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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직종 '관제사' 직업병·스트레스 넘어 항공 지휘

제주

    희귀직종 '관제사' 직업병·스트레스 넘어 항공 지휘

    편집자 주

    한 해 16만대 이상의 비행기가 오가는 제주국제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바쁜 공항 가운데 하나입니다. 섬인 제주로서는 뭍과 연결해주는 주요 통로이고, 제주도민들에게는 버스터미널과 같은 존재입니다. 한해 2500만명의 관광객이 첫발을 내딛는 곳이자 다양한 기관과 업체, 직종이 어우러진 백화점과 같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제주국제공항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다단한 일을 하는 곳인지 '흥미로운 제주공항 이야기'를 연속 기획보도합니다. 열두 번째 이야기, 제주공항 항공기 이륙과 착륙을 관장하는 하늘의 지휘자 '관제사' 하편을 소개합니다.

    [흥미로운 제주공항 이야기⑫]관제사(하)
    과중한 책임감에 다양한 직업병과 항공기 사고 악몽 스트레스 커
    항공교통관제사 자격증명 취득 뒤 국토교통부 공무원 채용 거쳐
    폭설과 강풍 등 기상악화때 집중력과 에너지 더 소모

    제주공항 관제사. 박정섭 기자제주공항 관제사. 박정섭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내가 누군줄 알아?" 제주공항 항공보안검색 요지경
    ②"내 얼굴이 신분증?" 대통령도 예외없는 항공보안검색
    ③스튜어디스, 항공승객 안전 지키는 '감정 노동자'
    ④"항공기 사고 3분내 도착, 제주공항 소방구조대가 맡는다"
    ⑤제주공항 구조·화재·구급 해결사 '소방구조대' 입니다
    ⑥제주공항 화장실 추태…샤워에서 고기 손질까지
    ⑦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쓰레기…제주공항은 올해도 비상
    ⑧제주공항 활주로 1톤당 200만원 제설제 '초산칼륨'
    ⑨장난전화에 제주공항 마비…폭발물처리반 24시간 초긴장
    ⑩'항공기의 등대' 제주 하늘길 24시간 지킴이
    ⑪긴장의 1초 1초 제주공항 지휘자 '관제사'의 하루
    ⑫희귀직종 '관제사' 직업병·스트레스 넘어 항공 지휘
    (계속)

    2015년 12월12일. 제주공항 관제사들에겐 절대 잊혀지지 않는 날입니다

    7년 전 이 날 통신장비가 고장 나 제주공항을 오가는 항공기와 관제사간 교신이 모두 중단됐습니다. 통신이 끊기다 보니 현재 제주공항 상황이 어떻고, 항공기가 어느 순서로 착륙해야 하는지 등을 항공기에 전달할 수 없는, 말 그대로 먹통이 됐습니다. 그것도 무려 76분간 말입니다. 항공기에게 지시할 수단이 마비되자 관제사들은 최후의 수단인 빛총(Light Gun)을 꺼내들었습니다. 통신마비에 대비해 관제탑과 항공기 사이에는 미리 정해놓은 통신두절 매뉴얼에 따라 빛을 이용해 의사소통을 하는데요. 국제 기준으로 정해진 게 있습니다. 빨간빛은 '복행하라', 녹색빛은 '착륙하라', 흰색빛은 '기다려라'입니다. 다행히 이 시간대 착륙하는 항공기 14대에 빛총으로 신호를 정확히 전달해 사고없이 이 식은땀 나는 76분을 극복했습니다.
     

    관제사들의 직업병,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교신중에 하는 모든 관제 업무는 항공안전법상 항공교통관제 지시에 해당합니다. 그러다보니 관제허가를 조종사들이 제대로 수신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쉽게 말하면 관제사가 한 말을 조종사가 똑같이 대답을 하는 거죠. 이렇다보니 친구들과 대화에도 친구가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 꼭 대답을 들으려 하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박지은 관제사는 해외 레스토랑에서 웨이터 말을 잘못 알아들어 "다시 말해 달라"는 "pardon" 이나 "sorry"라는 표현 대신 "say again(다시 말해봐)"이라고 해 자신조차 뜨악하게 했다는 고백입니다.
     
    제주공항 관제사. 박정섭 기자제주공항 관제사. 박정섭 기자

    항공기 사고 악몽을 꾸지 않은 관제사는 없다네요

    군 전역을 한 예비군들이 십수년이 지나서도 군대 꿈을 꾸듯이 관제사들은 훈련받는 과정에서 비행기 사고 나는 꿈을 한번은 꼭 꾼다고 하는데요. 그것도 본인이 지시를 잘못 내려 사고가 나는 최악의 꿈을 말이죠. 관제사의 단 한번의 실수에 수많은 인명이 희생될 수도 있다는 책임감과 스트레스가 꿈으로 발현된 겁니다. 다행히 현실이 아닌 꿈에서 모든 사고가 마무리되는 게 그나마 다행중 다행,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한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항공기 사고와 관련된 영화를 보는 게 결코 편하지 않다는 어려움도 토로합니다.
     

