 집중력을 과시하며 대역전극의 발판을 마련했다. 송민규의 강력한 서브와 남지성의 발리가 만든 승리였다.
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실내테니스 경기장에서 열린 2023 데이비스컵 최종 본선 진출전(4단 1복식) 복식 한국 송민규-남지성 조와 벨기에 요란 블리겐-잔더 질 조의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2-0(7-6<3>, 7-6<5>)으로 승리한 한국 송민규(왼쪽)와 남지성(오른쪽)이 코치진과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형들의 선전에 26살 동갑내기 동생들이 화답했다. 권순우는 전날 패배의 아쉬움을 딛고 고팽과 에이스 대결에서 2 대 1(3-6 6-1 6-3) 역전승을 거뒀고, 홍성찬이 베리스를 2 대 0(6-3 7-6<7-4>)으로 완파하며 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승리가 확정되자 홍성찬과 선수들은 코트에 드러누워 기쁨을 만끽했다.
대표팀 박승규 감독(KDB산업은행)은 경기 후 "정신이 없다"면서 "진짜 끝난 건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얼떨떨한 소감을 밝혔다. 이어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자 했는데 선수들이 마지막까지 열심히 해줘서 고맙고 자랑스럽다"면서 "너무 좋아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미소를 지었다.
주장 송민규는 "어제 늦은 밤까지 치료를 받고 미팅을 하면서 '아직 끝난 게 아니고 형들이 한번 최선 다해서 이겨볼 테니 뒤에서 준비해 달라'고 했다"면서 "나랑 지성이랑 맡은 바 최선을 다해 이겨서 순우와 성찬이까지 갈 수 있게 시작하자 얘기했다"고 전날 상황을 들려줬다. 이어 "지난해(오스트리아와 최종 진출전)도 좋은 기억이 있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어떤 기적이 일어날지 모른다 얘기했다"면서 "그런데 기적이 다시 일어났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너무 고맙고, 너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테니스팀이라 자부할 수 있다"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지난해 카타르월드컵에서 극적으로 16강 진출을 이룬 한국 축구 대표팀을 연상케 하는 기적이었다. 축구 대표팀은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우루과이에 비기고, 가나에 지면서 탈락이 유력했지만 강호 포르투갈을 꺾고 감격의 16강 진출을 이뤘다. 기적의 주역인 조규성(전북 현대) 등 선수들은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구를 새긴 태극기를 들고 기뻐했다.
권순우도 "어제 감독님과 코치님, 선수들과 얘기하면서 장난 식으로 얘기한 게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형들이 이겨주면 내가 (고팽을) 잡을게 라고 했다"면서 "그런 생각으로 첫 세트를 내줬지만 즐기려고 했고 플레이 자체가 잘 됐다"고 강조했다.
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실내테니스 경기장에서 열린 2023 데이비스컵 최종 본선 진출전(4단 1복식)에서 벨기에를 꺾은 한국 선수단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승규 감독, 권순우, 홍성찬, 남지성, 송민규. 연합뉴스마지막 경기를 잡으며 역전극을 완성한 홍성찬도 "형들과 순우가 잘 해줘서 경기 전에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면서 "긴장도 했지만 설렘도 컸다"고 돌아봤다. 이어 "이전 데이비스컵을 하면 내 경기에서 지면서 끝났던 생각도 났다"면서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 있는 모습으로 당당히 밀어붙일 테니까 기죽지 말자는 생각으로 내 장점을 최대한 보여주려 했고 상대가 답답해 하는 전술을 하자고 해서 승리로 보여줄 수 있었다"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초 대표팀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선수 4명만 선발해 논란이 일었다. 혹시라도 모를 부상에 대비해 1~2명을 더 뽑았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선수단은 통쾌한 승리로 우려를 불식시켰다. 남지성은 "긴 말 필요 없이 그 어떤 팀보다 단합이 좋았다는 점이 자부심이고 큰 힘"이라면서 "벨기에보다 전력이 약하다고 했지만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충분히 뭉치면 좋은 팀이 될 거다 했고 극적 드라마로 보여줘서 너무 좋고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이제 대표팀은 또 다른 역사에 도전한다. 사상 첫 데이비스컵 8강 진출 이상의 성적이다. 권순우는 "지난해 16강도 가봤고, 막상 뛰어보니 부족함도 많았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면서 "오늘 경기를 마치고 나서 16강이 아닌 8강, 4강 목표를 잡고 싶다"고 기염을 토했다. 이어 "크게 변화가 없다면 지난해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 테니스의 역사를 새롭게 써낸 남자 대표팀. 과연 오는 9월 데이비스컵 16강 본선에서 또 어떤 드라마를 쓸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