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장이 18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가진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류영주 기자[앵커]
이렇게 피해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들이 이어지고, 급기야는 시민사회대책위원회까지 구성할 정도로 전세사기의 여파가 큰데요. 그럼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있죠. 이 상황이 될 때까지 정부는 뭐 한 건가. 분명 대응에 나서겠다고 했는데 왜 피해자들에게 닿지 않았는지요.
국토교통부 출입하고 있는 이준규 기자와 함께 이 부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기자 어서 오세요.
[기자]
안녕하세요.
[앵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전세사기 문제에 대해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했었는데, 오늘 국무회의에서 마침 '경매 중단' 지시를 내렸다면서요?
[기자]
네. 오늘 국무회의에서는 전세사기 예방 및 피해 지원방안 추진현황과 관련한 국토교통부의 부처보고가 있었는데요.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대한 경매 일정을 중단하거나 유예 즉 연기를 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보고했고, 이에 윤 대통령이 시행하도록 지시를 했다고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이 전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민사 절차상의 피해 구제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이 대부분인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구제 방법이나 지원 정책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찾아가는 지원 서비스 시스템을 잘 구축해 달라"며 보다 적극적인 지원에 나설 것을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등 현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앵커]
사회적 약자들이 많으니 기다리지만 말고 직접 피해자에게 가서 도울 것이 뭐가 있는지 살펴봐라. 그리고 우선 집이 다른 주인에게 넘어가는 걸 좀 막아라. 이렇게 지시를 한 거군요.
[기자]
네. 한국자산관리공사, 캠코라고 하죠. 캠코는 금융기관을 통해서 부실해진 채권을 매입을 하게 되는데요, 이렇게 받은 채권 중에는 전세사기 주택에 대한 채권도 있습니다. 이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서 경매로 집을 판 다음에 매각대금으로 이를 채워 넣는 방식인데요, 전세사기 주택의 경우 대부분 신축건물에 금융기관이 대출을 해서 선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하기 때문에 세입자들이 제대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사태가 좀 해소될 때까지 아예 경매에 부치지 않고, 매각 자체가 되지 않도록 지연시키는 것이죠. 캠코 인천지역본부는 3월에 37건, 4월에 14건 등 51건에 대해서 매각 기일 변경을 신청하면서 일부러 시간을 끌어 왔는데요. 이걸 대통령 지시로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앵커]
일단 시간을 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한데, 캠코 혼자 대응하는 것 만으로는 사태 해결이 어렵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경매를 막아달라'는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다만 몇 가지 해결할 부분이 있는데요. 우선 캠코는 준정부기관이니까 정부 의지대로 움직이겠지만, 은행은 수익을 내기 위한 기관 아니겠습니까? 경매를 무한정 연기할 수가 있겠느냐는 문제가 생기죠. 경매를 왜 하느냐 하면 집에 걸린 채권을 회수하기 위한 것이잖아요? 그게 계속해서 회수가 안 되다보면 그만큼 대출을 해준 은행 등 기관의 건전성이 나빠지게 되죠. 또 한 가지는 그렇게 벌어 놓은 시간 동안 피해자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구제할 수 있느냐 입니다. 이분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들 중 사실상 금전적인 부분이 제일 중요하거든요. 전세금을 떼였으니까 그 부분만큼 금전적인 부분을 채워주려면 돈을 그냥 줄 수는 없고, 결국 새로운 전세대출 등 대출을 해줘야 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새로 돈을 풀어야 하니까 대출 요건이 강화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결국 대출이 필요한 다른 분들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게 되죠.
18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피해 사망자들을 추모하며 헌화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앵커]
그런데 그 동안 정부는 전세사기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했기에 상황이 이렇게 심각해진 건가요?
[기자]
사실 정부가 그냥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해서 연 1에서 2% 수준의 저금리 대출 제공, 공공임대주택 등 긴급 거처도 지원, 피해 사실확인서 신속 발급, 임대인의 임대차 정보와 납세증명서 의무적 제공 등을 했어요. 최근에는 불가피하게 살던 집을 낙찰 받을 경우에는 그 주택을 보유했더라도 이를 무주택으로 인정해서 나중에 청약을 받을 때 가산점을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앵커]
저리대출, 긴급주거지원, 언뜻 들으면 괜찮은 것 같지만, 실효성은 어떻습니까?
[기자]
그 부분이 문제입니다. 저금리 대출은 상한이 3억원인데요,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3억원 넘는 빌라 전세가 상당하죠. 긴급거처의 경우에는 한 차례 문턱을 낮췄지만 주택 수가 부족해서 피해자들이 들어가지 못하거나, 기존 생활반경과 맞지 않아 입주를 꺼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전셋집 낙찰 시 무주택 기간 인정의 경우 제도 자체는 좋은데, 이것도 공시가 상한이 수도권은 3억원, 지방은 1억5천만원이어서 이 정도 재산 가진 분들이 새 아파트 청약을 받아도 살 돈이나 있겠느냐는 현실적인 지적이 나옵니다. 나머지 대책들도 피해 예방책, 또는 행정적인 편의성을 조금 높여주는 수준이라는 평가고요. 오늘 대통령실 브리핑에서도 취재진이 최우선 변제금 기준을 높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하니까 대통령실 관계자가 "3억짜리 빌라가 있어도 이거저거 다 떼면 보증금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상황이 어려워지니 극단적 선택을 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렇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면서 정책적인 답변은 피한 채 의지만 피력을 했는데요. 경매 중단도 좋지만 실효성에 대한 고민은 조금 더 심도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