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BNK 박정은 감독. WKBL부산 BNK를 이끄는 박정은 감독은 여자프로농구의 레전드다.
무엇보다 우승 경험이 많다. 삼성생명 소속으로 다섯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역대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서 최다 출전 1위(54경기), 최다 득점 3위(662점), 역대 최다 3점슛 2위(84개), 최다 어시스트 3위(170개) 등 화려한 기록을 쌓았다.
박정은 감독은 여성 사령탑 사상 첫 챔피언결정전 진출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선수로서 정점을 찍었던 베테랑이지만 지휘봉을 잡고 들어선 결승 무대는 다소 낯설 수 있다.
박정은 감독은 19일 충남 아산에서 열린 신한은행 SOL 2022-2023 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과 챔피언결정전 1차전을 앞두고 "선수 때는 많이 뛰어봐서 챔피언결정전이 별로 긴장되지는 않았는데 다른 위치에서 준비하면서 맞이하니까 긴장감이 있다"며 웃었다.
그래서 박정은 감독은 지도자이면서 멘토 역할도 자처하고 나섰다.
박정은 감독은 "저도 어렸을 때 처음으로 챔프전을 했을 때는 림이 정말 작게 보였다. 긴장을 풀기 위해서는 다른 생각이 안 나도록 코트에서 많이 움직여야 한다. 선수들에게 그런 부분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은행을 상대로는 초반에 격차가 생기면 만회하기 힘들다. 선수들이 초반에 얼마나 빨리 긴장을 푸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정은 감독의 조언이 효과가 있었을까. BNK의 1쿼터는 충분히 훌륭했다.
박정은 감독은 경기 초반 우리은행에 연속 5점을 내주고 5-10으로 끌려가자 빠르게 작전타임을 불렀다. 이후 이소희의 외곽포가 터지기 시작했고 한엄지도 득점에 가담했다. BNK는 1쿼터 막판 22-16으로 앞서갔다.
이때 돌발 변수가 생겼다. 주축 포워드 진안이 1쿼터 막판 세 번째 반칙을 범한 것이다. 이후 우리은행의 반격이 시작됐다. 2쿼터 초반까지 연속 13점을 몰아넣으며 순식간에 전세를 뒤집었다.
BNK의 공격은 주춤했고 우리은행의 외곽포까지 터졌다. 전반은 26-42로 끝났고 3쿼터 중반 스코어는 30-50까지 벌어졌다.
박정은 감독은 "선수들이 초반에 준비한 부분들을 잘 이행했다. 이후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떨어졌고 3점슛을 내주는 상황이 오면서 분위기를 확 넘겨줬다"며 "진안이 많이 달려주고 몸싸움을 해줬어야 했는데 위축되다 보니까 공격이 한정적이었다"고 아쉬워 했다.
하지만 BNK는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점수차가 벌어지자 선수 로테이션을 시도했다. BNK는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진안과 이소희의 활약으로 점수차를 좁혀나갔다.
우리은행은 극심한 슈팅 난조에 빠졌다. 종료 4분40초를 남기고 박지현이 야투를 성공하기 전까지 4쿼터 무득점에 허덕였다. BNK는 종료 1분여 전 이소희의 3점슛으로 스코어를 56-59로 좁혔다.
하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김정은의 3점슛을 저지했지만 공격리바운드를 빼앗기면서 흐름이 끊겼다. 결국 우리은행은 BNK를 62-56으로 누르고 1차전 승리를 차지했다.
우리은행이 이겼지만 위성우 감독의 표정은 어두웠다.
위성우 감독은 "전반전은 너무 잘했고 후반전은 너무 못했다. 경기 내용은 만족한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갈 경기를 어렵게 갔다. 점수차가 벌어졌을 때 이대로 지나가면 경기를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운영을 잘못 해서 기분이 안 좋다. 선수들은 감독이 요구한대로 잘해줬다. 내가 너무 일찍 경기를 끝내려고 오판하지 않았나 싶다"며 아쉬워 했다.
BNK의 저력에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초반에는 어린 팀이라고 느낀 부분이 있었는데 후반에 치고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잃을 게 없이 덤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싸움에서 밀리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BNK는 1차전 패배로 불리한 위치에 놓였지만 그래도 희망을 봤다.
부산 BNK 이소희. WKBL박정은 감독은 "후반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가 했던 부분들을 얘기했고 그 부분들이 다시 나왔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좋은 경기를 했다. 다음을 기대하고 준비할 발판을 잘 마련한 1차전 같다"고 말했다.
이어 "긴장한 부분이 크다 보니까 스피드가 다소 떨어졌다. 한 번 겪은만큼 다음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정은 감독은 베테랑이 많은 우리은행을 상대로 5대5 농구로 일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안혜지, 이소희 등 젊고 빠른 백코트를 앞세워 적극적인 속공과 얼리 오펜스를 펼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스피드가 살아나면 BNK도 해볼만 하다. 그렇다면 관건은 백코트 싸움이 된다.
이소희는 1차전에서 18점을 기록했다. 그의 득점력이 폭발할 때마다 우리은행은 흔들렸다. 1차전 야투 성공률은 30%로 저조했지만 이소희는 스스로 득점 기회를 창출할 수 있어 가치가 높다. 이소희의 득점력에 꾸준함이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안혜지는 6득점 12어시스트로 분전했다. 하지만 수비에서는 작은 신장 때문에 다소 고전했다. 우리은행의 무서운 점은 주전 5명 모두가 스위치 수비를 펼쳐도 될만큼 전반적인 사이즈가 우세하다는 것이다. BNK는 도움수비를 통해 약점을 만회하겠다는 계획이다.
역으로 공격에서는 안혜지가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위성우 감독은 1차전을 앞두고 "6개 구단 가드 중 안혜지가 가장 독보적"이라고 평가했다. 안혜지가 스피드를 끌어올리면 우리은행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우세한 건 우리은행이다. 1차전 전반전을 통해 우리은행의 '우승 DNA'가 다시 한 번 발휘됐다. BNK는 또 한 번 도전에 나선다. 양팀의 2차전은 오는 21일 오후 7시 충남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