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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도 '감형' 받을 권리 있지만…'감형 자료'에 재차 우는 피해자들

사건/사고

    피고인도 '감형' 받을 권리 있지만…'감형 자료'에 재차 우는 피해자들

    편집자 주

    성폭력이 시장으로 갔다. 성범죄 사건은 상품이 됐다. 돈만 있다면 형을 줄일 수 있다. '감형'을 파는 성범죄 전문 로펌은 빈틈없는 '감형 시나리오'를 짠다. 많은 돈을 들일수록, 시나리오는 더욱 촘촘해진다. 진지한 반성과 분명한 사회적 유대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반성문, 교육 및 자원봉사 등 각종 장치가 동원된다, 전관예우까지도. 시나리오는 곧잘 먹히고, 감형은 꽤나 쉽다. 실제 살펴본 100건의 판결문이 이를 증명했다. 가해자에게 자애로운 사법제도 아래서 가해자가 법적 처벌으로부터 멀어지는 사이, 피해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피해를 스스로 증명해내야만 했다.

    [성범죄, 감형을 삽니다③]


    ▶ 글 싣는 순서
    ①"檢출신 변호사 붙여줄게" 성범죄 감형 쇼핑의 민낯
    ②성범죄 판결문 100건 살펴보니…난무하는 '감형' 꿀팁
    ③피고인도 '감형' 받을 권리 있지만…'감형 자료'에 재차 우는 피해자들
    (끝)

    성범죄 '감형'을 노리는 범죄자들을 위한 성범죄 '감형 컨설팅' 시장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많은 성범죄자들이 다양한 감형자료 덕분에 '감형'에 성공하고 있었다.

    물론 모든 피고인에게 '감형 받을 권리'는 있다. 하지만 이들의 '감형 받을 권리'를 위해 '감형 컨설팅' 시장에서 거래까지 되고 있는 감형 자료들로부터 피해자가 '또다른 상처를 받지 않을 권리'도 주목할 필요도 있다.

    피고인 '감형권' 지키는 사이…또다시 다치는 피해자


    재판부는 형량을 결정할 때 '양형기준'을 참고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마련한 양형기준에는 형을 감경·가중할 요소를 담는다. 감경·가중 요소가 인정되면, 그만큼 형량을 줄이거나 늘려서 적절한 형량의 범위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물론 양형기준은 피고인과 피해자 모두를 위해 존재한다. 피해자의 실질적인 피해 회복이 중요한 만큼, 피고인의 '변호 받을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을 지낸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양형기준 자체는 중립적이다. 특별히 피해자 또는 피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며 "판결마다 다른 양형의 편차를 줄여서 판결의 형평성과 예측가능성을 보장해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양형위원회는 양형기준을 설정할 때 △피고인의 재범 방지와 사회복귀를 고려해야 한다 △피고인의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양형상 차별을 하지 아니해야 한다는 원칙을 준수해 '피고인의 권리'를 보장한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현행 성범죄 양형기준에 있는 감형요소를 만족시키기 위한 '양형자료'들이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법원에 제출되는 과정에서 자칫 피해자들이 또다른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신종 감형 수법으로 각광받고 있는 '공탁금 던지기'다.

    지난해 12월 9일 공탁법이 개정되면서 피해자가 합의를 원하지 않아 개인정보를 알리지 않아도, 피고인이 공탁금을 낼 수 있도록 바뀌었다. 이를 악용해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선고 바로 전날 공탁금부터 일방적으로 내놓는 수법이다. 이러면 피해자가 재빨리 대응하기도 힘들고, 그새 마치 합의를 이룬 것처럼 재판부가 착각하도록 유도해 감형 받는 것이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피해자가 공탁금을 받을지 말지 결정할 여유를 주지 않고 선고 전날 공탁을 하는 수법"이라며 "일방적인 공탁에는 피해자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데, 법원이 공탁을 합의에 준했다고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도 아닌, 전혀 무관한 제3자인 시민단체나 보육원 등에 대한 기부도 흔한 감형 수법이다. 이 역시 피해자의 입장을 존중하기는커녕, 실질적인 피해 회복과 무관하기는 마찬가지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성폭력 전담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 C씨는 "피해자가 아닌 제3자, 예를들어 보육원에 기부를 하는 방식의 '반성'을 통해서는 피해 회복을 할 수 없는데도 유리한 양형인자가 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상식적으로 일반 국민들의 법 감정에 비춰 보더라도 누가 쉽게 납득할 수 있겠냐"고 꼬집었다.
     
    피해자가 원하지도 않는 사과를 전달한다며 반복해서 반성문과 사과문을 제출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백소윤 변호사 또한 "피고인들이 보내는 반성문의 경우, 정말 자기중심적이고 피고인이 마치 피해자처럼 되어 있는 서사들도 많이 담겨 있다"며 "피해자에게 반성을 하는 것이 아니고 법원에 반성을 하는 내용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것이 과연 진지한 반성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지 기준이 모호하다"며 "진지한 반성이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척도가 없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 "피해자 뜻 고려한 '양형조사' 필요"


    특히 전문가들은 2차 가해 우려가 큰 성범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법원이 피해자의 뜻도 충분히 고려해 감형자료를 신중히 살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보학 교수는 "재판부가 형식적인 반성이나, 공탁 여부 등을 너무 쉽게 감형 사유로 받아들이는 것은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사법부에 의한 '제2의 배신'"이라며 "성범죄는 피해자의 의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피고인이 감형을 받기 위해서는 정말 피해자한테 용서를 받았는지를 확인하는 재판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백소윤 변호사 또한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가 양형 기준에 대한 적절한 반론을 제기할 수 있도록 변화가 필요하다"며 "피해자의 목소리가 더 적극적으로 판결에 반영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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