    2001년 9.11 테러. 관제사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제주공항 관제사 20년 경력인 조영직 제주관제탑장은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회상합니다. 미국과 동맹국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도 결코 9.11 유사 테러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네요. 조영직 탑장은 "당시 대구에서 여객기 납치를 가정해 시뮬레이션 훈련을 한 적이 있는데 그냥 대본대로 하니까 괜찮았지만 실제 사태라면 과연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까"하는 회의감도 컸다고 합니다. 여객기 납치 상황인 하이재킹 때는 납치범이 알아들을 수 없도록 관제사와 조종사간 국제적으로 약속돼 있는 '음어'를 통해 대화가 이뤄집니다.
     
    왼쪽부터 정욱진 조영직 박지은 관제사. 박정섭 기자왼쪽부터 정욱진 조영직 박지은 관제사. 박정섭 기자

    관제사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우선 항공교통관제사 자격증이 필요합니다. 자격증을 따려면 한국항공대학교 항공교통물류학, 한서대학교 항공교통물류학, 경운대학교 항공교통물류학, 한국공항공사 항공기술훈련원, 공군교육사령부 정보통신학교 등 항공안전법이 정하고 있는 전문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실무경험을 쌓은 사람만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시험에 응시할 수 있습니다. 항공교통관제사 자격증명을 취득한 뒤 국토교통부 공무원 채용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관제사'란 명함을 받아들 수 있습니다.
     

    관제사, 되기도 어렵지만 되고 나서도 시험의 연속입니다

    영어로 항공기와 교신하다 보니 특정 등급 이상의 영어 구술능력이 필요합니다. 두 나라 이상을 운항하는 항공기가 취항하는 국제공항인 제주와 인천, 김포, 김해공항 항공교통관제사는 짧게는 3년마다 항공영어구술능력증명시험을 보고 있습니다. 항공안전법이 규정하고 있는 항공영어구술능력증명시험(EPTA)을 보는데요. 4등급 이상의 증명을 보유해야 합니다. 4등급 유효기간은 3년, 5등급은 6년, 6등급은 영구입니다. 유효기간이 끝나기 전에 등급을 유지하거나 상향시키기 위해 시험을 봅니다. 관제사 자격 유지를 위해 항공전문의사로부터 제3종 항공신체검사증명도 받아야 합니다. 또 각 공항마다 관제 방법이 달라 제주공항 관제사가 김해공항에서 근무하려면 김해공항 면허를 따야 합니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중인 관제사는 400명 가량. 희귀 직업 중 희귀직업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차고 넘칩니다.
     
    최근 5년간 제주공항 교통량. 국토교통부 제주지방항공청 제공최근 5년간 제주공항 교통량. 국토교통부 제주지방항공청 제공

    '엄청난 대우 받는 직업' 같지만 국가공무원입니다

    일반인들 보기에 관제사라면 비행기 조종사들처럼 매우 많은 월급과 대우를 받는 줄 알지만 초봉 연봉 2500만원부터 시작하는 8급 공무원부터 시작합니다. 관제 면허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 시험에 응시할 수 있습니다. "관제사라면 비행기 공짜로 탈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는데 좌석 업그레이드조차 안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청탁금지법 대상인 공무원입니다.
     

    폭설 등 기상악화, 제설팀 못잖게 비상상황입니다

    폭설과 강풍, 폭우, 안개 등 기상악화는 관제사들이 극도로 꺼리는 상황입니다. "비행기가 많아도 좋으니 정상적으로만 뜨고 내리면 좋겠다"는 말이 관제사들 입에서 절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예고된 기상악화 전 날씨가 꾸물꾸물 안 좋아지는 시점부터 이들에게 걱정이 앞섭니다. 결항이 예상되면 결항 전후로 교통량이 급증하기에 집중력도 더 필요하고 에너지도 훨씬 많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극도로 나빠진 날씨에 착륙하던 항공기가 다시 기수를 올리면 관제탑 뿐만 아니라 접근관제소(레이더 관제업무)의 업무부담이 급격히 늘어납니다. 활주로에 눈이 쌓이면 관제사들은 모든 항공기 운항을 멈춰 세우고, 제설차량을 지휘.통제합니다. 결항 전후로 자신의 근무가 걸리지 않길 바라는 걸 보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닌가 봅니다.
     

    착륙중인 항공기가 풍향이 바뀌거나 급변풍때 복행은 누가 결정하나요?

    섬이라는 특성상 비행기를 자주 이용하는 제주도민들은 한두번쯤 착륙하던 비행기가 바람 등의 문제 때문에 기수를 다시 들어올리는 '복행'을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이륙하거나 착륙하는 비행기는 맞바람을 받아야 하는데요. 바람이 변덕을 자주 부리는 제주공항은 복행하는 경우가 적잖습니다. 이런 경우 복행은 전적으로 기장 권한으로 결정됩니다. 다만 활주로의 오염물질이나 새들의 움직임, 활주로 상황에 따라 관제사가 복행을 지시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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