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뮤지컬단 제공 누군가의 딸, 아내, 엄마로 바쁘게 살다보니 어느덧 반백 살. 큰마음 먹고 여행을 떠난 7명의 여성은 빗길 버스 사고로 생사의 기로에 서고, 저승사자 앞에서 각자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그런데 한 사람씩 마이크를 잡고 풀어놓는 이야기가 어째 낯설지 않다.
세상에! 혼수상태에서도 빨래방에 맡겨둔 아들 스니커즈 찾아오고, 남편 셔츠 다려야 한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가 하면, 유난스러운 갱년기 안면홍조로 8시 뉴스 앵커에서 밀려난 것도 서러운데 집에서는 취준생 딸 눈치 보느라 한숨을 푹푹 쉰다.
암투병하다 떠난 남편 병수발 하느라 고생했으니 교직에서 정년퇴직하면 자신을 추앙하며 살겠노라 다짐하고, 100세 시대에는 운동만이 살 길이라며 건강전도사를 자처한다. "인생 2막에는 외로운 싱글생활을 청산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었다"는 가슴 시린 고백도 이어진다.
서울시뮤지컬단 제공 지난해 10월 초연 이후 5개월 만에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다시, 봄'은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를 신나는 춤과 노래로 펼쳐냈다. 특히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나오는 생활밀착형 대사가 압권이다.
제작진은 '디바이징 시어터'(Devising Theatre·공연 참여자가 극 구성에 적극 개입하는 공동 창작 방식)를 도입해 작품의 진정성을 높였다.
김솔지 작가는 최근 간담회에서 "실제 50대인 배우들과 평범한 중년 여성들을 심층 인터뷰하고 글쓰기·연극놀이·생애전환기 워크숍 등을 진행했다"며 "어릴 적 꿈과 요즘 가장 큰 고민, 70세에 그리는 미래 등을 물어봤고 함께 나눈 이야기를 줄거리와 가사에 적극 차용했다"고 말했다.
'진숙' 역의 왕은숙은 "대본 없이 출발했다. '제 이야기를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나' 고민됐지만 같이 이야기 나누며 대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신선하고 재밌었다"고 했다.
초연 배우들이 포진한 '다시' 팀과 새로운 배우들로 구성된 '봄' 팀으로 나눠 공연한다. 배우들은 대부분 50대인데, 평균 나이로 따지면 54세, 연기경력 도합 425년에 달한다. 덕분에 연기한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만큼 각자 맡은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진숙' 역의 문희경은 "설 무대가 없어 사라진 4050 여성 배우들이 많다"며 "창작 뮤지컬은 시즌을 거듭할수록 완성도가 높아진다. 지속적인 수정·보완을 거쳐 '다시, 봄'이 한국 뮤지컬사에 남는 콘텐츠로 발전하길 바란다"고 했다.
서울시뮤지컬단 김덕희 단장은 "최근 들어 뮤지컬의 새로운 관객층으로 부각되고 있는 4050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개발했다. 지금은 레퍼토리화하는 과정에 있는데 추후 투어를 돌면서 전국 관객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실제 '다시, 봄'은 2030 관객이 주를 이루는 다른 작품과 달리 4050 관객이 압도적이다. 중장년층을 위해 목요일 오전 11시, 금요일 오후 3시 공연을 마련한 점도 눈에 띈다.
인생 후반전에 접어든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록, 발라드, 포크,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만나 유쾌한 분위기가 배가된다. 음악도 디바이징 방식으로 만들었다. 연리목 작곡가는 "배우들이 잘 부르는 음악 장르와 18번 곡을 들어본 다음 이에 맞춰 장르를 편성했고, 각자 캐릭터의 색깔을 살릴 수 있는 곡으로 구성했다"고 했다.
"폐경이 아니라 완경이라고 부르자. 완경기가 힘들긴 하지만 자연스러운 일이야" "때론 길을 잃을 때도 있겠지. 그래도 버티며 살아야지. 인생이 내 뺨을 때려도" "우리 인생은 또 다른 산을 만나겠지만 여태 살아온 경력이 있으니 앞으로 잘 살아보자" 대사와 넘버 한 소절, 한 소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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