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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변 악취 풍기는 수용소…아직 건재한 '장애인의 고려장'[정다운의 뉴스톡]



사건/사고

    대소변 악취 풍기는 수용소…아직 건재한 '장애인의 고려장'[정다운의 뉴스톡]

    CBS 정다운의 뉴스톡 530

    방송 : CBS 라디오 '정다운의 뉴스톡 530'
    ■ 채널 : 표준FM 98.1 (17:30~18:00)
    ■ 진행 : 정다운 앵커
    ■ 대담 : 양형욱 기자


    [앵커]
    시설에 갇혀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는 '장애인의 고려장'!
    CBS는 장애인들의 탈시설 문제를 집중 취재해 다섯 차례 연속 보도하고 있는데요.

    이 장애인 거주시설.
    중증 장애인들이 한 공간에 거주하며 24시간 생활지도교사의 보조를 받는 곳을 말합니다. 이러한 시설에 전국 2만 8천여 명의 장애인들이 살아가고 있다고 해요.

    그 안은 어떤 곳인지, 신분을 숨긴 채 일주일 동안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잠입 근무한 양형욱 기자 나와있습니다. 어서오세요.

    [앵커]
    어떤 계기로 장애인 거주시설에 직접 들어가게 됐나요?

    [기자]
    취재하다보면 집회 현장을 자주 찾거든요.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최근에는 탈시설을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목소리가 가장 귀에 걸렸어요.

    요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며 매일 지하철 승강장에서 시위하는데,
    '탈시설'도 함께 주장하고 있거든요. 장애인의 날인 오늘도 서울 도심 곳곳에서 관련 집회가 열렸고요.

    이렇게까지 이들을 처절하게 만든 '장애인 거주시설'은 무엇일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닌, 시설의 실태를 알고 싶어 잠입 취재에 나섰습니다.

    기자가 일주일 간 근무한 수도권 한 장애인 거주시설 모습. 양형욱 기자기자가 일주일 간 근무한 수도권 한 장애인 거주시설 모습. 양형욱 기자
    [앵커]
    직접 일한 시설은 어떤 곳인가요?

    [기자]
    20여 명의 장애인이 살고 있는 수도권의 한 장애인 거주시설인데, 저는 이 곳에서 남성 거주인 14명을 직접 보조했습니다.

    가보니까 시설은 제일 가까운 지하철 역에서 20분 가량 걸어가야 했는데, 주변에 쓰레기 소각장도 있고, 굉장히 좁은 골목길을 들어가야 하는 아주 외진 곳입니다 1960년대에 지어진 낡은 건물 내벽은 페인트도 벗겨졌고 장애인시설이지만 엘리베이터도 없었습니다.

    [앵커]
    시설 안의 상황은 어떻던가요?

    [기자]
    제가 마주했던 시설은 한마디로 대소변의 악취가 진동하는 수용소였습니다.

    거주인들이 대소변을 잘 가리지 못하곤 하는데 일손이 부족하니까 아무리 치워도 복도와 방 곳곳에 대소변이 묻어있고 빨지 못한 속옷들이 바가지에 담겨 방치돼 있었습니다. 또 하루 종일 걸레 하나로 닦느라 소변에 푹 젖어서 나중에는 물기도 잘 안 닦였습니다.

    또 거주인들이 허락 없이는 나갈 수 없도록 자물쇠로 출입문과 창문이 꽁꽁 닫히고, 창에 철창까지 쳐져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시설 안에서 거주인들이 인간답게 생활하도록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지도 않습니다.
    식사 시간을 뺀 거의 모든 시간, 한 18시간이 자유시간인데, 거주인들은 이 시간에 복도를 걸어다니거나, 가만히 방 안에 누워있거나, 생활지도교사 옆에 앉아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오염물이 묻은 거주인의 속옷이 바가지에 담긴 채 하루종일 방치됐다. 양형욱 기자오염물이 묻은 거주인의 속옷이 바가지에 담긴 채 하루종일 방치됐다. 양형욱 기자
    [앵커]
    시설에서 자유시간 동안 장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충분히 준비해야 하지 않나요?

    [기자]
    우선 제가 만난 14명 거주인 중 5명은 평일에 정기적으로 외부 활동을 나갔는데, 나머지 거주인들은 시설 밖에 나갈 일조차 거의 없습니다.

    또 생활지도교사 2명이 거주인들을 한꺼번에 보조하려면 시간표에 맞춰 엄격하게 통제하는 수밖에 없다보니까요. 정해진 시간이 아니면 먹고 씻는 기본활동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기억나는 거주인이, 소변을 가리지 못해 매번 바지가 젖었거든요. 하루는 이분이 제 손을 잡고 방으로 끌고 가더라고요. 잠겨있는 사물함에서 옷을 달라고 하는 것 같아서 담당 교사에게 도와달라고 했더니 "옷을 계속 갈아입혀 봤지만, 그럼 남는 옷이 없다. 부탁하더라도 절제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냉정하게 답하더라고요.

    [앵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인데, 생활지도교사 2명이 14명의 거주인을 관리한다고 했잖아요. 그럼 아무래도 이런 문제가 이들의 잘못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겠어요.

    [기자]
    제가 일주일 동안 지켜본 생활지도교사들은 거주인들을 평생 돌보겠다는 사명감도 대단했고, 거주인들이 원하는 걸 알아내고, 해결하려 부단히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교사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현실의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거죠.

    생활지도교사 A씨의 고충을 들어보시죠.

    (인서트)
    =뭘 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프로그램 돌려야지 있어보이고
    중요한 건 이분들한테 정작 필요한 걸 1차적인 지원을 해주는 거니까

    함께 근무했던 한 사회복지사는 제게 무엇이 힘드냐고 물어보길래 악취와 더러운 환경이 가장 힘들었다고 답했거든요.

    그분은 "처음엔 거주인이 소변을 싸면 바로 닦고, 소독도 두 세 번 하고, 락스물도 뿌려봤는데,
    일이 너무 많다보니까 쉽게 지친다"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끝이 없는 업무량이 힘들다고 털어놨습니다

    거주인 방 안에 놓인 화장실 슬리퍼는 곰팡이와 떼가 가득했고, 아무도 이용하지 않았다. 양형욱 기자거주인 방 안에 놓인 화장실 슬리퍼는 곰팡이와 떼가 가득했고, 아무도 이용하지 않았다. 양형욱 기자
    [앵커]
    주로 위생 문제, 또 자유시간이 없단 얘기를 나눴는데요. 이런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더라도 근본적으로 탈시설을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더라구요.

    [기자]
    무엇보다 생활지도교사의 허락 없이 시설 밖으로 나가지 못해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이들의 삶, 그 자체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거주인들의 안전이 우려된다며 시설을 꽁꽁 틀어막다보니 출입문 밖을 잠깐 나서려고만 해도 혼나기 일쑤거든요. 바깥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거주인들에게 시설은 결국 외부 활동을 늘리기보다 건물 안에서 나갈 수 없도록 문을 걸어잠그는 길을 선택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시설에서 일주일 생활했지만,
    제가 만난 14명의 거주인들은
    우리 곁이 아닌 그곳에 갇힌 채
    아마 평생을 살아갈 거고,
    우리 사회는 그들의 존재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게
    탈시설을 고민해야 할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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