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해야 할 활동지원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뇌병변장애인 정모(52)씨와 그의 변호를 맡았던 대한법률구조공단 춘천지부 소속 박성태(34) 변호사가 지난 7일 정씨 집에서 만나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서울에 가시더라도 저와 같은 장애인들을 도와주세요""네,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손잡아줄게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해야 할 활동지원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정모(52)씨와 그의 변호를 맡았던 대한법률구조공단 춘천지부 소속 박성태(34) 변호사가 지난 7일 손을 맞잡았다.
경찰 수사단계에서부터 이달 1일 징역 10년으로 결론이 난 가해자의 2심 선고공판까지, 1년 반이 넘도록 함께한 두 사람의 '마지막 인사' 자리였다.
인사이동마저 마다하고 끝까지 변호를 맡아준 박 변호사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은혜를 갚고 싶었던 정씨, 그런 정씨 사건을 맡으며 장애인 성폭력 피해 사건에 깊은 고민을 했던 박 변호사가 보낸 지난날은 어느새 서로 잊지 못할 인생의 한 페이지가 되어 있었다.
가해자에게 성폭행 피해를 본 7개월을 '지옥'이라고 표현하며 "아직도 악몽을 꾼다"는 정씨에게 박 변호사는 "나쁜 사람을 생각하면 시(詩)도 쓸 수 없다"며 그를 달랬다.
박 변호사는 정씨 사건의 피해자 국선변호사로서 사건 초기 단계부터 정씨 편에 서서 그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엄벌해야 한다는 데 앞장섰다.
늘 불안했을 정씨가 마땅히 알아야 할 수사 절차를 모르고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수사기관에 서면 통보를 요청하고,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가자 모든 공판에 출석하며 그날의 내용을 정씨 가족에게 알렸다.
성폭행 피해 뇌병변장애인과 변호사의 '맞잡은 손'. 연합뉴스피해자 변호사라고 해도 매 공판에 출석하기 어렵고, 대게 판결 결과만 들려주는 선고 공판에는 사선 변호사도 출석하지 않는 게 관행이지만 박 변호사는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법정에 출석하는 건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 피해자는 '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너무 궁금해도 피고인하고 마주치는 게 두려워 법정 문턱을 넘기가 어렵잖아요. 늘 불안하셨을 텐데 끝까지 믿어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박 변호사는 종일 누워서 생활하는 와상 장애인인 정씨가 증인으로 나설 수 있도록 지금은 전국 법원에서 시행 중인 해바라기센터와 연계한 성폭력 피해자 영상증인신문의 필요성을 진작에 법원에 제안하기도 했다.
결국 재판부로부터 영상증인신문을 거절당하고 지난해 5월 정씨가 직접 법정에 출석하기로 했을 때도 '바닥에 누워서 진술할 수는 없지 않으냐'며 침대를 두는 등 인권 보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강원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 등 장애인 인권 보호 단체와도 소통하며 사건을 공론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박 변호사는 정씨 사건을 마지막으로 오는 20일 서울중앙지부로 자리를 옮긴다.
진작에 인사이동 대상 명단에 올랐으나 "안 가면 안 되냐"는 정씨 가족의 간곡한 부탁과 갑자기 대리인이 바뀌었을 때 겪는 피해자들의 불안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항소심까지 변호를 책임지기로 한 약속을 지켰다.
정씨는 박 변호사에게 거듭 감사 인사를 하며 손가락 하나로 펴낸 자신의 시집을 선물했다. 박 변호사는 서울에 가더라도 연락을 끊지 않고 상고심까지 변호를 이어가겠다고 화답했다.
앞서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황승태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장애인 유사성행위와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안모(50)씨에게 원심과 같은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안씨는 2021년 2~5월 정씨를 상대로 네 차례에 걸쳐 유사성행위를 시도하고, 다섯 차례 강제추행하고, 7회에 걸쳐 머리 등을 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판결에 불복한 안씨는 대법원에 상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