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게 그을린 경포해수욕장 송림과 불에 탄 산책로. 전영래 기자지난 11일 대형 산불로 쑥대밭이 된 강릉 경포 일대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경기침체 등 2차 피해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강원도와 강릉시 등은 "강릉여행이 최고의 자원봉사"라며 관광객 방문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산불 피해지 관광객 발길 '뚝'…경기침체 현실화
지난 20일 찾아간 강릉 경포 일대.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지 열흘이 지났지만 여전히 곳곳에 처참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화마가 삼킨 숙박시설과 상가 건물 등 수십 채가 폭격을 맞은 듯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일부 건물은 아예 흔적도 없이 잿더미로 변했다.
관광객과 시민들이 즐겨 찾으며 휴식을 취하던 경포해수욕장 인근 소나무 숲을 비롯한 송림 곳곳이 검게 그을렸고, 산책로 일부도 불에 탔다. 이처럼 산불이 할퀴고 간 모습이 고스란히 남으면서 관광객들의 발길도 뚝 끊겼다. 평일이지만 점심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경포 인근 식당 대부분이 텅 비어 있었다.
경포에서 10여 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전모(60대)씨는 "거짓말이 아니라 산불 이후 정말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다. 여기서 장사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라며 "하루에 10그릇도 못 팔고 있는 상황이다. 직원들도 돌아가면서 쉬게 할 수밖에 없다. 정말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20일 점심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경포해변 인근 식당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영래 기자경포 호수 주변도 아직 매케한 냄새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채 적막한 모습이었다. 평소 같으면 산책에 나선 연인이나 가족을 비롯해 자전거와 전동 스쿠터 등을 즐기는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간혹 마주칠뿐 좀처럼 찾아 보기 힘들었다.
산불 피해에서 다행히 빗겨간 인근 숙박업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산불 이후 매일 예약 취소가 빗발치면서 관광 성수기를 앞둔 상인들은 경기 침체 우려에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실제 대형숙박시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산불 이후 예약 취소율이 20~40%에 이르고 있다. 일반 펜션이나 민박의 경우 취소율이 많게는 60~70% 달해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산불로 관관객들의 방문이 급감하면서 경포 호수 인근 상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영래 기자경포 인근 상인들은 "체감 상 산불 이전보다 50% 이상 관광객과 차량이 줄어든 것 같고, 지난 주말에도 평소에 비해 경포를 찾는 사람들이 절반 이상 줄었다"며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은 이런 현상이 바로 매출로 나타난다. 일단 사람이 오고 북적여야 뭐라도 될 것 아니냐. 산불 피해를 입은 분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지만 산불 피해를 입지 않은 업체들도 많이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전화로 여기 사정이 어떻냐고 물어본 뒤 오는 것을 기피하는 것 같다.산불 이후 예약 취소 전화를 받는 것이 일과 중 하나"라며 "가정의 달인 5월을 앞두고 예약 문의는 커녕 그나마 있던 예약도 취소될까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릉여행이 최고의 자원봉사이자 기부
강릉시 제공강릉시와 강원도는 문체부, 한국관광공 등과 함께 '가자! 동해안으로!'라는 주제로 관광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산불에 이은 관광객 급감으로 지역 관광, 숙박, 음식업소들이 어려움을 겪는 등 2차 피해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산불 피해지로 여행가는 것을 미안한 마음에 꺼리기 보다는 관광객들이 많아야 지역경제가 살고 피해 주민들의 일상 회복도 앞당겨지는 만큼 '여행이 최고의 자원봉사'라고 강조하며 강릉 방문을 독려하고 있다.
도는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부처와 전국 지자체, 한국관광공사를 비롯한 공공기관 및 한국여행업협회 등 관광업계 등에도 협조를 요청한 가운데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양구군과 한국관공공사 등 도내 공공기관들은 강릉에서 각종 행사를 열고 소비활동을 펼치기로 결정했다. 강원도관광재단은 강릉-평창-정선으로 이어지는 아리바우길 걷기 챌린지를 통해 강릉지역 관광 활성화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각종 워크숍, 회의, 행사 등을 동해안 지역에서 개최하고, 업무와 휴가를 병행하는 워케이션도 동해안에서 추진할 것을 회원사들에게 당부했다. 코레일관광개발은 산불 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강릉을 돕기 위해 '가자! 강릉으로!' 기차여행 상품을 출시하는 등 각계에서 동참이 잇따르고 있다. 강원도는 국내숙박여행 플랫폼 등과 협력해 강릉지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 대한 특판행사를 진행하는 각종 이벤트·행사 등도 지속적으로 유치해 나갈 계획이다.
코레일관광개발 홈페이지 캡처특히 강릉시는 수도권에서 대규모 현장 캠페인을 진행하는 한편 온‧오프라인 매체를 적극 활용한 관광 활성화 마케팅에 나선다. 오는 21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주요 지역에서 2~3차례 길거리 캠페인을 계획 중에 있으며, 26일에는 을지로역에서 강릉시와 강원도, 강원도관광재단 및 서울관광재단 합동으로 200여 명 규모의 대규모 현장 캠페인을 진행한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전국신문을 비롯해 서울역과 고속버스터미널과 같은 유동 인구 밀집 지역, 유명 숙소와 식당 등에도 동참 메시지를 담은 홍보물을 게재해 강릉 여행을 유도하는데 집중할 방침이다.
지난 18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강릉산불 1차 피해조사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김홍규 강릉시장. 강릉시 제공김홍규 강릉시장은 "이번 산불로 직격탄을 맞은 경포 지역은 강릉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산불 피해 지역이라서 망설여질 수도 있지만 강릉 여행은 피해 주민을 돕는 또 하나의 봉사활동이자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기부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산불 지역은 한정된 지역인데 강릉 전체가 피해가 난 것처럼 다소 과장되게 전해지는 것 같다. 피해는 일부 지역이라 관광객이 오셔서 묶고 머무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며 "여러분의 따뜻한 손길로 피해 주민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삶의 터전을 잃은 피해 주민들이 절망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폐허가 된 땅에 희망의 꽃이 피어날 수 있도록 함께 돌보고 가꿔 달라"고 호소했다.
'도심형 산불'에 피해 눈덩이
강릉 경포 일대를 화마가 휩쓸고 간 흔적. 전영래 기자 앞서 지난 11일 오전 8시 22분쯤 강릉시 난곡동에서 발생한 산불은 8시간 만인 오후 4시 30분쯤 주불이 잡혔다.
특히 이번 산불은 기존 산불과 다른 '도심형 산불'로 확산하면서 주택과 펜션, 상가 등 건축물 피해가 컸다.
강릉시가 지난 17일까지 1차 재해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인명피해는 사망 1명에 부상 26명 등 27명으로 파악됐다. 재산피해는 주택과 숙박시설 등 사유시설의 경우 6개 분야 333억 5천만 원, 공공시설은 9개 분야 64억 9600만 원 등 총 15개 분야에서 398억 4600만 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재민은 217가구, 489명에 달하며 산불로 불에 타고 훼손된 산림(170ha)과 관광 가치는 무려 6832억 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번 1차 조사를 토대로 강원도와 중앙합동조사반은 오는 24일까지 2차 재해 조사를 실시하며 조사가 끝나면 5월 중순까지 복구 계획을 확정지을 방침이다.
강릉시 경포 일원 펜션 밀집지역과 산림에 대형 산불의 흔적이 처참하게 남아 있다. 강릉=황진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