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 연합뉴스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국민연금 관련 뉴스와 함께 주목받는 나라가 있다. '혁명의 본고장' 프랑스다. 연금개혁에 명운을 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 수급개시를 현행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로 늦추는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화염에 휩싸인 거리에서
"늙어서까지 노동에 시달리고 싶지 않다"고 외치는 파리 시위대의 모습은 국민 과반이 정년 연장에 찬성하는 한국의 상황과 사뭇 대조적이다. 최근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도 국민연금 가입상한·수급개시 나이를 올려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국내 MZ 세대의 불안은 '더 오래 일하는' 게 아니라, 내기만 하고 '본전도 못 찾는' 것이다.
'기금이 바닥나는 건 시간문제', '몇 년생부터는 연금을 한 푼도 못 받는다더라' 등의 보도를 연일 접하다 보면 사실 자연스레 드는 공포감이다. 연기금 등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더 나은 제도를 만들고자 하는 게 재정추계의 목적임을 고려하면 얄궂은 아이러니다.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되면 그때부터 미래 세대는 정말 급여를 받지 못하게 될까. 몇 가지 궁금증을 큐앤에이(Q&A)로 정리했다.
Q. 이번 5차 재정추계 결과 기금 고갈 추정시점이 더 빨라졌다 하던데.A: 맞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는 지난달 말일 향후 70년(2023~2093년)의 급여지출과 적립기금 변화 추이 등을 산출한 최종결과를 발표했다.
연금 기금은 2041년부터 수지 적자로 전환돼 2055년 소진될 것으로 예측된다. 국민연금 제도가 현행 그대로 유지된다는 전제 아래서다.
스마트이미지 제공고갈 전망시점은 5년 전 4차 추계 당시보다 2년 더 빨라졌는데,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절벽', 국내·외 경제상황 등이 반영된 결과다. 재정추계위는
통계청의 고위·중위·저위 인구 시나리오와 경제변수 낙관·비관 등 총 8가지 경우의 수를 적용해 이같이 계산했다.
Q. 국민연금 기금으로 가입자들의 급여를 지출하는 것 아닌가.A: 그렇다. 우선 연금제도는 크게 적립방식과 부과방식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부분적립식'이다. 적립식은 말 그대로 수급대상이 과거에 쌓아둔 기금 재정으로 급여를 충당하는 방식이다. 가입자들이 납부한 보험료로 모인 원금과 이를 운용한 수익이 합쳐져 여분의 재정이 축적돼 있는 것이다. 반면
부과방식은 당대 생산인구로부터 거둔 보험료로 고령층의 연금을 그때그때 지출하는 식이다.
사실 많은 해외 선진국은 부과방식으로 연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988년 시작된 국민연금은 아직 제도가 성숙해가는 과정이고, 연금을 타는 은퇴층이 그간 상대적으로 적었던 탓에 기금이 누적됐다.
지난해 말 기금운용본부가 잠정 집계한 연기금 적립금은 890조 5천억에 이른다. 다만, '낸 것보다 더 받아가는' 저부담·고급여 구조와 가파른 출산율 하락, 고령인구 급증이 맞물려 추후 기금 소진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민원실에서 한 시민이 상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Q. 연기금이 사라지면 부과방식을 쓰면 되니 급여를 떼일 일은 없다는 뜻인가.A: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연금개혁 노선에서도 기금을 어떻게든 유지하며 부분적립을 지속해야 한다는 쪽과 우리도 결국은 (완전)부과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국민연금이 국가가 관리하는 사회보험제도이기 때문이란 설명이 더 합리적이다. 내가 정한 만큼 납부하고 때 되면 돌려받는 민간보험 같은 자율성은 떨어지지만,
나라가 존속되는 이상 설령 기금이 소진되더라도 연금을 못 받을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참석. 연합뉴스국민연금법 제3조의2는 '국가는 이 법에 따른 연금급여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규홍 복지장관은 후보 시절부터
신뢰도 제고를 위해 연금 지급보장을 '명문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보험료 부과 소득범위를 넓히거나 국고로 일부 재원을 조달하는 방법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Q. 그럼 있는 기금이라도 '잘 굴려야' 하지 않나. 작년 성적표가 역대 최악이라던데.A: 2022년 국민연금 기금의 운용수익률이 1999년 기금운용본부 출범 이후 가장 낮았던 건 사실이다.
-8.22%. 연간 손실금은 79조 6천억에 달한다. 자산별 수익률은 △국내주식 -22.76% △해외주식 -12.34% △국내채권 -5.56% △해외채권 -4.91% △대체투자 8.94% 등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미국의 공격적 긴축 등으로 인한 글로벌 시장경제 악화가 최대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2018년 두 번째 마이너스 수익률(-0.92%)을 낸 이후 2019년 11.31%→2020년 9.70%→2021년 10.77% 등 10% 안팎을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큰 낙폭이다. 복지부 산하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기금운용본부를 독립시켜 공사화하고 서울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실제로 캐나다 CPPI, 일본 GPIF 등 해외 연기금 대비 경쟁력이 떨어지는 면은 있다. 운용위 구성상 정부 측 비중이 높아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운용 수익률을 높이면 기금 소진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재정추계위의 분석도 '수익률 개선'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다만, 위험자산에 속하는 주식과 안전자산인 채권이 동시에 나빠진 작년의 '이례성'을 참작하면
공단은 비교적 선방한 편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이번 손실을 반영한 연기금의 연평균 누적 수익률은 5.11%로, 국민연금 탄생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벌어들인 운용수익금은 451조다.
스마트이미지 제공Q. 요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 구성 변경을 두고 '기금 개악(改惡)'이란 비판이 나오는 등 시끄러운 이유는.A: 수책위는 투자정책전문위원회, 위험관리·성과보상전문위원회 등 기금운용위 산하에 있는 3개 전문위원회 중 하나다.
국내주식 투자비중이 높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방향을 정하는 역할을 한다. 주주행동주의가 시대적 흐름이 된 상황에서 2018년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 책임 행동 원칙)를 도입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관심거리일 수밖에 없다.
당초 수책위는 상근 3명·비상근 6명 등 위원 9명을 모두 가입자(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 단체로부터 추천받도록 했지만,
기금운용위는 지난달 초 비상근 위원 6명 중 3명을 '전문가 단체'의 추천 몫으로 변경했다. 여기서 전문가 단체는 자본시장연구원·한국금융연구원·한국증권학회·한국연금학회 등을 말한다.
정부는 수책위의 검토·심의 영역이 해외주식 주주권 행사 등으로 확대될 거라며
'전문성 강화'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시민사회계는
"금융자본과 재벌의 이해를 대변하는 단체가 대부분"이라며 가입자 단체의 감시·통제가 약화될 거라고 반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